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적


  "대충 여기쯤일 것 같은데..."

  현수는 명 선생이 알려준 주소와 약도를 들고, 골목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방기가 내걸린 양옥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황해도 장군 만신(萬神)의 집'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초록색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현수는 쭈뼛거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좀 낡은 2층 양옥집이 그곳에 있었다. 생각보다 꽤 널따란 마당에서는 장작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타올랐다. 12월이기는 해도 갑작스럽게 시작된 한파에 사람들은 다들 놀란 모양새였다. 그 이전까지 날이 포근했기 때문이었다. 현수도 아침에 옷장에서 롱패딩을 꺼낸다고 부산을 좀 떨었다. 그렇게 챙겨입고 나왔는데도, 전철에서 나와서 주택가 골목을 꽤 걸었더니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장작불이 타오르는 드럼통 근처에는 중년의 남자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 하나가 현수의 인기척에 말을 걸어왔다.

  "굿 보러 왔어요?"
  "네."
  "그럼, 2층으로 가보쇼. 거기에 보살님이 있으니까."
 
  현수는 대답 대신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2층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현관문이 비스듬히 열려있었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마루를 둘러보았다. 마루에서 보이는 주방에서는 중년의 여자들 서너 명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구야, 어디서 오셨어? 이렇게나 일찍 왔네."
 
  안방에서 쪽찐머리의 나이 든 보살이 나왔다.

  "저기, 명 선생님 소개로 왔는데요."
  "아, 명 선생님하고 아는 분이구나. 여기로 들어와요. 오느라 애썼네. 시장하지? 저기, 서천댁! 상 좀 차려봐."

  현수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보살은 부엌 쪽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나이가 꽤 들기는 했어도, 보살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저 양반이 장군 만신인가 보군. 정말 장군신(將軍神)을 모셔서 그런가, 늙은 보살에게서는 기백이랄지 그런 것이 있었다.

  "야, 너도 인제 그만 좀 일어나라. 손님도 왔는데."

  보살이 안방에 드러누워서 자던 남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의 그 남자는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이내 일어났다.

  "아, 정말 잘 잤다. 일주일 내내 굿을 했더니, 너무 피곤해."

  한복을 입은 그 남자는 박수무당이었다. 현수는 작년 가을에 운현궁에서 있었던 굿판에서 그 박수를 본 적이 있었다. 저 양반이 이 만신과도 다 그리 연결되어 알고 지내는가 보다. 그것은 하나의 큰 가족이었다. 커다란 굿을 따내면, 함께 굿을 해서 수익을 나누는 믿음과 사업의 공동체 같은 것이었다.

  "제가 여기 들어와도 될지..."
  "아이고, 무슨 소릴. 배고플 텐데, 우선 식사나 해요. 어디, 굿판은 많이 좀 돌아봤수?"
  "아뇨. 그냥 명 선생님 따라서 서너 번 본 게 전부입니다."
  "그렇구나. 이왕지사 여기 왔으니까, 구경 잘하고 가요."

  보살이 사람을 대하는 데에는 나름 살가운 구석이 있었다. 그럼에도 갑작스레 보살의 집 안방에 앉게 된 현수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때마침 방 안으로 밥상이 들어왔다. 작은 소반에 오징어무침, 잡채, 시금치나물, 겉절이, 시레기국, 쌀밥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젊은 양반, 어여 들어. 나는 주방에 가서 일을 좀 도와야 해서."
  "네, 잘 먹겠습니다."

  현수는 추운 날씨에 낯선 길을 헤매느라 허기가 지기도 했다. 명 선생이 이르길, 저 장군 만신은 원체 배포가 크고 사람이 너그럽다고 했다. 모처럼 열리는 진적굿이니, 자기 이름을 대면 섭섭지 않게 대접해 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명 선생은 무슨 시 쓰는 양반이 언제 저렇게 보살을 알게 된 것일까? 현수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밥을 먹었다.

  "고모님, 저희 왔어요."
  "아이구, 이게 누구야? 벌써 신혼여행 갔다 온 거냐? 여기로 들어와라."

  보살의 친척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현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자기가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현수가 밥을 먹다 말고,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났다. 그러자 보살이 현수에게 그냥 앉으라고 손짓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냥 밥 먹어요. 여기는 내 조카 손주하고 며느리."
  "아, 네..."
 
  보살이 소개한 조카 손주는 삼십 대 초반, 그의 아내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굿 보러 오셨나 봐요."
  "네. 보살님이 이렇게 대접을 해주셔서..."
  "우리 고모님이 원래 손님 접대는 아주 잘하시는 분이세요. 저희 신경쓰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식사하세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 제주도는 잘 다녀왔어?"
  "네. 처갓집 심방(제주의 무당을 이르는 말) 어르신들 좀 뵈었습니다."
  "거기 일가분들은 아직도 굿을 하시나?"
  "웬걸요. 이제는 굿 일감도 들어오지 않고, 심방을 하려는 사람들도 거의 없답니다."
  "일이 그리되었나? 하긴, 사람도 시대도 많이 변했지."

