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5
화장실의 수전을 교체하고 나서, 중기는 미리 렌트한 차를 몰고 여주로 향했다. 여주의 요양원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은 요양원이다. 높은 산이 양옆으로 자리한 좁은 도로는 구불구불하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육이오 전쟁 때, 여주에 피난민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았다 하더군요. 이런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서, 군대가 쉽게 오지 못한다고 믿었대요. 작은 키에 꼬장꼬장한 얼굴을 한 수녀원장이 중기에게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여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이상한 약국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국이 아니라, 약방이었다. 약방의 유리창은 빛바랜 흰색의 코팅지가 추레하게 너덜거렸다. Rx 모양의 표시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뭔가 약을 짓는 것 같기는 한데, 왜 약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까? 칠십은 족히 넘은 영감은 늘 고정된 자세로 TV를 보고 있었다. 중기는 아무리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저 영감이 짓는 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도 TV에 시선을 맞추고 카운터를 지키는 영감이 백미러를 천천히 지나갔다.
"이렇게 곰돌이를 씹어 먹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냐. 곰돌이가 너무 불쌍해."
어머니는 중기가 건넨 하리보 젤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정말로 슬픈 것 같았다. 나이 들어서 꺼지는 눈꺼풀 때문에 더 작아진 어머니의 눈가는 늘 짓물러 있었다. 중기는 휴대용 티슈를 한 장 꺼내어 어머니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여기서 일하는 여자가 내 돈을 훔쳐갔어. 죄다 도둑년들이야."
어머니는 입을 조그맣게 오므리며 속삭이듯 중기에게 말했다. 중기는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저 걱정하지 마시라고, 자신이 꼭 돈을 찾아서 받아내겠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중기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는 요양원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원래 살이 쪘던 어머니는 제대로 걷질 못하자, 살이 더 찐 것 같았다. 휠체어에 커다란 짐을 욱여넣듯 힘겹게 어머니를 앉혔다. 요양원이 자리한 산자락에는 이제 벚꽃이 피고 있었다. 서울은 벚꽃이 다 져버린 지 오래인데, 산속의 계절은 그렇게 또 다른 모양이었다.
"문수는 잘 지내냐?"
"네. 잘 지내요."
"내가 걔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걔가 미나리를 좋아해. 미나리나물 해주면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 지금 미나리가 나오는데, 문수 생각이 나서. 우리 착한 아들 문수."
2주 전에 중기는 문수를 보고 왔다. 문수는 용인의 정신병원에 있다. 중기는 새삼스럽게 문수가 그곳에서 지낸 햇수를 세어보았다. 그러니까 한 10년 되었나? 자신이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듬해 봄이니까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한 9년이었다. 문수에게 정신병이 발병하지 않았다면, 문수는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쯤이면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 중기는 자신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문수의 병이 나아서 문수가 다시 의대에 복학하는 것, 그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더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 보곤 했다. 둘 다 가망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