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BP 그룹은 창사 5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합니다. 우리 그룹에는 새 시대에 맞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희망퇴직을 단행하고자 합니다. 희망퇴직 신청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 40세 이상, 근속 연수 10년 이상... '

  사내 인트라넷 플로우(FLOW)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도경은 가슴이 조여드는 통증을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을부터 소문만 무성하던 2차 희망퇴직 계획이 결국 그렇게 발표되었다. 48살에 근속 연수가 20년. 차장이라는 직함을 달고서 벌써 3년. 부장으로의 승진은커녕, 이제는 희망퇴직 대상자에 자동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 팀장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인력 개발팀의 박 팀장이 제일 먼저 신청서를 냈다고 그러던데."
  "생각해 봐야지, 뭐. 결국 눈치 싸움 아니겠어?"
  "글쎄. 작년의 1차 희망퇴직 때 생각하면, 아직도 오싹오싹하다니까. 끝까지 버티던 사람들, 그냥 지방 공장으로 다 밀어내고 말이지."

  영업 1팀의 송 팀장이 유들거리는 말투로 도경의 신경을 긁었다. 자기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송 팀장은 창업주 회장 쪽에 어떤 끈이 있다고 듣기는 들었다. 오늘따라 송 팀장의 얼굴에는 개기름이 더 번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뿐만 아니라, 패딩 조끼 사이로 삐져나온 퉁퉁한 뱃살도 도경의 눈에 아주 거슬리게 보였다.

  근속 연수 10년에서 15년인 희망퇴직자는 퇴직금과는 별도로 20개월 치의 기본급을 수령한다. 도경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희망퇴직을 신청한다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퇴직금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전직 지원금 1500만 원에 자녀 학자금 2000만 원이 더해질 뿐이었다. 그것도 희망퇴직을 신청했을 때에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나중에 퇴직자 명단에 들어가면, 그 돈마저도 받을 수 없다. 도경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말하자면, 그냥 기계의 부속 같은 거지. 나사 같은. 언제든 빼버리고 갈아 끼울 수 있는."

  도경은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대신에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비정하다. 더럽게도 비정하다. 최고의 직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젊은 날을 갈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20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명제와 회사의 발전이 기묘한 줄타기를 해온 세월이었다. 도경은 회사가 삼켜버린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생각했다. 이제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는 때도 자주 있었다. 휴지 하나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정갈하고 매끈한 건물은 그런 도경의 일부를 게걸스럽게 먹은 것이다. 알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이 계단을 내려가는 도경의 다리를 휘청거리게 했다.

  '은별 마을 1단지의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를 축하합니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는 도경의 눈에 아파트 입구의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도경이 사는 이 아파트는 45년이 된 낡은 아파트였다. 은행 융자를 무리하게 받아서 겨우 마련한 집. 도경이 자신의 집을 은행과 공유하지 않게 된 것은 이제 겨우 3년이 되었다. 집 한 채는 건졌군. 도경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재건축 광풍이 몰아닥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몇억에 이른다는 재건축 분담금을 무슨 수로 마련한단 말인가?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투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오래된 아파트는 멀리 날아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신, 왔어? 저녁은 먹었지? 난 너무 졸려서 일찍 자려고. 엊그제 김장해놓고 나니 진이 다 빠져."

  아내는 하품을 하더니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부부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신경이 예민한 도경은 아내의 코 고는 소리를 더는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부부는 각방 생활에 합의했다. 그즈음, 지방의 대학에 진학한 아들이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23평 아파트의 공간에는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아들이 가져가지 않은 짐들을 대충 정리해서 창고에 넣었다. 그리고 그 방을 자신의 방으로 꾸며서 썼다.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가을도 슬슬 막바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됩니다. 그동안 포근했던 날씨 때문에 이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뉴스 채널에서는 기상 캐스터가 날씨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이제는 겨울이군. 그럼, 그 영화를 봐야겠네. 해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도경이 봐야만 하는 영화. 도경은 거실 TV 장식장의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모서리가 닳은 대학 노트 1권과 DVD가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였지?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이...

  "혹시 여기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있나요?"

  카운터 안쪽에 커튼이 쳐진 방에는 덩치 큰 남자들이 한창 포커를 치고 있었다. 주인 남자는 포커를 치다 말고, 마지못해 카운터로 나왔다.

  "그런 건, 우리 가게에 없어. 딴 데 가보는 게 좋을 거야."

  팔뚝에 푸른 닻 무늬의 문신을 한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도경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포커판으로 돌아갔다.

  "야, 가자. 좀 무섭네. 저 사람들, 조폭 똘마니들 같지 않냐?"

  도경이 가게 진열장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정운에게 말했다.

  "근데, 도경아. 여기 괜찮은 물건들 좀 있는데?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있어. 이거 당연히 해적판이겠지만, 화질이 우리가 가진 것보다 좋을 수도 있잖아."
  "그만 해. 저 남자가 하는 말 들었지? 우리더러 나가라는 거야. 그냥 가자."
  "그래도..."

