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Merry)
"메리야, 오늘도 한번 나가볼까? 이리 와봐. 아줌마가 옷 좀 입혀줄게."
아주머니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릅니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그 목소리에는 가식이 없는 친절도 담뿍 담겨있어요. 그래서 아주머니의 손님들도 물건을 잘 사주는 것일지도 몰라요. 아주머니는 솜이 누벼진 겨울옷을 나에게 입혀줍니다. 빨간색 원단으로 누벼진 내 옷의 가장자리에는 보글보글한 양털이 덧대어져 있어요. 그래서 겨울바람도 잘 막아준답니다. 나는 이 옷이 마음에 들어요.
나는 아주머니가 입혀준 옷을 입고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갑니다. 아파트 출입구에는 아주머니의 전동카트가 있어요. 아주머니가 파는 야쿠르트가 있는 카트입니다. 네, 우리 아주머니는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판매합니다. 아주머니는 새벽 6시쯤에 지점에 가서, 자신의 카트에 물건을 담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가족의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7시 반, 아저씨와 아들 형석이가 일어나서 아침을 먹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시금치 된장국과 계란말이, 엊그제 손님이 김장했다면서 건네준 겉절이군요. 아주머니는 내 밥그릇에도 사료를 부어줍니다. 오늘 먹을 물도 새로 갈아주고요.
"오늘은 바람도 그렇게 불지 않고, 낮에도 그리 춥지 않대. 밖에서 지내기 괜찮을 거야."
아주머니는 초록색의 예쁜 목줄을 나의 목에 조이지 않게 묶어줍니다. 아주머니는 작은 바구니에 나를 넣습니다. 흰색의 요크셔테리어인 나는 몸집이 자그마해요. 그래서 그 바구니에도 어렵지 않게 들어갑니다. 그렇게 나는 아주머니와 오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오전의 일과는 물건을 배달하는 것으로 채워집니다. 아파트 2개 단지가 아주머니의 구역입니다. 아주머니의 야쿠르트를 받는 손님들의 집에다 물건을 걸어둡니다. 아주머니는 걷고, 또 걷습니다. 급하다고 뛰지는 않아요. 언젠가 그렇게 뛰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거든요.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아주머니는 아무리 바빠도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요.
대략 30집 정도를 배달하고 나면, 아주머니도 잠시 쉽니다. 보온병에 담아온 물로 커피믹스를 한 잔 타서 마셔요. 나한테도 개껌 하나를 주고요. 아주머니가 늘 카트를 세워두고 쉬는 장소가 있어요. 아주 삐딱하게 휘어진 커다란 소나무 아래 주차장입니다. 그 소나무는 너무 휘어져서 쓰러질 것 같은데, 작년에 관리사무소에서 단단한 철 받침대를 세웠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지요. 아주머니가 이번에 사 온 개껌의 맛은 바베큐 맛인데, 좀 별로예요. 그래서 나는 조금만 씹다가 그냥 놔둡니다. 이러면 아주머니가 다음에는 이 개껌을 사지 않을 테니까요.
"언니, 나왔구나. 나 늘 마시는 걸로 하나만 줘 봐."
"자, 여기 있어. 오늘은 알바 안 나가?"
"아휴, 나 그 일도 그만둘까 봐. 그 집 애들이 워낙 말도 안 듣고 까탈스럽게 구네."
"애들이 많이 힘들게 해?"
"내 자식이 울고 떼쓰는 것도 짜증나는데, 남의 자식은 뭐 말할 게 있어? 언니, 그 있잖아. 주는 것 없이 얄미운 사람. 그 집 애들이 그렇다니까. 큰 아이는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작은 애는 툭하면 울고. 아, 진짜 돌겠더라니까. 게다가 그 애들 엄마는 어떻고? 등하원 도우미를 무슨 지가 부리는 파출부쯤으로 생각하나 봐. 애들 샌드위치 만들어서 먹이세요, 학용품도 사다 놓으세요, 이러는 거야. 샌드위치는 자기가 알아서 만들어 놔야지. 나더러 음식까지 만들라고? 나 원 참."
"그건 좀 그렇다. 간단한 간식 챙겨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지만, 만들어서 주라니."
"하여간, 요새 젊은 엄마들 사고방식이란 게 그렇더라고. 돈을 좀 주면, 사람 마구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등골까지 빼먹으려고 들어. 말하자면 상식이란 게 없어. 기본적인 상식."
