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이것도 가져가야지."
구만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보온 물병을 건넸다.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마실 물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다. 아내가 아파트 미화원 일을 하게 된 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아침 7시 30분, 아내는 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로 출근하기 위해 이제 막 길을 나서는 참이었다.
"또 라면 끓여 먹지 말고, 식사 좀 잘 챙겨요."
구만이 내민 보온병을 받아 천 가방에 넣으면서 아내가 말했다. 집에서 지내면서 구만은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밥은 전기밥솥에 있었고, 반찬이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마저도 번잡스럽게 생각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라면을 먹는 것이 구만의 점심 일과가 되었다. 때로는 그냥 끼니를 거르거나, 과자 한 봉지를 뜯어먹거나 할 때도 있었다. 작은 소반에다 라면 그릇과 김치를 놓은 다음, TV의 뉴스 채널을 틀었다. 그리고 뜨거운 라면이 불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구만은 베란다에 서서는 초록색 천 가방을 멘 아내가 점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편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 동네 뒷산을 오르던 구만은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통증을 느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흙 계단 옆의 나무를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회복실의 침대였다.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 하나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그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넣었구요. 항혈전제는 매일 빼먹지 말고 복용하셔야 해요."
녹색 수술 모자 사이로 흰머리가 삐져나온 중년의 의사가 구만에게 빠르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산에서 쓰러진 자신을 누군가 발견했고,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늦지 않게 필요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구만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엄마,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반대말이 뭐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한쪽 팔로 부축한 여자가 그렇게 물었다. 불편한 다리를 힘겹게 끌면서 걷는 노인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글쎄다."
"에이, 참. '설' 자로 시작되는 거라고 내가 가르쳐줬잖아."
"그래. 설상가상(雪上加霜)이지."
구만은 작은 연못이 있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숨이 조금 차는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 설상가상. 퇴원하기 전날에 회사로부터 받은 문자가 그러했다. 구만을 천안 공장으로 발령한다는 문자였다.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었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버티던 구만을 회사는 그렇게 밀어냈다. 구만은 자신이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혼자 천안으로 내려가서 어떻게든 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어쨌든 살아있는 것이 중요했다. 구만이 회사 책상의 물건을 정리해서 나오던 날에는 진눈깨비가 날렸다. 차가운 눈발이 얼굴에 닿는 것을 느끼며, 회사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곳에 구만이 보낸 21년의 세월이 있었다.
이제 정오 뉴스가 시작되겠군. 구만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다시 천천히 걸었다. 구만은 집에 라면이 몇 개 남았는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래도 마트에 들러서 라면을 사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5개 들이 라면 한 봉지를 들고는 무언가 더 살 것이 없는가를 생각했다. 60대 영감이 지키고 있는 계산대의 조그만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국의 이란 공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담수화 시설 및 석유 생산 기지에 대한 폭격도 발생하고 있는데요. 현재 공습 상황이 어떤지 오만에 나가 있는 특파원을 연결하겠습니다."
구만은 라면과 석유가 상관이 있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웃는 이들은 군수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고통받을 뿐이다. 구만은 머릿속에서 라면과 석유를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넣었다. 구만은 그 두 가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구만은 라면 봉지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무지도 하나 사기로 했다. 어제 먹은 냉장고의 김치가 시어 버린 것이 생각났다.
아내는 구만에게 식사를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사실 냉장고에 반찬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신 김치와 깻잎장아찌, 2주일이나 지난 멸치볶음이 냉장고 한쪽 구석에 있었다. 아내는 집 근처 상가의 지하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다가 놓기는 했다. 하지만 조미료 맛에다가 지나치게 짜고 단 그런 반찬에 구만은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 구만에게 단무지는 그나마 가장 나은 반찬이었다.