  정운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진열장에서 몸을 돌렸다. 그 가게를 나온 도경과 정운은 대학로의 비디오 가게들을 하나씩 훑어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찾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작 그 영화를 구한 곳은 가톨릭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성 바오로 서점에서였다. 미디어 선교를 하는 수도회에서 신자들의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는 비디오테이프도 대여하고 있었다. 도경은 서점에 가서 회원 가입을 하고, 비디오를 빌렸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복사본을 하나 만들었다. 그들이 속한 영화 동아리 회원들을 위한 소장 자료로 쓸 생각이었다. 그렇게 만든 복사본을 가장 먼저 빌려 간 사람은 정운이었다.

  시네필(Cinephile). 도경과 정운은 영화 동아리 시네필의 창립 멤버였다. 회원이라고 해봐야 일곱 명이었지만, 그마저도 동아리방에 나오는 사람은 도경과 정운, 영호, 이렇게 셋이었다. 영호는 영화 감상보다는 영화 연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호가 감독들의 영화 연출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도경과 정운은 그냥 심드렁하게 들었다. 둘은 영화사 책에 나온 명작 영화들을 쉽게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서울 시내 비디오 가게 곳곳을 누비며 다녔다. 가끔은 그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구할 때도 있어서, 둘의 나들이는 주말의 순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 주말의 순례는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그해 늦가을에 갑작스럽게 끝나버렸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찾아낸 지 1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영호야, 정운이랑 연락이 안 되네. 혹시 너한테 전화 온 거 없어?"
  "야, 정운이는 너하고 더 친하잖아. 아, 잠깐. 그러고 보니까, 월요일 전공 필수 수업에 안 나오기는 했네.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응.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어. "

  영호와 정운은 경영학과 동기였다. 동아리방에는 줄이 나간 기타 하나가 있었다. 그 기타를 하릴없이 뜯던 영호가 기타를 내려놓았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렇겠지?"

  도경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운은 도경과의 비디오 가게 나들이를 아주 즐거워했다. 오히려 도경이 귀찮아서 가지 않으려고 하면, 영화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면서 도경을 닦달할 때도 있었다. 그런 정운이 지난 주말에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어디가 심하게 아픈 건가?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독감이라도 걸려서 드러누웠나? 도경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화요일 오후를 보냈다. 영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밤 9시 무렵이었다.

  "도경아. 여기, 한성 병원 영안실이야. 정운이가 여기 있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걔가 왜 거기 있어?"
  "암튼 와봐라. 전화로는 말 못 해."

  영호의 쉬어버린 목소리는 뚜, 하는 신호음과 함께 끊어졌다. 영호의 말대로 정운은 영안실에 있었다. 그곳에서 도경은 정운의 아버지를 보았다. 갑작스럽게 자식을 잃은 정운의 부친은 황망한 표정으로 영안실 복도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정운이가 좀 험하게 가서, 장례식은 치르지 않기로 했어. 이해해 주게나."

  도경은 정운이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도경이 아는 정운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친구였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정운은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래서 도경은 정운이 동아리방에 있는 그 테이프를 빌려 가서 1달 동안 반납하지 않아도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자신의 삶을 그렇게 마감한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도경은 반쯤 넋이 나가서는 내려야 할 역을 한참이나 지나쳤다. 그런 도경이 집에 돌아온 시각은 자정 무렵이었다.

  "빌어먹을 자식. 그렇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 멀쩡히 잘 살다가, 왜?"

  그런데, 도경은 과연 정운이 멀쩡히 잘 살았던 것인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경이 정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그저 가정 환경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파편적인 정보일 뿐이었다. 정운의 부친은 강남에서 잘 나가는 학원 강사이며, 정운이 중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 정운에게는 6개월 정도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 정운이 원래 가고 싶었던 학과는 영문학과였다는 것. 그 모든 것은 정운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 사실 정도로는, 도경 자신이 정운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안실에서 도경이 돌아온 후 이틀이 지났다. 동아리방에서 도경은 혼자 영화를 보고 있었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는 도경이 이미 여러 번 본 영화였다. 하지만 도경은 그냥 뭐라도 틀어놓아야 했다. 도경은 정운의 죽음이 슬프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영화 속 주인공 소년은 바닷가에 도착했다. 정지 화면 속에 갇힌 그 막막한 눈빛이 어쩌면 정운과 닮아있는 듯싶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동아리방의 문을 노크했다.    

  "아,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군."

  정운의 부친이었다. 아들의 사물함에 있는 물건을 챙겨가기 위해 학교에 들렀다고 했다.

  "사물함에 이게 있어서... 자네에게 주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말일세."

  정운이 부친이 흰색의 커다란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두꺼운 대학 노트와 비디오테이프 하나였다. 대학 노트의 표지에는 '영화 감상문'이라고 검정 사인펜으로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비디오테이프는 정운이 빌려 가서 1달 동안 돌려주지 않았던 '희생'이었다. 도경은 어정쩡한 자세로 정운의 부친이 건넨 그 물건들을 받았다. 비디오테이프는 동아리의 자료니까 돌려받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정운의 영화 노트를 받는 것은 좀 내키지 않았다.

