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이게 다 뭐예요?"
"제사 지낼 거."
"인테리어 박씨네?"
"야, 인테리어 박씨가 뭐냐. 이제는 새아버지로 인정 좀 해주면 안 되냐?"
"난 못해요."
양손에 장 본 것을 잔뜩 들고 온 엄마를 보니,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남의 집 제사를 지낸다고 왜 저 난리인가? 인테리어 박은 엄마의 남자친구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제는 남편에 근접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엄마는 3년째 그 아저씨의 부모 제사를 지내고 있다.
"네가 인정을 하든 못하든, 어쨌든 그 아저씨하고 엄마는 같이 살 거야. 그리고 올해는 너도 그 제사에 참석해야 해."
"엄마, 지금 그 말 진짜야? 내가 미쳤어? 내가 왜 박 씨 집 제사에 가? 엄마, 어디 좀 이상한 거 아냐?"
"빌어먹을 자식. 네가 지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냐?"
"아니, 엄마 말이 웃기잖아. 나는 김민수야. 김 씨 집 자손이라고. 그런데 박 씨 집 제사에 가라고 하니까 그런 거 아냐."
"그건 네 입장이고. 어쨌든 올해 제사는 너도 지내."
"어쨌든 난 안 갈 거니까, 엄마가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내 방에 들어와 버렸다. 아무리 남자한테 정신이 팔려도 그렇지. 남의 집 제사 지내주는 것도 모자라, 자기 자식한테 그 집 제사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논리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저런 엄마하고 내가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앞으로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나에게 '독립'이라는 말은 서슬 퍼런 일제시대를 살던 우리 조상님들이 느꼈던 막막함과 맞닿아 있다. 대학은 갈 수나 있을까? 아니, 갔다고 해도 졸업을 할까? 스무 살이 되었다고 무조건 집을 나와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 나하고 좀 얘기나 하자."
스마트폰 테트리스 게임의 블록들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 인테리어 박이 내 방문을 열었다.
"아저씨, 노크 좀 하시죠?"
"가족끼리 무슨 노크냐. 아무튼 좀 나와 봐."
"싫어요. 그냥 여기서 말해요."
"어휴, 쟤가 버릇이 없어서 저래."
부엌에서 장 본 것을 정리하던 엄마가 참견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박씨 아저씨보다도 저렇게 말하는 엄마가 더 얄밉고 짜증스러웠다.
"이번 제사는 가족의 화합 차원에서도 중요하니까, 너도 참석해야 한다. 알았지?"
"무슨 가족이요? 아저씨 가족은 인호잖아요. 뭐 보니까, 엄마는 곧 가족이 될 거 같고. 난 빼주시죠?"
"아니, 이 자식이."
"나가요. 나가라구요."
내가 화가 치밀어서 고함을 지르자, 박씨 아저씨는 못 이기는 척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저 남자가 싫다. 너무나도 싫다. 나한테서 엄마를 뺏어간 것으로도 모자라서, 자기가 내 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고 있다. 나는 저 남자의 경박스러움과 뻔뻔스러움에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만다. 저 사람의 재수 없는 상판대기와 성질머리를 똑 닮은 아이가 인호이다. 나와 동갑인 그 자식과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것도 같은 반이다. 부모는 이혼했고, 새아버지가 될 남자의 아들과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다니. 이건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여버린 인생이다.
엄마가 나한테 아저씨네 제사에 참석하라고 하는 소리를 보니, 아마도 이제는 진짜 같이 살 모양인가 보다. 하긴, 지금도 같이 살고 있기는 하다. 박씨 아저씨와 인호는 1층에, 엄마와 나는 2층에 산다. 이 2층 양옥은 박씨 아저씨의 집이다. 그러니까 나와 엄마는 엄밀히 말하자면, 박씨 아저씨에게 얹혀살고 있다. 뭐랄까, 나에게 있어 박씨 아저씨, 인테리어 박은 엄마의 남자 친구이며 집주인인 셈이다. 엄마는 이제 세입자 노릇 그만하고 진짜 안방마님이 될 심산인 것이다. 안방마님이라고 하니까, 인테리어 박이 돈푼깨나 있는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다. 동네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인테리어 박이 알짜배기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인테리어 박은 오래전에 파주의 비닐하우스 농지를 사뒀는데, 거기에 아파트가 곧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맨날 후줄근한 점퍼나 걸치고 다니는 그가 그런 큰돈을 만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자기 입으로 떠벌리고 다닌 허풍이겠지.
"너, 우리집 제사에 오지 마라."
내가 밤늦게 마당에서 줄넘기하고 있을 때, 재수 없는 인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야, 나도 박씨 집 귀신이 먹다 남길 음식에는 관심 없다."
"자식, 말하는 본새하고는. 가만 보면 말이지, 넌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어."
"야, 누가 할 소리. 너야말로 네 아빠 닮아서 사람 긁는 게 취미 아니냐?"
"어이, 동생. 말 좀 조심하지. 이제 내 아빠가 동생 아빠도 될 건데."