  보살은 배자(褙子)의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불을 붙였다. 현수는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긴장이 풀어졌다.

  "심방의 무구(巫具)는 제자들에게 물려주게 되어있는데, 하려는 사람들이 없답니다. 그러니 대개는 박물관으로 간다 그러더구만요. 박물관마다 그렇게 기증받은 무구들이 넘쳐난대요."
  "저런, 제주의 신령님들이 많이 서운하시겠구먼."
  "그래도 땅과 하늘에 깃든 신명이 어디 딴 데 가시겠습니까? 어찌됐든 제자들은 나올 테고, 당연히 받들어 모시겠지요."
  "그렇겠지. 정성을 다해 빌면, 그 공덕이 다 쌓이는 법이야."

  보살의 그 말은 현수의 마음 한구석을 툭, 하고 건드렸다. 정성을 다한다면, 그것이 모여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까? 소설을 쓴 지 5년. 응모한 공모전의 최종심에 올라가 본 것은 3번이지만, 아직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제는 슬슬 글쓰기를 그만 두어야 할까 싶은 고민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아, 네. 아주 맛있네요."

  보살의 조카 손주가 밥을 천천히 먹고 있는 현수에게 물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물어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대학원생이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이라면..."
  "소설을 씁니다."

  현수의 말을 듣던 보살이 지그시 웃었다.

  "아, 소설이요? 그런데 고모님은 왜 웃으세요?"
  "아니야, 아니다. 내가 뭘 웃었다고 그래?"
  "에이, 내가 봤는데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 손님에게 해주세요."
  "글쎄다."

  현수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보살이 자신에게 뭔가 말할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학생은 내가 말하면, 듣고 싶은 생각이 있어?"
  "네. 저도 좀 답답한 것이 있어서..."
 
  보살은 재떨이를 끌어다가 이내 담배를 비벼서 껐다.

  "글월 문(文)자가 보이기는 하는데, 그거 가지고는 글밥 먹고 살기 어려워. 어째 들리는 소식도 없고, 신통치가 않지? 계속 갈까 말까, 속은 시끄럽고."
 
  현수는 대답 대신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살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냥 여기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는데, 내가 보기엔 그래."
  "아이고, 고모님도 참. 뭘 그런 말씀을..."
 
  보살의 말을 들은 현수는 허를 찔린 것 같았다. 정말로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 정말로? 그렇게 속으로 되묻고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노력하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거든요. 글쓰기 말고, 딱히 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먹고 살 방도를 말하는 거지? 학생은 관운(官運)이 있긴 있으니까, 공무원이 되는 것도 괜찮아."

  현수는 나이 서른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심란해졌다. 차라리, 저 말은 안 듣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근데 본인이 고집이 세어서, 아마도 하던 걸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보살의 그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현수는 새삼 자신이 살아온 서른 해를 돌이켜 보았다. 이제껏 자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것도, 그리고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소설을 쓰기로 한 것도. 모두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도무지 돈도 되지 않는 공부만 한다고 다들 싫은 소리를 했다. 현수의 그런 선택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부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자 살자 글을 치열하게 쓴 것도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그건 어설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몰랐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들이 보기에, 현수는 그저 제멋대로 하는 철부지일 뿐이었다. 

  "탁, 탁, 탁!"

  보살은 성냥갑에서 성냥을 하나 꺼내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유엔(UN) 성냥'이라는 성냥갑의 글씨가 선명했다. 아니, 저 성냥이 아직도 나오나? 현수는 신기한듯, 성냥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수는 아주 어렸을 적에 저 성냥갑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람의 고집은 이 성냥 같은 거야.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성냥을 쓰지, 라이터는 어째 못 쓰겠더라고."
  "고모님은 신딸, 신아들한테도 초에 라이터 쓰지 말라 잔소리하시죠?"
  "그거야 당연하지. 신령님께 올리는 초를 켜는데, 정성을 들여야지. 어디 편하게 불을 켜면 쓰나?"
  "아이구, 우리 고모님도 참... 하여간 못 말려요, 못 말려."

  보살의 조카 손주가 그렇게 눙쳤다. 그 말을 들으니, 보살의 말에 경직된 현수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요."
  "벌써 가냐? 하긴, 여행 갔다가 와서 피곤하기는 하겠다. 어여 가서 쉬어."
  "네. 저희는 먼저 일어납니다. 굿 잘 보고 가세요."

