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
허리가 직각으로 굽은 할머니가 장바구니 카트를 힘겹게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노인은 엘리베이터 앞의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시장에 봄동이 나와서..."
노인은 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몇 층 사세요?"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려고 노인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대답 대신에 장애인 전용 버튼의 숫자를 얼른 눌렀다. 8층이었다.
"말할 기운도 없어."
노인의 카트에는 봄동과 함께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있었다. 그 무거운 것을 끌고 어떻게 온 것일까? 기운이 너무 없는지, 노인의 말소리는 물크러지고 곰팡이가 핀 귤 같았다.
"조심해서 가세요."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를 못하는 엄마와 함께 내리면서 나는 인사했다. 집에 들어온 나는 TV를 켰다. 케이블 채널을 빠르게 돌린다. 엄마가 좋아하는 '현장르포 특종세상'이 나온다.
"이거 좀 보고 계세요."
"너는 어디로 가는 거냐? 넷째는 언제 온다니?"
나는 엄마가 말하는 넷째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봄동을 보았다. 한 봉지에 3천 원이었다. 비싸지 않은 것 같아서 샀다. 그런데 나는 봄동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요리라는 것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봄동은 보통 겉절이를 해서 먹지. 나의 부엌에는 고춧가루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매운 것을 조금만 먹어도 속이 쓰렸다. 어쨌든 봄동의 잎을 톡, 톡 뜯어내었다.
다음날, 엄마에게 점심을 차려줄 때 그 봄동을 식탁에 내놓았다.
"달구나. 달아."
나는 8층의 노인이 앞으로 봄동을 먹을 수 있는 날들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았다. 노인은 팔순을 쉬이 넘긴 것처럼 보였다. 굽은 허리로 장을 힘겹게 봐올 정도면, 분명히 혼자서 살고 있을 것이다. 16평의 이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산다. 나는 그래서 이 아파트를 노인동이라고 부른다.
엄마의 집을 나올 때, 아파트 앞에는 익숙한 녹색의 목욕 차량이 보였다. '효녀 심청이 목욕 서비스'라고 커다란 글씨가 박힌 차. 차에서는 희뿌연 오수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그 차를 보고는, 자신의 부모를 남한테 목욕시키게 하는 자식들이 불효막심하다면서 분개했다. 나의 오른팔은 테니스 엘보에 시달려서 고무팔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 목욕 차량을 지나오면서 아픈 오른팔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