"남의 돈 버는 일이 쉽지가 않지."
"그래, 언니. 그거라도 좀 해서 애들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했는데."
"얇게 입고 나왔네. 날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언니도 오늘 하루 고생해."
3단지의 슬비 엄마입니다. 나는 우리 아주머니한테 '언니'라고 불러서, 진짜 동생인가 했어요. 그런데 아주머니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주머니의 손님인 줄 알게 되었지요. 손님들이 아주머니를 부르는 호칭도 다양해요. 저 할머니가 아주머니를 어떻게 부르나 들어보세요.
"야쿠르트 여사님, 왔어?"
"어르신,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응, 그냥 대충. 늙으니까, 입맛도 없어. 하루 세 끼 먹는 것도 번잡스러워."
"그래도 잘 챙겨서 드셔야죠. 오늘은 날도 추운데, 털모자하고 장갑 챙기신 건 잘하셨어요. 밖에 나오실 땐 꼭 그렇게 하세요."
"우리 손녀딸이 꼭 현관 신발장에다 놔둬."
"그런 손녀가 있어서 얼마나 좋으세요."
"갸도 이제 짝을 만나서 결혼하니까."
"아, 그래요? 언제요?"
"내년 봄에. 이제 손주들도 다 여워버리면, 내 죽을 날만 남은 게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제가 사탕 하나 드릴게요. 이거 커피 사탕인데, 맛있어요."
"고마워. 난 야쿠르트 사 먹지도 않는데, 이런 것도 주고."
고향이 해남이라 해남 할머니로 불리는 저 할머니는 매일 저렇게 아주머니를 찾아옵니다. 전동 휠체어를 힘겹게 끌고요. 아주머니에게 뭔가를 사는 일은 없지만, 아주머니는 늘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챙겨서 드려요.
"아줌마, 나 커피 하나만 줘 봐."
어휴, 저 중년 남자는 정말 재수 없어요. 반말지거리에다가 차에서 돈을 휙, 던지는 거 하며. 나 같으면 도로 돈을 내던지겠지만, 우리 아주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얼른 주워요. 그리고 커피하고 거스름돈을 공손히 건넵니다.
"찬 음료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응. 많이 팔아!"
나는 저런 인간들을 보면요, 뭔가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아요. 막돼먹은 인간이잖아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고. 아주머니가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마음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런 사람들한테 물건 팔고 나면 꼭 내 머리를 쓰다듬으세요. 부드럽게, 하지만 거기에는 이상한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져요.
"형석 엄마! 나, 오늘 정말 기분 좋다. 우리 민우가 코뿔소에 붙었거든."
근데 저 민우 엄마가 말하는 '코뿔소'가 무엇일까요? 내가 보잘것없는 작은 강아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코뿔소가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의 동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민우 엄마가 말하는 코뿔소는 아프리카의 코뿔소는 아닌 것 같고.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네요.
"정말 잘 됐다. 거기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들다면서."
"아휴, 그러게. 오죽하면 코뿔소 붙으면 명문대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그러겠어."
아, 이제 알겠어요. 저 코뿔소는 아마 어디 대단한 입시학원쯤 되나 봅니다. 민우 엄마는 자기 아들이 거기 붙었다고 저리도 자랑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저 이야기를 듣는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미네요.
"이제 민우 엄마도 마음이 좀 놓이겠다. 다른 사람들은 준비를 많이 해도 떨어졌다 그러던데. 민우가 잘했나 보다."
"우리 애가 아빠 머리 보다 내 머릴 닮아서 그래. 민우 아빠는 돈 버는 머리만 있지. 아우, 아무튼 기분 정말 좋아. 우리 민우 먹이게 제일 비싸고 기운 나는 걸로 한 10개만 줘."
어휴, 저 말본새하고는. 아무튼 저 여자는 참 재수가 없어요. 남편은 돈 잘 벌고, 자기는 머리 좋다고 자랑 늘어지게 하고. 아주머니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비닐봉투에 음료 10개를 담습니다. 여자가 가고 나서, 아주머니가 또 내 머리를 아주 많이 쓰다듬었어요.
"메리야, 점심 먹으러 집에 갈까? 아줌마도 배가 좀 고픈데."