  보살의 조카 손주 내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수는 어쩔 수 없이 앉아있었던 자신 때문에 그들이 서둘러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가 자리에 있어서 불편하셨을 거 같아요."
  "그럴 리가요. 저희도 고모님께 짧게 인사드리고 가려던 참인데요."
  "잘 살아라. 잘 살 거야. 자식도 많이 낳고, 다복하게. 암, 그래야지."

  보살은 조카 손주와 며느리에게 축원의 말을 하며 대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들이 그렇게 떠난 방에서, 현수는 식어버린 밥과 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무당의 진적굿을 보러 온 것부터 해서, 그 무당의 조카 손주 내외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무당의 공수까지. 언젠가 소설을 쓸 때 써먹으면 되겠군. 현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상에 남은 밥과 국을 마저 비웠다.

  "웬 손님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네."

  한복을 입은 50대 중반의 여자가 방에 앉아있는 현수를 힐끗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뭐랄까, 참 무례하게 들리는 말투였다. 중년 여자의 옆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얼굴이 무척 고왔다. 현수는 언젠가 저 두 여자를 TV에서 본 기억이 났다. 젊은 여자는 한때 잘 나가던 배우였으나, 갑작스럽게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 무례하게 말한 여자는 그 배우에게 내림굿을 한 신(神)엄마였다. 말하자면 그 젊은 여자는 보살에게는 손녀딸쯤 되는 관계였다. 진적굿은 무당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신령님들께 바치는 큰굿이다. 그런 중요한 행사를 위해 보살의 신딸과 신아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굿 보러 왔어?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려나 보네."

  현수는 자신에게 거리낌없이 말을 놓는 여자를 보고 기분이 확 상했다.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군. 신을 모신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반말지거리해도 된다는 건 아닐 텐데. 현수는 다 먹은 밥상을 들고 일어섰다. 부엌에 상을 내려두고는,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다.

  "6시부터 굿이 시작되니까, 내려가 봐요."

  부엌에서 일하던 아줌마 하나가 현수에게 그렇게 일러주었다. 마루의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었다. 현수는 안방 한구석에 놔둔 자신의 백팩을 한쪽 어깨에 대충 메었다.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젊은 여자는 기운 없는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있었다. 여자에게는 생기가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행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아이 둘을 놔두고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던가? 여자는 신병(神病)이 심해져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수는 TV에서 본 다큐의 내용을 떠올렸다. 현수가 본 여자의 신엄마는 무례하고 우악스럽게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인생이란 것이 참으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구나. 현수는 여자의 선택을 새삼 복기하면서 삶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마당 장작불의 붉은 빛이 2층의 계단을 내려가는 현수의 눈에 환하게 비쳤다. 어느새 마당은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촬영을 위한 카메라 장비를 둘러멘 사람들이며, 종교 관련 연구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손마다 녹음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보살의 굿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살이 마침내 화려한 무복(巫服)을 입고 나타났다. 보살이 제일 먼저 굿당에 들어갔고, 마당의 사람들은 그 뒤를 따랐다. 30평 정도 되는 굿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수는 가방을 끌어안고는, 굿당 뒷줄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현수의 주변에 앉은 이들은 모두 나이든 할머니들이었다. 굿을 보러 동네 노인들이 구경을 나온 모양이군. 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굿을 하기 전에 제단을 정화하는 주당(周堂)물림은 오전에 이미 끝난 터라, 저녁의 굿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보살이 주력으로 모시는 장군신을 비롯해 여러 신들을 청해서 제단에 좌정시키고 흥겹게 해드려야 한다. 보살은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신이 올라서 아주 힘있게 뛰더니, 덩실덩실 춤을 췄다. 현수는 늙은 만신의 몸 어디에서 저런 기운이 나오는가, 그저 신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춤을 추며 사설을 풀어내던 보살이 갑자기 멈추더니, 출입구에 자리한 작은 옷장으로 달음질을 쳤다. 그러고는 그 옷장에 있는 온갖 무복들을 죄다 꺼내어서 바닥에 내던졌다. 아마도 여러 신들이 오시니까 거기에 맞는 무복을 골라 입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작은 옷장에서 무복들이 무진장 쏟아져 나왔다. 현수는 옷장이 자리한 벽 안쪽에 어디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보살은 이 옷 저 옷을 몸에 대보고는 흥이 나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러면서 앞자리에 앉은 이들도 일으켜 세우면서 춤을 추게 하였다. 아마도 평소에 보살을 찾는 단골들로 보이는 이들은 스스럼없이 일어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분위기를 맞추었다. 현수의 옆자리에 앉은 노인들도 하나둘씩 일어났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양새가 그 할머니들이 보살과 같은 무당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이 노인들은 모두 보살의 친구들이구나. 무당 친구들.'

