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
처음에는 그것이 그냥 막대기인 줄 알았다. 아주 기다란 막대기. 그런데 다가가서 보니 아니었다. 무지막지하게 큰 가시가 덕지덕지 붙은 엄나무였다. 아파트 출입문 뒤편, 응달진 곳에 1미터 높이의 엄나무를 누가 심어놓았다. 희주는 그 막대기, 아니 엄나무가 눈에 거슬렸다.
"왜 저런 곳에다 심어놓은 거지?"
아마도 가시가 있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엄나무는 심어보고 싶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동네에는 도무지 상식과 교양이 없는 인간들이 메뚜기처럼 출몰한다.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계속 내던지고, 물티슈를 비롯해 음식물 쓰레기도 내던진다. 화단에 온갖 화분이며 돌멩이를 모아다가 쌓아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일 것이다. 희주는 관리사무소에다 그것들을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워져서 다시 시간이 지나면 화분과 돌들, 항아리까지 화수분처럼 생겨났다. 아마도 그 사람에게 아파트 화단은 자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원인 듯싶었다.
희주는 엄나무의 밑동을 발로 툭툭 쳐보았다. 자신이 쓰러뜨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찌나 단단하게 심어놓았는지 막대기 같은 그 나무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쇠막대기 같았다. 그런데 그 쇠막대기의 맨 꼭대기에 보라색 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추운 겨울에 나무는 치열하게 사는 중이었다.
"6호 라인 출입구 뒤쪽에 1미터 정도 되는 엄나무가 있어요. 아파트 공유지를 개인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처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제거하든지, 다른 곳에 옮겨 심든지요."
집으로 돌아온 희주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무언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마도 그 보라색 새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는 살아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궁금해졌다. 그 나무를 그냥 거기에서 자라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을까?
"당신은 해야 할 전화를 했을 뿐이야. 오히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자라면, 나중에 거칠게 뿌리뽑힐 뿐이지."
앞집의 노인은 죽어가고 있다. 거동하지 못한 지가 꽤 되었다. 오늘 낮에는 전동 침대 대여회사의 설치 기사들이 다녀가는 것을 보았다. 노인의 나이는 구십을 훌쩍 넘겨서 백 살에 가까웠다.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병간호를 한다. 늙은 딸이 데려온 개가 희주와 남편이 드나들 때마다 짖어댔다. 희주는 저 노인이 올봄을 넘길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봄과 가을에 노인들은 많이 죽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사망률이 치솟지요."
언젠가 TV에 나온 의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죽지만, 엄나무는 베어져도 뿌리가 있는 한 살아남을 것이다. 새순이 마치 붉은 피처럼 너무나 선명해서 희주는 그것을 차마 베어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걸 심은 인간은 엄나무 순을 잘라서 먹고, 그 가시가 있는 가지를 삶아서 몸보신이나 하려고 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은 무엇에 쓸모가 있을까? 엄나무는 쓸모가 있으니,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희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