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喪)

 
  "여기 모든 게 다 싫다고. 늙은것들, 다 추접스럽고 싫어."
  "아휴, 어머니. 옆에서 다 듣겠어요."
  "들으라지, 들으면 뭐 어때서?"

  설날, 방문객들로 붐비는 요양원 응접실에서 인희의 시어머니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뱉듯 그렇게 말했다. 인희의 시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술 이후 거동이 여의칠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지낸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엄마, 힘든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좀 적응을 하셔야지. 어떻게든 걸을 수 있다면 다시 집으로 가실 수 있어요. 그러니 여기서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
  "너도 여기서 밤낮으로 똥오줌 냄새 맡으면서 지내봐라. 밥이 넘어가질 않아, 밥이. 여기 노인들 거의가 다 기저귀 차고 있다고. 나 원 참. 더러워서."
 
  남편은 테이블 아래로 인희의 발을 툭, 쳤다. 어서 일어나서 가자는 뜻이었다. 인희는 울분에 찬 시어머니를 그래도 어떻게든 좀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자식인 남편이 저러고 있었다. 남편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절 연휴에 쉬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차를 몰고 세 시간을 꾸역꾸역 운전해서 왔다. 시어머니의 하소연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희도, 남편도 그 불협화음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언제 또 올 거냐?"
  "어떻게 또 시간을 내봐야죠."

  남편은 마지못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희는 자신도 남편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웬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어머니의 눈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울지 마시고요. 조금만 좀 참고 지내보세요."
  "너희들이라고 나중에 이런 데 안 올 줄 아냐? 괘씸한 것들."

  인희는 악담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화가 나기보다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니 말대로 자신과 남편도 언젠가 지금의 시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들 문호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그렇게 될 터였다. 25년쯤 될까? 인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78살인 시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뭔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설 연휴가 끝나고 인희는 미뤄두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안경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안경을 맞추러 가던 길이었다. 안경점 가는 길목에 있는 치킨집 문 앞에 검정색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喪중이라 가게 쉽니다'

  예전에는 저런 휘장의 글씨를 가끔은 볼 기회가 있었다. 인희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喪' 자가 생경스럽기도 하고 뜨악하기도 했다. 그냥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쉰다고 하면 되지 않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영 싫었다. 인희는 자신의 친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를 아주 싫어했다. 장례식장이라든가, 흰 국화, 운구차 같은 것들. 재작년이었던가, 인희는 산책길에 어느 아파트에서 흰 천으로 둘둘 말아진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신인 것 같았다. 저렇게 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있나 보군. 인희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기함하고도 남았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인희 자신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현관에 소금을 조금 뿌렸다.

  "전번에 맞춘 안경으로는 스마트폰은 잘 보이는데, 컴퓨터 글씨가 잘 안 보여요. 원거리 안경을 쓰면 좀 눈이 아프고요."
  "그래서 제가 선택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스마트폰인지 컴퓨터인지. 누진 다초점 안경이 아니면, 안경 두세 개 정도 두고 쓰셔야 합니다."

  늙음은 돈이 드는 일이다. 더럽게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1년 사이에 그렇게 인희는 세 개의 안경을 가지게 되었다.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심하게 있어서 대충 싸구려 렌즈로 맞출 수도 없었다. 합해서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돈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어쩔 수 없다고. 인희는 안경원 문을 나서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아까 본 검정색의 휘장이 펄럭였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상(喪)' 자의 두 개의 입구(口) 자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인희는 시어머니의 붉은 눈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신호등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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