  모두들 서서 춤을 추고 있는데, 오직 현수만 뻘쭘하게 앉아있었다. 현수는 마치 아르마딜로가 위기 상황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듯, 백팩을 꼭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이 모든 상황이 현수에게는 낯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사람들로 꽉 들어찬 이 굿당에서 어떻게 나가볼 방법도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현수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춤을 추고 있는 허연 파마머리의 할머니였다. 노인이 입은 자주색 솜조끼의 노랑 꽃무늬가 나풀거리며 현수의 눈에 떨어졌다.

  "학생도 같이 춰. 어여!"

  현수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 틈에서 가방을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봐 등에 백팩을 메었다. 그리고서 노인의 손짓을 따라 천천히 팔을 들었다 올렸다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춤을 따라 추기 시작하자,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면서 춤사위가 가벼워졌다. 현수의 팔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무언가가 떠밀리듯 들이쳤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런 현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8살 때, 아파트 주차장에서 있었던 사고였다.

  부주의한 트럭 운전사가 트럭을 후진하다가 그 뒤에서 놀던 현수를 쳤다. 현수는 다행히도 다리만 살짝 다치는 경상을 입었다. 트럭 운전자는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았다. 현수의 집을 찾아 사과하지도 않았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 경찰에게 증언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 사고는 현수의 종아리에 기다란 흉터를 남겼다. 만약에 그 빌어먹을 트럭 기사가 조금만 더 뒤로 세게 후진을 했다면 어땠을까? 현수는 비로소 8살 이후의 자신의 삶이 덤으로 얻은 것임을 깨달았다.

  현수의 손은 나비처럼 부드럽게 펄럭였고, 발은 가볍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걸 보고, 신이 실렸다고 하는 것이겠구나. 어쩌면 현수가 쓰는 글도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같았다. 어느 날에는 나이든 여자가, 또 다른 어느 날에는 아이가, 그다음날에는 젊은 남자가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 현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그것은 억지로 지어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무당의 팔자나 작가의 팔자나 별반 다를 게 없군.'

  사람들을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던 현수는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던 현수의 등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무음으로 해놓은 휴대전화의 진동이었다. 현수는 탁해진 공기와 사람들을 헤치고 겨우 굿당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전화에 찍힌 발신 번호는 명 선생이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굿은 잘 보고 있는 거야?"
  "굿당에서 떠밀려 춤추다가 이제 나왔네요. 선생님은 언제 와요?"
  "난 밀린 일 좀 해야 해서. 어차피 굿은 사흘 내내 이어지니까, 내일 아침에나 출발하려고. 거기서 밤샐 거야?"
  "어휴, 힘들어서 못 해요. 춤 좀 췄더니, 기운이 다 빠지는데."
  "그럼,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와서 봐."
  "네, 그러려고요."

  현수는 휴대전화의 시각을 확인했다. 9시 43분. 인천에서 지금 출발하는 전철을 타야만, 집으로 가는 심야버스 막차를 겨우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깥의 공기는 머리가 쨍하고 깨질 듯이 차고 매서웠다.

  "뭔 날씨가 이리 오지도록 추워."
  "그러게. 그런데 내년 별신굿 소식은 들었어?"
  "거기 굿하지 않은 지가 꽤 되었어. 한 6년 되었나? 박만출 만신이 세상 뜨고는 굿 보기 어렵게 되었지. 굿할 돈 걷기도 어렵다 그러던데. 인자는 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사니까. 그런 큰굿에 돈이 오죽 드는가 말일세. 그러니 지금 진적굿도 여기 보살이 큰맘 먹고 5년 만에 하는 것이고."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 제대로 된 굿 한번 보기가 참 힘들어."
  "그러니까 굿도 짧아지는 거야. 이제는 무당들도 사설을 길게 안 하잖아. 사람들이 참을성이 없어서, 뭔가를 길게 못 본다고."

  두 명의 중년 남자는 드럼통에서 타는 장작불 옆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벌써 가시게? 내일 또 와서 보구려. 이런 굿 또 보기 어려우니."
 
  불을 쬐던 한 남자 하나가 대문으로 가는 현수를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현수는 남자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는 보살의 집 대문을 나섰다. 늦은 시각의 골목길에는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집에선가 큰 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골목이 끝나는 곳에 이르렀다. 붕어빵을 파는 장사꾼의 노점이 보였다. 팔지 못한 붕어빵들이 주르르 늘어져 있었다. 남자는 히터 옆에서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출출해진 현수는 붕어빵을 사려다가,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장사꾼의 잠을 깨우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이제 보름 정도 남은 건가? 현수는 가만히 올해 남은 날들을 헤아려 보았다. 내년 봄부터 소설 공모전 일정이 시작된다. 문득, 쓰고 있는 중편을 장편으로 늘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떻게든 써봐야지. 현수는 자신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푸르고도 서글픈 예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은 글만 써내다가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이 써내는 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글의 모양새는 어떨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괜찮아. 덤으로 주어진 인생, 아직은 써야 할 것이 있어. 현수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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