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차(雙和茶)


  "아침에 일어났더니, 뭐가 '톡'하고 빠지는 거야. 하얀 거. 그래서 손으로 가만가만 만져봤더니, 이가 빠진 거야. 나사 같은 거 만져지고."
  "임플란트 한 거 빠졌나 봐요. 할머니, 그거 다음에 삼촌한테 가서 다시 하면 돼요."
  "에휴, 미안해서 그걸 또 어떻게. 지금 이를 두 개 또 심고 있는데."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은영은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끝냈다. 진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이제 아흔 살이 되었다. 최근에 넘어지면서 앞니 2개가 부러졌다. 삼촌이 치과의사라서 할머니의 치아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 예전에 했던 치아가 또 하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늙어서 자꾸 자식들에게 몸 아픈 이야기만 하고... 할머니는 그런 말을 하면서 미안해했다.

  아흔 살에도 틀니를 하지 않고 임플란트를 하는구나. 음식을 자신의 치아로 씹는다는 건 참 중요한 거니까. 아들이 치과의사니까 할머니는 치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삼촌은 은영의 사랑니를 하나 빼주었고, 두 개의 치아를 신경치료 했다. 아, 레진 하나 때운 것도 있지. 은영이 학생 시절일 때라 삼촌은 은영에게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만약에 이제 삼촌한테 가서 임플란트를 하면, 삼촌은 진료비를 얼마나 받을 것인가? 은영은 잠시 그 생각을 했다. 돈 없는 예술가인 것을 좀 감안해 주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것이 불편해서 삼촌의 치과에 가지 않은지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치아가 톡, 하고 빠지는 아흔 살의 어느날 아침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늙어가는 것은 어느날 예고없이 치고 들어오는 약간은 센 펀치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얼얼하지만, 같은 강도의 주먹이 연달아 날아들면 그럭저럭 견딜 만해진다. 잇몸은 인정사정없이 내려가고, 머리카락은 계속 빠진다. 비오틴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덜 빠질까? 아니요, 선생님. 피부과에 가서 탈모약을 처방받는 것이 낫습니다. chat gpt는 부드럽지만 이상하게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글쎄, 파스도 너무 비싸. 전번에 민우에게 파스 좀 싸게 사 오라 했더니 빈손으로 터터덜 오지 뭐냐."

  할머니, 삼촌은 치과에서 환자 보느라 바빠. 파스 사 올 시간이 어딨어? 은영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삼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저 무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은영은 오래전에 삼촌이 자신의 사랑니를 힘들게 빼준 것을 떠올렸다. 약국에 갔다가 할머니에게 보낼 파스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갔다가 쌍화차가 세일하는 것을 보았다. 쌍화차 분말과 견과류 고명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고급 쌍화차. 세일을 해도 비싼 제품이었는데도 은영은 샀다. 어쩌면 달달한 설탕의 맛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전통차는 달다. 올겨울에 이 회사의 율무차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 이 쌍화차를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집에 와서 쌍화차를 타서 먹어본다. 적당한 선을 살짝 넘어버린 단맛, 그리고 싸구려 한약 냄새가 풍기는 얄팍한 맛. 은영은 자신이 쌍화차를 좋아할 나이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뻤다. 기뻤다기보다는 안도했다. 진이 할머니는 이 쌍화차를 분명히 좋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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