아주머니는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갑니다. 아주머니의 집은 아주 가까워요. 아주머니는 카트를 아파트 출입구 주차장에 놓고, 바구니에서 나를 꺼냅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12층 버튼을 누릅니다. 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오늘 아주머니의 얼굴은 좀 지치고 어두워 보이네요. 마침내 집에 도착했어요. 아주머니가 손을 씻고, 부엌에서 아침에 남은 국을 데웁니다. 나는 거실의 푹신한 러그에 앉아서, 거실 벽에 걸려있는 아주머니네 가족사진을 봅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형석이. 아주머니는 통통하고, 아저씨도 키가 크고 체격이 좀 큰 편이에요. 형석이도 그런 부모님을 닮아서 살이 쪘어요. 나는 형석이의 유순하고 해맑은 미소를 참 좋아해요.
아주머니가 국을 데우고 나서, 나한테 사료를 조금 덜어서 줍니다. 나는 밥 생각이 없어서 별로 먹지는 않았어요. 그 재수 없는 민우 엄마 때문에요. 아주머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거든요. 아주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는 드실 생각이 없는지, 그냥 가만히 있더라고요. 나는 식탁으로 가서 아주머니 옆에 앉아있었어요.
"밥을 차려놓기는 했는데, 별로 먹고 싶지가 않네. 메리야, 밥맛이 없는 이런 날도 다 있어. 항상 아침 배달하고 나면 배가 고픈데 말이야."
왈왈. 나도 아까부터 기분이 안 좋아서 좀 소리 내 짖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짖고는 거실과 부엌을 왔다갔다했지요. 아주머니는 데운 된장국을 음식물 쓰레기통에다 넣고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어서 마셨어요.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오후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아주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피곤하시겠지요. 아침 6시부터 계속 일을 했으니까요. 나도 아주머니 옆에서 까박까박 졸았어요.
아주머니가 다시 집을 나선 것은 오후 1시쯤입니다. 오후에는 거리 판매를 주로 해요. 정해진 장소에서 손님들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오전에는 주차장의 소나무 아래였다면, 오후에는 아파트 스포츠 센터 앞에서 손님들을 기다립니다. 거기는 스포츠 센터 이용객들도 있고, 유동 인구도 많은 대로변이거든요. 오늘은 날도 그리 춥지 않고, 햇빛도 따사롭게 느껴집니다. 아마 올해의 마지막 가을날일 거 같아요. 나는 아주머니의 카트에서 거리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흔들리는 것을 바라봅니다.
"엄마, 아들 왔다."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오후 수업은 안 하고 조퇴한 거야?"
"응, 머리가 아파. 그냥 공부하기 싫어."
아주머니는 머리를 가볍게 두들기는 형석이를 보고 웃었어요. 형석이는 오늘도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나 봅니다. 자주 그러는 편이에요.
"엄마, 내가 의자 가져올게."
"엄마 의자에 네가 앉아. 엄마는 좀 서 있어도 괜찮아."
"아냐. 그건 엄마 꺼. 나는 내 꺼 가져올 거야."
"괜찮대도 저러네."
형석이는 스포츠 센터 주차장으로 가더니, 거기 화단 구석에 처박혀 있는 연두색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가져옵니다.
"엄마, 이거 봐. 이거 좋은 의자!"
형석이는 기쁜지 큰 소리로 아주머니한테 말합니다. 의자를 가져오던 형석이가 함박웃음을 터뜨리자, 아주머니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형석이는 카트 옆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습니다. 그리고 바구니에 있는 나를 꺼내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어요. 나는 산책가고 싶어서, 형석이의 무릎에서 발을 좀 굴렀지요.
"엄마, 나 메리 산책 시킬래."
"그럴래? 스포츠 센터 뒤쪽에 공원 있잖아. 그럼, 거기에서 메리하고 좀 놀아라."
"응. 우리 엄마 사랑해. 화이팅!"
형석이는 두 팔로 크게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었어요. 형석이가 만든 하트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서 왈왈, 하고 소리를 내었답니다. 원래는 아주머니가 오후에 이곳에 오기 전에 나와 산책하곤 하는데, 오늘은 좀 힘들어 보였어요. 아무튼 형석이가 일찍 와서 나도 콧바람을 쐴 수 있게 되었네요.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야호! 가을 길은 좋은 길."
