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4


  "아, 내가 아까 약을 먹었나?"

  소설 속의 구만이 항혈전제를 먹었는지 약통을 확인하는 것처럼, 중기도 TV 옆에 놓인 자신의 약통을 확인했다. 중기는 역류성 후두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주 쉰 목소리가 났고, 가래와 기침도 잦았다. 근처 종합병원의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편도선이 부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약을 먹어보고, 정 힘들면 편도선 절제 수술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약은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수술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중기는 목이 아파도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증상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대학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더니, 역류성 후두염이었다. 의사는 중기에게 위산 억제제를 처방했다. 생활 습관을 바꾸고, 약은 최소한 3개월 이상은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중기는 속으로 이전에 본 돌팔이 의사를 욕했다.

  중기는 약통에 그대로 있는 약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어야 하는 것인데, 깜빡하고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약을 안 먹어서 그랬는지, 저녁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위산이 역류하면서 목이 아프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중기는 작은 흰색의 알약을 얼른 입안에 넣었다.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구만에게는 항혈전제가 꼭 필요하듯, 중기에게는 위산 억제제가 필요했다.

  "이 선생, 다음 달부터 월세는 60만 원 보내주쇼."

  "네? 아니, 그럼 10만 원씩이나 더요?"

  "아,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빌라 관리며 이런저런 데 나가는 돈이 오죽 많아야 말이지. 나도 오래 생각한 거니까, 이 선생도 그리 알고."

  20세대가 사는 5층짜리 빌라 임대인은 60대 중반의 꼬장꼬장한 늙은이였다. 비쩍 마른 체구에 기다란 얼굴에는 기름기 하나 없었다. 지난달, 중기는 화장실 세면대 수전에 물이 조금씩 새니 수전을 교체해달라고 그 늙은이에게 전화했다. 늙은이는 화장실의 수도 레버를 들었다 놨다를 몇 번 해보더니, 아직 바꿀만한 때가 아니라고 했다. 중기는 물이 새면 수도 요금이 더 나가니까, 바꿔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지만 늙은이는 손에 묻은 물기를 탁탁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저런 인간이라서, 돈을 모을 수 있나 보군."

  중기는 3만 정도 하는 세면대 수전을 사다가 직접 교체했다. 아마도 주인 늙은이의 수법은 그런 식으로 세입자가 스스로 고치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수도꼭지 사다가 직접 한 거 맞죠? 우리도 부엌 수도가 물이 줄줄 새는데, 안 고쳐줘서 사다가 했거든요. 진짜 그 늙은이, 하여간 지독해."
 
  중기가 뜯어낸 수도꼭지를 내다버리는 것을 보더니, 2층의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그게 주인의 수법이었다. 중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빌라 말고도, 이문동에 3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는 늙은 약사의 일생을 떠올려 보았다. 그 늙은이라면 약국 손님에게 나가는 비닐봉지 한 장도 아까워할 것 같았다. 하긴, 약국의 비닐봉지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위해 모두 공짜로 주는 것이니 아까울 것도 없겠구먼. 중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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