인두치(咽頭齒) 12

 
  "정말 이 결말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쓰기 수업의 마지막 강의 시간, 소설가 선생이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안경을 벗어놓은 선생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더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건 어쩌면 실망했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군. 중기는 선생의 질문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최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인물들의 죽음에는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죽음은 문자 그대로 삶을 끝내는 것이니까요. 물론 소설 속의 모든 설정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공의 현실이죠.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인물들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책임감 말입니다."
  "제가 구만과 경주의 삶을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네, 알겠어요."

  선생과 중기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끼어들었다.

  "오, 이건 뭐 인물들이 죽음을 향해 직진해 버리네요. 결말을 쥐어짜 내는 게 힘들었던 건지."

  중기는 얇은 입술로 이죽거리며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참으로 밉상인 여편네야. 저 여자는 부모도 저런 인간일 테지. 생전 어디 가서 귀여움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핏줄이라는 것은 질기고도 정직한 것이다. 중기는 늙은 여자가 말할 때마다 도드라져 보이는 입가의 주름이 추하다고 느꼈다. 늙음과 악의, 무지가 겹친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중기는 그저 싫었다.

  "경주가 노후 파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거잖아요. 아니, 그 소설 속의 강동구 아파트 모기지 신청만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뭐 강동구 아파트가 강남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죠. 좀 그런 게 아니라 한참이긴 하지만."
  "그 아파트에는 대출이 5천만 원 남았으니까요. 모기지 신청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멀었죠. 서울 아파트 자가로 사는 게 어디 쉬운가요?"
  "아니, 뭐 그래도 죽을 것까지야... 아무튼 이런 결말은 너무 우울해. 우울하잖아요. 즐거운 소설을 쓰기도 모자란 인생인데."

  중기는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송파구 여편네의 말마따나 구만과 경주를 죽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대충, 적당히, 그들이 처한 현실의 창을 닫고 자신은 그냥 나오면 되었다. 하지만 중기는 아내를 죽이고도 평온한 얼굴을 한 박 차장의 모습에서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의 미래를 보았다. 그들은 비탈진 언덕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든 미끄러질 준비가 되어있는, 그리고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구만은 다시는 치열한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경주는 그런 남편을 끝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서있는 중산층이라는 얇은 얼음 강이 깨어질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몰락과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즐거운 소설이라... 중기는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말한 '즐거운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자신은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중기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마흔 살 생일날 아침의 결심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나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미래의 그 어떤 죽음의 날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소설이 몇 편 정도 있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 같았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만들어내는 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듯, 자신의 인생 그 어딘가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조각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으로 써낸 첫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중기는 경주가 죽음을 위해 준비한 협죽도 잎사귀들을 묘사할 때, 마치 그 잎들을 자신이 질겅질겅 씹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음반 구해왔어?"
  "그래, 여기."
 
  그날 오후, 중기는 동생을 보러 용인에 갔다. 동생이 부탁한 음반이 있었다. Bill Evans 트리오의 Waltz for Debby가 들어있는 음반이었다.

  "나중에 내 장례식에 이걸 틀어줘. 난 오래 못 살 것 같아."
  "인마, 그런 말 지껄일 거면 그거 나한테 도로 줘. 어떻게든 나을 생각을 해야지."
  "글쎄. 내 정신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서 말이지. 아주 멀리.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문수는 자신의 오른쪽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중기는 저런 말을 할 때의 동생은 진짜 멀쩡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 아주 짧은 것이 문제였다. 중기는 문수가 죽고 나면 자신의 삶이 좀 덜 무거워질까를 생각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오른쪽 어깨에, 정신병에 걸린 동생은 왼쪽 어깨에 있었다. 하나의 짐이 사라지면, 어쩌면 자신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것만 같았다. 

  '배달 앱이 오후 9시로 자동 종료되어 배송 일정 안내 문자 드립니다. 고객님의 물품은 새벽 2시까지 순차적으로 배송됩니다.'

  아직도 배송 일에 익숙해지지 못한 건가? 새로운 여자 배송 기사로 바뀐 택배사의 물품은 늘 늦어졌다. 자정쯤에 받아보던 것이 오늘은 새벽 2시로 늦어졌다. 그때까지 배송하고 나면, 언제 집에 들어가나? 중기는 처음에는 그 배송 기사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오늘 오기로 한 택배는 참외였다. 초여름 날씨에 문밖에 두면 아무래도 참외가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기는 아무리 늦어도 그 택배를 받아서 들여놓기로 했다.

  현관문 앞을 쓱, 하고 택배 상자가 살짝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5분이었다. 조막만 한 못난이 참외가 올망졸망 박스에 담겨있었다. 참외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는 냉장고에 넣었다. 박스의 테이프를 제거하고 그걸 베란다의 분리수거 상자에 넣었다. 베란다 창문이 좀 많이 열려 있어서 닫으려는데, 바깥의 불빛이 뭔가 이상했다. 내다보니 길가 가로등의 전구가 수명을 다하기 직전이었다. 번쩍번쩍, 광기를 내뿜는 사람처럼 창백한 불빛이 중기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중기는 가로등이 번쩍이며 보여주는 뜨악한 풍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창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부엌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목이 좀 말랐다. 물을 마시는데, 입 안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중기는 입안에서 걸리는 것을 손바닥에다 뱉었다. 작은 치아 조각이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거울로 입안을 살펴보았다. 왼쪽 어금니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이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마치 화산 폭발이 끝난 분화구처럼, 중기의 어금니는 시커먼 공동(空洞)처럼 보였다. 중기는 그 공동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늙음과 불운과 가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먹는 것이 귀찮아서 끊어버린 탈모약 때문에 정수리는 휑해졌고, 동생과 모친의 병증은 심해져 갈 뿐이었다. 월세 60만 원을 달라고 말하는 주인 영감은 내년에 70만 원을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기는 구멍 난 어금니를 한번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아주 정교하게 난 작은 동그라미가 중기를 향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월요일에 일찍 치과에 가봐야지. 어떻게든 이 어금니를 살릴 방법이 있을 거야. 중기는 화장실의 불을 끄고 나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인두치 완결(完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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