  "이건, 정운이가 좋아한 영화를 기록한 것일 텐데요. 제가 받아도 될지."
  "어차피 나는 그걸 봐도 모르지 않나? 아는 사람이 보는 게 낫지. 보고 쓸모없다 생각하면 버려도 괜찮아."
  "아, 네..."

  정운의 부친이 그렇게 가고 나서, 그날 오후에 영호가 동아리방에 들렀다. 도경은 영호한테 정운의 아버지가 동아리방에 들렀다고 이야기했다.

  "아니, 그 노트를 왜 너한테 주냐? 아무리 정운이가 우리 친구라 해도, 이제는 죽었잖아. 너도 좀 꺼림칙할 거 아냐?"
  "그거야 그렇지만..."

  도경은 정색을 하면서 말하는 영호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하긴, 영호는 정운과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기는 했다.

  "야, 그냥 버려. 버려도 된다고 했다면서. 내가 어디서 들으니까, 죽은 사람 물건, 함부로 보관할 거 아니라고 하더라. 더군다나 정운이 걔는..."
  "내가 알아서 할게."

  도경은 영호가 그 뒤에 덧붙일 말이 듣기가 싫어서, 영호의 말을 성급히 잘랐다. 저 녀석, 생각보다 아주 차갑네. 저렇게까지 말할 건 뭐람. 도경은 내심 영호의 반응에 서글픔과 분노가 밀려왔다.

  "그러니까, 벌써 25년이나 흘렀네."

  그 세월 동안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조악한 화질의 복사본 비디오테이프에서 DVD로, 그리고 영상 파일로 재생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도경은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버리고, 정식 발매된 DVD로 사서 보관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 영화를 보았다. 그러니까 도경은 이 영화를 25번도 넘게 본 셈인데, 도경은 여태까지 '희생'이란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는 너무나도 어려웠고, 너무나도 지루했다. 도경이 졸다가 눈을 뜨면, 주인공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졸다가 눈을 뜨면 어느새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렀다. 마침내 나무가 불타는 장면이 나오면, 도경은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희생'을 보는 것은 도경이 한 해를 마감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儀式) 같기도 했다. 
 
  늘 그러했듯, 도경은 이번에도 '희생'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영화 속의 나무가 불타고 있었다. 정운은 저 나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경은 정운의 부친에게서 받은 영화 노트를 비닐로 밀봉해 놓았다. 그 노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건 마치 온갖 불운과 저주가 들어찬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영호가 말했듯, 그냥 내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경은 차마 그 노트를 버리지 못했다.

  도경은 DVD를 케이스에 조심스럽게 넣고는, 그것을 원래의 자리에 두기 위해 장식장의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비닐 안에서도 노트는 세월에 삭는 중이었다. 누렇게 뜬 종이 위로 흐릿해진 '영화 감상문'이란 글씨가 드문드문 조각이 나 있었다. 언젠가는 뜯어서 봐야만 하는 노트였다. 어쩌면 그 언젠가가 오늘인지도 모르겠군. 도경은 비닐에 붙여놓은 스카치테이프를 떼었다. 접착력을 잃어버린 테이프가 가루가 되어서 떨어졌다. 25년. 무참히 흘러버린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노트에는 첫 장부터 정운이 감상한 영화의 리뷰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정운이 쓴 첫 번째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였다. 도경은 트뤼포를, 정운은 고다르를 가장 좋아했었다. 그랬었지. 그렇게 도경은 정운과 함께했던 시네필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노트를 넘겼다. 정운의 영화 리뷰는 두꺼운 영화 노트의 중간 부분에서 끝났다. 그 마지막 영화는 도경도 알다시피 '희생'이었다. 그런데 정운은 리뷰라고 할 것도 없는 매우 짧은 문장만 적어놓았다.

  '어떤 삶은 그렇게 작별할 수밖에 없다.'

  정운의 그 짧은 문장은 도경에게는 심연(深淵)과도 같았다. 도경이 해마다 본 '희생'은 정운의 심연에 대한 막연한 탐색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도경이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기도 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도경의 마음속 아래에 자리한 '왜 그랬을까?'라는 그 질문에 그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다. 사실 그 답을 찾는다고 해도, 이제 도경에게는 그저 무익할 뿐이었다. 당장 도경이 풀어야 할 문제는 '희망퇴직을 신청할 것인가'이며, 반드시 그 문제의 답을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든 버텨야지, 어떻게든."
 
  마음이 갑갑해진 도경은 거실에 드리워진 암막 커튼을 천천히 걷었다. 새벽 2시 37분. 건너편 아파트에서도 불이 켜진 집은 별로 없었다. 아파트 단지 출입구에 걸린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현수막이 초겨울 바람에 거칠게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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