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나는 너무나도 오래 살았다. 정말로 오래 살아서 그런 것으로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오래 살았다고 느낀다. 나의 주인은 얼마 전에 죽었다. '얼마 전'이라고 쓴 것은 나도 주인이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파서 죽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일 수도 있겠지. 주인의 딸은 나와 함께 침대 매트리스도 함께 버렸다. 주인, 그러니까 영감이 쓰던 매트리스. 영감은 중풍을 오래 앓았다. 매트리스에서는 지독한 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이 추운 겨울에도 그 지린내가 내 몸에 옮겨붙은 것 같다.

  중년의 여자가 선풍기를 버리고 간다. 이상하게도 선풍기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 날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여자가 선풍기를 버리면서 중얼거린다. 아까워, 아까워, 너무 아까워. 나는 여자가 가버린 뒤로 선풍기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보았다.

  "넌 어쩌다가 여기 온 거야?"
  "저 여자가 청소하다가 나를 넘어뜨렸어. 그런데 그만 날개가 부러지고 말았지. 사실 내 모터는 멀쩡하거든. 날개가 부러지니까 쓸 수 없다고 버린 거지. 여자는 날개를 접착제로 붙이려다가 실패했어.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선풍기 날개를 본드로 붙이려고 하다니."
 
  모터가 멀쩡한 그 선풍기는 고물 가전을 수거하는 업자가 오더니, 냉큼 집어서 들고 가버렸다. 안녕, 잘 가렴. 어떻게든 너는 다른 날개를 달고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냄새나는 매트리스 바로 옆에서 코를 틀어막으며 숨을 겨우 내쉬었다.

  "왜 이건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거야?"

  대머리 경비가 와서는 나를 쳐다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어. 영감의 딸은 돈을 아끼려고 나한테는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지 않았거든. 나는 어쨌든 멀쩡해 보이니까, 누군가는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서였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나한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태권도복을 입은 조그만 아이가 나한테 와서는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코딱지를 붙여놓고 가더군. 내가 팔이 있었다면, 그 녀석 머리를 쥐어박아 주었을 거야. 추접스럽게 이게 뭐람. 요새 젊은 것들이 애들 가정 교육을 도무지 안시키기 때문에 그래. 아이들은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욕하고, 악다구니를 쓰지. 세상이 말세야, 말세.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니까 무서워."

  오줌 자국이 선명한 매트리스가 오그라든 입으로 중얼거렸어. 그럴 거야. 넌 아무래도 갈가리 다 찢겨서 버려지지 않겠니. 널 누가 데려가겠어. 난 그래도 어디 흠이 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겠지.

  "그래서, 그만 끝내겠다는 거야?"

  중학생으로 보이는 계집애 하나가 내 앞에 서서 그렇게 말했다. 여중생은 통화중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연애질을 하는 모양이군. 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무어라 더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어.

  "야, 너 같은 건 널리고 널렸어. 웃기고 있네."

  끝났나 보군. 잘 된 거야. 잘 된 거지. 나는 전화기 너머의 알지 못하는 어떤 녀석, 아니 계집애일 수도 있잖아. 세상이 변했으니까. 아무튼 여중생의 파트너랄지, 연애 상대에게 박수를 보냈어. 틴트 하나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는 저런 칠칠하지 못한 애하고는 사귀지 않는 게 나아.

  "뭐야, 병신같은 게."

  계집애는 발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세게 찼어. 젠장. 그게 내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거지. 정말로 나는 병신이 되어버린 것 같았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말았지. 조금 전까지는 멀쩡한 거울이었는데, 깨어진 거울이 되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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