형석이는 나의 목줄을 느슨하게 하고서는,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걸었어요. 형석이와 내가 그렇게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초록색 체육복에 교복 외투를 걸친 남자애 둘이 다가오더라고요. 형석이하고 같은 색의 체육복을 입었네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애들인가 봐요.
"어이, 이형석. 너 여기서 뭐 해?"
더벅머리에 안경 쓴 남자애가 건들거리면서 그렇게 묻더군요. 나는 걔를 더벅머리라고 부를게요. 아무튼 그 더벅머리가 말하는 걸 보니, 어째 좋은 아이는 아닌 것 같았지요.
"우리 메리, 산책시키고 있어."
"메리? 이름도 존나 촌스럽네. 언제 적 메리냐? 지 닮은 강아지 새끼 데리고 다니는 바보 새끼."
"내가 왜 바보야? 나 바보 아냐!"
형석이는 그 녀석들과 맞닥뜨린 것이 놀라기도 하고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어요. 그러자 더벅머리 옆에 있는 멀대같이 키가 큰 놈이 옆에 있는 단풍나무를 마구 흔들면서 그래요.
"바보 새끼한테 바보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꼭 저렇게 모자란 애들은 지가 바보인지 몰라. 등신같이."
그 멀대 자식이 형석이한테 그런 말을 퍼붓자, 나는 있는 대로 화가 치밀었어요.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그 멀대의 체육복 바지를 물고는 마구 잡아당겼어요.
"메리야, 안돼. 그러면 못써. 안돼, 다쳐. 하지 마."
"야, 이 강아지 새끼가 성깔있네. 바보 주인도 지킬 줄 알고."
멀대 새끼가 나한테 물어뜯기는 것을 보더니, 더벅머리가 나한테 달려들어서 발로 내 등을 갈겼어요. 나는 등짝이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멀대 자식의 바지를 놓아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형석이는 어떻게든 나를 구해야겠다고, 내 목을 세게 잡아당겼어요. 나는 형석이의 아귀힘이 얼마나 센지 처음 알았어요.
"개새끼, 지랄맞기는."
마침내 형석이가 나를 멀대에게서 떼어놓자, 멀대 자식이 그렇게 욕설을 내뱉더군요.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그냥 고래고래 있는 대로 짖었어요. 형석이는 그런 나를 꽉 끌어안고 있었고요.
"야, 가자. 저 바보 새끼, 지 강아지한테 물어뜯겨서 뒈지라지."
더벅머리가 그렇게 지껄이면서, 흙바닥에 넘어진 멀대를 일으켜 세웠어요. 둘은 나와 형석이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욕을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그곳을 떠났습니다.
"메리야, 괜찮아? 어디 아프지 않니? 형아가 호, 불어줄게."
형석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형석이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몹시 놀랐는지, 거친 숨을 내쉬었어요. 나는 형석이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바보, 바보, 바보!"
형석이는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자기의 머리를 쥐어뜯더군요. 도대체 저 쓰레기 같은 애새끼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저럴 수 있을까요? 나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어요. 나의 얼굴은 침과 눈물, 땀이 범벅이 되고 말았지요.
네,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요. 나는 저녁에 밥을 먹을 기운도 없어서, 거실 러그에 그냥 드러누워 버렸어요. 형석이도,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오늘은 모두 저녁을 먹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늘 그렇듯, 아파트 공원에 운동하러 나갔어요. 형석이는 일찍 자러 들어갔고, 아주머니는 식탁에서 사탕 꾸러미를 나누어 포장했어요. 손님들에게 그렇게 소소한 선물이라도 돌려야, 요구르트 하나를 더 팔 수 있으니까요.
나는 아주머니가 깔아준 전기매트에서 졸다가,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눈을 떴어요. TV 장식장 위의 디지털시계가 11시 37분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다들 잠이 들었나 봐요. 거실에는 작은 무드 등 하나만 켜져 있었으니까요. 나는 조금은 기운을 차리고는, 거실 벽에 걸린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어딘지 모르게 그 사진에서는 가라앉은 서글픔이 느껴졌어요. 할 수만 있다면, 그 사진에 조금이라도 행복의 느낌을 불어넣고 싶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어요. 언젠가 아주머니가 알려준 내 이름이 생각났어요. 맞아요. 내 이름은 메리(Merry)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