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3

 
  '선생님, 선생님의 글은 너무나도 친절합니다. 좀 더 불친절해야 하고, 과감하게 생략해야 합니다. 인두치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끝까지 밀어붙였어야죠. 남편 구만의 이야기에서는 그 상징이 잘 작동하지만, 아내의 이야기에서 인두치는 엉성하게 엮여 있습니다.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충고하겠습니다. 독자를 믿으셔야 합니다. 독자를 믿으면, 구태여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독자는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을 상상해서 글을 읽어냅니다.'

  중기는 Chat GPT가 술술 써 내려간 비평을 읽다가, 독자를 믿으라는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독자라니, 자신에게 독자가 있기는 있나. 중기는 잡다한 초단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블로그의 매일 방문자 수는 10명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서 중기 자신을 빼면 정말이지 중기에게는 한 자릿수의 독자가 있는 셈이었다. 그 독자들이 매일 왜 찾아오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나의 독자를 만나려면 책을 내면 된다. 오래전 중기가 생각한 결론은 그러했다. 중기는 여러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죄다 거절의 메일이었다. 선생님의 글을 편집부 회의에서 검토했으나, 우리 출판사의 출판 방향과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그 거절의 문구는 한결같은지, 출판사끼리 거절 메일의 양식도 공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중기는 '인두치'를 써낸 그날도 출판사로부터 거절의 메일을 받았다. 무려 넉 달 만에 받은 메일이었다. 젠장, 그래 당신들한테 맞는 글 뽑아서 잘들 팔아 먹어. 요새 누가 책을 읽느냐고. 생각해 보니, 중기 자신도 언제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나질 않았다. 아마도 1년 전쯤에 '소설 쓰기의 기초'라는 책을 읽기는 했다.

  소설의 본질은 재미에 있다. 그 책의 첫 문장은 그렇게 시작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총을 든 강도라도 등장시켜라. 그 책이 알려준 소설의 세계는 정교한 건축의 세계였다. 중기는 자신이 그런 건축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을지 별로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잡지를 읽을 때 아무 데나 펴서 읽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은 중기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중기는 초단편을 써 내려갈 때도 주인공의 이름을 종종 다르게 적곤 했다. 인물의 이름을 지어내는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다. '인두치'의 주인공 구만의 이름은 '앞길이 구만리 같다'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왜 그 문장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중기는 창창한 젊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을 중년의 시들거리는 인물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구만은 지쳐있었다. 그는 자기 심장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쓰러졌고, 운 좋게도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구만과 중기는 좀 닮아있는 것도 같았다. 중기도 지쳐있었다. 구청의 환경과 공무원인 중기는 민원 담당이었다. 민원의 대부분은 소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 받은 민원 전화는 아파트 옆 스포츠 센터 볼링장의 소음을 견딜 수 없다는 영감의 전화였다.

  "공무원 선생, 저 드르륵 쿵쿵거리는 볼링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지 뭐요. 저승사자가 날 데려가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 같다니까."

  노인은 천식이 있는지 밭은기침을 연신 해댔다. 그는 가늘지만, 절박한 목소리로 중기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중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법규에 규정된 소음의 기준은 극단적이었다. 정말로 포크레인 소리가 나는 건축 현장이 아니라면, 그런 볼링장의 소음은 기준의 범위에 아주 안전하게 들어갔다. 그러므로 노인은 앞으로도 매일 저승사자의 방문을 받게 될 터였다.       

  "어르신, 제가 그 볼링장에 전화는 해보겠습니다."

  중기는 사실 볼링장에 전화를 걸 생각은 없었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대개의 업주는 심드렁하게 중기의 전화를 받았고, 더러는 짜증을 내면서 공무원이 갑질을 한다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중기는 결국 전화로 소음 방지에 대해 계도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노인을 안심시켜 주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중기는 노인이 볼링장 소리에서 떠올린다는 그 저승사자에 대해 생각했다. 구만에게도 저승사자가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중기는 구만을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구만이 살아난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인물은 자신을 비껴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심약해져 있으므로 또 언제든 죽을지도 몰랐다. 구만은 쪼그라든 풍선처럼 숨을 가쁘게 쉬는 인물이었다. 중기는 구만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쩌면 구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도 같았다. 오전의 산책, 매일 점심으로 먹는 라면과 단무지, 백색 소음처럼 들리는 24시간 뉴스 채널까지 구만의 일상은 애벌레의 고치처럼 나름 안온했기 때문이다.

  구만의 고치는 아파트였다. 35살에 당첨된 강동구의 아파트. 하지만 중기는 그 사실을 소설에 쓰지는 않기로 했다. 귀찮았다. 강동구의 아파트가 소설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강남의 아파트는 구만에게는 버겁다. 그건 말도 안 된다. 강동구가 적당하지. 구만은 강동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 아파트가 구만의 인생에서 그래도 희망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중기는 그 자신도 안도감을 느꼈다. 중기는 강서구의 원룸 빌라에서 살고 있었다. 월세였다.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음이 들리는 자기 집이 중기는 진저리나게 싫었다. 강동구에는 그 비행기 소음이 들리지 않겠지. 중기는 소설 속의 구만이 어떤 면에서는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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