라면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만은 늘 하던 대로 뉴스 채널을 틀어놓았다. 머나먼 중동에서 터진 전쟁 뉴스가 이제 끝나가는 참이었다.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는데, 자신은 점심으로 먹을 라면이 익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은 얼마나 이상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가. 구만은 익어가는 라면에 달걀을 하나 풀어 넣었다. 계란값은 도무지 떨어질 기미가 없어. 구만은 계란 하나 넣는 것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구만은 자신이 아침에 항혈전제 약을 먹은 것이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별로 소분해 둔 약통을 들여다 보니, 오늘 아침 약이 그대로 있었다. 구만은 얼른 약을 입에 넣었다. 분홍색의 아주 자그마한 이 알약은 어쩌면 구만이 죽을 때까지 먹게 될 약인지도 몰랐다. 구만은 심장의 혈관에 스텐트 2개가 있는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글쎄, 10년 정도는 괜찮겠지. 20년까지는 어떨까? 구만은 자신의 집에 남은 대출금을 생각했다. 지금 매달 나가고 있는 110만 원의 대출금을 앞으로 12년을 더 넣어야 했다. 구만은 문득 인생에 찾아오는 행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는 두 번의 행운이 있었다. 이 아파트가 당첨되었을 때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겨우 살아난 일. 그렇게 소중한 행운을 써버렸으니, 더는 행운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신은 나이 46에 실직자가 되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회사 단무지는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
구만은 라면을 다 먹고는 아까 뜯은 단무지 포장지를 찾아보았다. 오늘 산 단무지는 신맛이 너무나도 강했다. 물을 꽤 들이켰는데도 입안에는 신맛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라면 그릇과 냄비, 수저뿐인 단출한 설거리를 끝내고 구만은 양치질을 했다. 그런데 입안에서 무언가 까끌거리는 작은 조각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구만은 입에서 뱉은 아주 가늘고 휘어진 작은 조각을 보았다. 치아가 부서진 것인가, 아니면 레진이 깨진 것인가. 그 둘 중 어떤 것이든 치과에 가면 돈이 나갈 일이었다. 구만은 돈이 나갈 일에 겁이 덜컥 났다. 구만은 안경을 벗고, 노안이 온 맨눈으로 그 작은 조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겨우 1mm 정도쯤 되는 투명한 흰색 조각은 마치 낚싯바늘처럼 정교하게 휘어져 있었다. 치아가 그런 모양으로 깨질 것 같지도 않았다. 레진이라면 오래전에 부러진 앞 치아에 씌운 것인데, 그것은 만져보니 아무 이상 없이 매끈거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구만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Gemini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치아 조각이나 깨진 레진처럼 보입니다.'
구만은 특별히 이가 시리거나 아픈 것도 없고, 레진이 깨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점심때 멸치와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은 것뿐이라고 덧붙여 문장을 입력했다.
'아, 멸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을 보니 멸치에 있는 인두치(咽頭齒)일 가능성이 있네요. 인두치는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작은 이빨인데, 삼킨 먹이를 그것으로 잘게 부수어 냅니다.'
그럴 리가. 구만은 자신이 먹은 멸치가 아주 작은 멸치라고 알려주었다. 도대체 1cm 정도의 잔멸치 목구멍에 무슨 저런 이빨이 있단 말인가? 구만은 마치 새끼 고양이의 가느다란 발톱처럼 생긴 그 인두치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멸치에게 인두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람의 입안에서 바수어질 뿐인 저런 멸치도 목구멍에 또 다른 이빨을 달고 열심히 사는구나. 구만은 멸치의 조그만 인두치를 개수대에 털어버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슬픔이 느껴졌다. 먹고 사는 것의 처절한 비애가 멸치의 날카로운 인두치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혐오스러운 이빨의 존재를 알게 되니, 구만은 앞으로 멸치 반찬은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신,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는 거 알아?"
늦은 오후, 구만은 퇴근한 아내에게 자신이 알게 된 인두치에 대해 말했다. 지친 표정의 아내는 구만의 말을 심드렁하게 들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멸치볶음 안 먹겠네. 잘 됐지 뭐. 멸치 반찬 하는 거, 번거롭다고."
구만은 아내의 표정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구만은 아내가 석 달째 꾹꾹 참으며 이제껏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조만간 할 것임을 알았다.
'이제 몸도 좀 나아졌으면, 뭐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
구만은 여전히 자기 심장에 구멍이 생겼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메꿔지지 않을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는 퇴직금 잔고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서웠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 무서웠다. 구만은 자신에게 그 작은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인두치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삼키는 온갖 두려움과 걱정을 목구멍에서 다시 한번 바수어내는 인두치가 있다면, 속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구만은 자기 전에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을 가만히 만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