"웃기고 있네."
나는 인호 녀석의 속 긁는 말에 태연해지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어서 곧 줄넘기를 멈추고 말았다.
"아, 달도 밝다. 동생, 운동 더 하다 들어가라고. 이 형님은 이제 자야겠다."
나는 저런 녀석한테 동생 운운하는 소리를 듣게 만든 엄마가 새삼 원망스러워졌다.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와서 문을 여니,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저녁 내내 제사 음식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이제서야 대충 일이 끝난 모양이었다.
"저녁 내내 뺀질거리면서, 부엌일이나 좀 도와주지 않고."
"내가 말했잖아요. 난 김씨 집안 자손이라고. 엄마나 박씨 집안 일 열심히 하세요."
"야, 너는 자식이 되어가지고 엄마 좀 위해주면 안 되냐!"
비아냥거리는 내 말을 듣고는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러는 엄마는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대머리에다 키도 작은 박씨 아저씨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그래? 그 파주에 있다는 금싸라기 땅 때문에? 정말 돈 때문에 그런 거야?"
"넌 그게 네 엄마한테 할 소리냐? 그런 돈 되는 땅 있으면 자기 자식 주지, 아무리 좋아도 날 주겠냐? 너는 사람이 살면서 의지할 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 인테리어 박이 엄마가 의지할 만한 뭔가 대단한 게 있는 양반이냐고. 인물이 좋아? 지금 확인된 재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낡은 2층 양옥집, 동네에 있는 인테리어 가게. 그게 전부잖아."
"인물 좋은 건 네 아빠 하나로 족해. 적어도 인호 아빠는 나하고 너, 밥은 굶기지 않을 거다. 남자는 모름지기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거야."
나는 엄마의 그 말에 새삼스럽게 기억 속의 아빠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아빠 얼굴을 못 본 지도 벌써 5년째다. 아빠가 부산의 어느 변두리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다. 같이 사는 여자가 있다던가, 어쩌면 나에게는 이미 배다른 동생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남편으로서도 아빠로서도 낙제점이었던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나에게 물려준 것은 큰 키와 번듯한 외모뿐이다.
"그런데 엄마, 그 밥을 안 굶긴다는 인테리어 박이 왜 엄마가 아파트 청소 나가는 것은 안 말려? 엄마는 지금도 청소일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네가 철딱서니 없는 거야. 어쨌든 내가 너 대학은 보내야 할 거 아니냐? 그런 돈을 인호 아빠한테 달라고 하냔 말이지. 넌 내가 낳은 자식이고, 네가 대학가는 건 내 책임이야."
"엄마, 난 그딴 대학 안 가도 괜찮아. 그러니 제발 나한테 박씨네 제사에 참석하라느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난 그 집 사람들, 너무나 싫으니까."
"그럼, 당장 이 집에서 나가서 네 힘으로 밥 먹고 살든가. 네가 걸치고 있는 옷이며 신발은 누가 사준 거냐? 그리고 네가 살고 있는 이 집의 주인이 누구냐? 좀 대가리를 굴려 보라고. 어떻게든 살살 비위 맞추면서 네가 살아갈 방도를 생각해야지."
나는 엄마의 그 말에 화가 나서, 손에 든 줄넘기를 현관문 앞에다 팽개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인테리어 박과 인호가 싫은 것은 내 감정의 문제일 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이다. 17살인 내가 스스로 독립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인테리어 박에게 '아저씨'라는 호칭 대신에 '새아빠'라든지, 아니면 '아버지'라고 부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굴욕적이다. 거기에다 인테리어 박의 아들 인호 녀석은 또 어떤가? 그 자식은 느물거리는 말투로 사람의 속을 벅벅 긁어댄다. 그런 녀석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서는 한편으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가족이란 게 뭘까? 어떤 면에서 지난 3년 동안 이 낡은 이층집에서 보낸 시간들은 인테리어 박과 인호를 생판 남으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상한 가족이군.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고는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이, 김민수. 요새 잘 지내냐? 내가 어제 화장실 낙서에서 재밌는 거 읽었다. 너 윤슬이랑 사귄다며?"
"네가 그렇게 믿고 싶으면 믿어라."
"아, 이 자식은 뻗대는 것도 멋있단 말이야. 저러니, 여자애들이 맨날 따라다니지."
"나도 그 낙서 봤어."
내가 '멀대'라고 부르는 저 재수 없는 녀석은 이산호다. 유도부에 들어갔다는 것만 내세우며, 괜히 거들먹거리는 한심한 놈에 지나지 않는다. 저런 자식 옆에서 발바닥 비비는 파리처럼 인호가 붙어있었다.
"이산호 넌, 박인호하고 사귀냐? 너희 둘이 맨날 붙어 다니던데."
"너, 말조심해라. 아침부터 열받게 하지 말고."
"그러니 너무 붙어 다니지 말라고."
"야, 산호야. 네가 참아라. 저게 겉멋이 들어 그래."
