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쥬코 - 프랑스 희곡선 1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영문 위키 백과에서 로베르토 쥬코에 대해 찾아보니 이 인물의 간략한 전기가 나와 있었다. Succo 또는 Zucco로 불리는 이탈리아 태생의 이 연쇄 살인범은 1962년에 태어났다. 그는 19살이 되던 해, 차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부모를 칼로 찔러 죽였다. 같은 날 경찰 한명을 더 죽였는데 법정은 그가 정신이상이라는 이유로 10년 감호 선고를 내렸다.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던 그는 정치학 학위를 따기도 했다. 『로베르토 쥬코』에서 쥬코가 신사에게 자신을 학생으로 소개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년째 되던 해 탈옥을 한 쥬코는 유럽 일대를 떠돌며 강간과 납치, 살인과 같은 갖가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1987년과 1988년에 유럽에서 그의 이름은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고향에서 붙잡힌 그는 다시금 탈옥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결국 자신의 감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는 AIDS에 걸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지하철에 나붙은 쥬코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희곡을 썼다고 했다. 왜 콜테스는 이 살인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콜테스는 쥬코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 보여주기만 할 뿐, 왜 그가 그런 살인을 저지르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콜테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쥬코의 범죄행위가 아니라 쥬코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집안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소녀와 깊은 고독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귀부인 같은 인물은 모두 자신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들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성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콜테스는 그들을 소녀, 귀부인, 신사, 형사와 같은 일반명사로 지칭한다. 이 극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로베르토 쥬코 뿐이다.

 

  콜테스가 보기에 스스럼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다니는 쥬코나 쥬코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들은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마저도 죽여버리는 쥬코의 범죄는 혈육과도 단절된 마음의 무서운 심연을 엿보게 한다. 콜테스는 왜 쥬코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는 동성애자로서, 또 AIDS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느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소외와 고독을 쥬코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콜테스는 자신이 느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심연을 연쇄 살인마라는 거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쥬코는, 또 쥬코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소통을 갈구하지만 그 시도들은 결국 파국으로 끝나버린다. 『로베르토 쥬코』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앞의 생에 대해 결국 혼자일 뿐이라는 뼈저린 진실을 보여준다.

  과연 작가와 그가 쓴 작품을 엄밀하게 분리해서 보는 것이 가능할까? 콜테스의 경우엔 그것이 어렵다.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피가 날 정도로 파고 또 파내어 그것으로 작품을 써서 먹고 사는 존재이다. 나는 이 말이 잔인하지만 진실이라고 믿는다. 고통스러운 상처 하나 없이 순결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이, 그는 바로 작가이다. 콜테스는 자신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 점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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