나는 멀대 자식보다 그 옆에서 빌빌거리는 인호의 상판대기를 보는 것이 더 싫고 역겨웠다. 왜 저 녀석은 저러고 살까? 저런 모자란 놈 옆에 있으면 더 바보처럼 보인다는 걸 모르나? 근데 윤슬과 내가 사귄다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나는 윤슬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짧은 숏커트 머리에 늘 생콩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아이에게 나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왜? 한 달 전쯤인가? 운동장에서 윤슬이 달리다가 넘어졌을 때, 내가 일으켜 세워준 적은 있지.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별로 기억나는 일이 없다.
"있다 1층에 내려와라. 너도 제사에 참석하는 거야."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제사 음식을 2층에서 1층으로 막 나르던 참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눈 딱 감고 제사에 참석할 것인가? 아니면, 엄마가 난리를 치든 말든 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버틸까? 어떤 면에서 엄마에게 이 제사는 박씨 집안 사람이 되는 공식적인 절차인지도 몰랐다. 엄마는 그래서 나더러 제사에 참석해 자기 얼굴이라도 세워주라는 것이다. 왜 박 씨 집안 제사에 김 씨 자손인 나의 참석이 구태여 필요한지는 납득할 수 없지만, 내가 짐작하기로는 그러했다. 나는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털어내려고 줄넘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하여간, 우리 동생은 체력 단련에는 진심이야. 얼굴도 잘생겨, 운동도 잘해."
내가 한참 줄넘기를 하고 있을 때, 인호가 어느새 다가와 이죽거리며 말했다.
"박씨 집안 아드님, 이제 조상님 오실 텐데 제사 준비나 잘하시죠."
"뭐 제사 준비는 댁의 어머님이 잘하고 있고요. 그나저나 너 윤슬이하고 사귀는 거 맞아?"
나는 아침에 들은 그 이름을 또 들으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윤슬이한테 별 관심도 없어. 왜 자꾸 걔 이름을 꺼내는 거야?"
"이 자식 봐라. 너 걔가 너 좋아하는 거 몰라? 뻔뻔하게 모르는 척을 하고 있네."
멀대 녀석이 봤다는 화장실의 낙서가 그래서 나온 건가? 나는 인호의 그 말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너, 혹시 네가 걔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 윤슬이를 인호 네가 좋아하는 거 맞지?"
"내가 그런 선머슴 같은 애를 왜 좋아해? 걔는 예쁘지도 않다고."
인호는 성질이 났는지 소리를 빽 질렀다.
"그건 그렇지. 그렇다고 예쁜 애가 너를 좋아할 리는 없지."
"너는 얼굴만 번지르르하게 생긴 게 나중에 여자들 등이나 처먹을 관상이야. 이 재수 없는 놈아."
"진짜 윤슬이를 좋아하는 게 맞네."
나는 신이 나서 더 짖궃게 인호를 놀려댔다.
"김민수, 너 말이야. 네가 기억해야 할 게 있는데, 너하고 네 엄마는 우리집에 얹혀살고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아? 네 엄마가 우리 아빠 돈 보고 저러는 거."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줄넘기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인호의 멱살을 잡았다. 체구가 작은 인호는 팔랑거리는 바람개비처럼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아빠, 민수 자식이 날 죽이려 들어!"
인호의 악다구니에 곧 인테리어 박과 엄마가 놀라서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대체 뭐 하는 짓들이야!"
나는 인테리어 박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큰소리에 놀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인테리어 박의 옆에 있던 엄마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민수, 넌 2층으로 올라가라. 오늘 저녁은 내 눈에 띄지 말어."
인테리어 박은 바닥에 널브러진 인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나서는 다친 곳이 없는지 인호의 얼굴과 몸을 살펴보았다. 저런 머저리한테도 아빠가 있다. 그런데 왜 지금 내 곁에는 아빠가 없는가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2층 계단을 올라갔다.
"딱, 딱, 딱."
2층에서도 1층 제사상에서 두들기는 젓가락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박 씨 집 귀신들이 김 씨 집 며느리가 차린 음식을 배터지게 먹겠군. 내 심사는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었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아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테트리스 게임을 계속할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층 마당에서 지방(紙榜)을 태우는지, 매캐한 연기가 창틈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김민수, 자냐?"
방문 밖으로 인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 너 볼 일 없다."
"아까는 내가 좀 심했어."
"듣기 싫다고. 가라고."
나는 짜증이 치밀어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 갈게, 간다고. 근데 말이야. 난 너도 아줌마도 싫지는 않아. 뭐랄까, 가족 같거든."
"가족 같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넌 박 씨고, 난 김 씨야.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나는 문밖의 인호를 내쫓지도 못하고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너 같이 잘생긴 동생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진 않지."
"하여간, 말하는 거 하고는."
"나, 간다."
그렇게 인호가 내려가고 나서도 내 귓가에서는 '가족'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키가 작고 대머리인 새아버지, 나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른 비실비실한 의붓형, 그리고 엄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이상한 가족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겨울 소슬바람이 후드득, 낙엽을 쓸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에 조금씩 조금씩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