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마에게
젬마, 내가 일하는 원목실의 창문으로 커다란 벚나무가 보여요. 그 벚나무의 잎들이 노랑과 주황으로 변하는 것을 보니, 문득 '마지막 잎새'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요,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 말이에요. 늙고 보잘것없는 화가 베어만은 자신의 마지막 걸작을 완성하고 죽지요. 그가 그린 담벼락의 잎사귀 하나를 보고, 중병을 앓던 젊은 아가씨는 삶의 희망을 되찾고요. 어쩌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도직도 그런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병원에 입원한 아픈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어주는 일.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내가 원목실 소임을 맡기 전에는, 해남에 있는 수녀원 농장에서 농사짓는 사도직을 했어요. 농사일이란 게, 해보니까 참 재밌어요. 물론 힘들지요. 그런데 그 일이 내 적성하고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씨를 뿌리고 열심히 풀도 매요. 그렇게 가꾸다 보면 어느새 수확하는 거예요. 토실토실하게 자란 예쁜 고구마들이며, 속이 꽉 찬 배추들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그렇게 수확한 것들을 수녀원 공동체에 나누어서 보낼 때는 마치 먼 곳에 자식 보내는 심정이 되기도 하고. 그런 말이 좀 우습게 들리나요? 하지만 나는 농사일하면서 참 행복했어요.
그런 농사일에 비하면, 이곳 병원에서의 사도직은 좀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아요. 아픈 사람들은 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니까, 잘 들어줘야지요. 환자들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래요. 그게 싫고 귀찮다기보다는... 내가 그분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더라고요. 젬마한테 내가 어떻게 작은 힘이라도 되어줄지 생각해 보았어요. 그게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늙은 화가 베어만이 마지막 잎새를 그리듯 이런 편지라도 쓰고 싶었답니다.
젬마가 무단으로 외출해서 하루 동안 연락이 안 되었었잖아요. 그때, 내가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혹시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젬마의 언니한테 내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면서 늦게라도 좋으니, 젬마 소식을 알려달라고 했었지요. 밤 10시에 언니가 젬마를 찾았다고 연락했을 때, 그제야 마음이 놓이더군요. 부모님을 모신 추모 공원이 꽤 먼 곳이었는데, 그 아픈 몸으로 어떻게 젬마가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젬마가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을 거예요.
젬마하고 같은 병실에 있었던 로사 자매 기억나요? 50대 중반으로 체격이 꽤 큰 아주머니 환자요. 그 자매는 난소낭종으로 난소와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나중에 들으니, 낭종의 무게가 무려 7kg이나 되어서 수술팀이 다들 놀랐다고 해요. 그런 큰 수술을 받았는데도, 로사 자매는 아주 쾌활했어요. 이제 그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 일도 없고, 오히려 가볍게 살 수 있다고 하면서요. 로사 자매는 동대문 시장에서 이불 장사를 30년 넘게 했어요. 결혼도 안 하고 홀어머니에 세 명의 동생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자기 돌볼 틈도 없었다고 해요. 어느 날부터 자꾸 배가 나오고 속이 불편해서, 소화기내과를 갔대요. 거기에서 내시경을 해보고는 문제가 없어서, 의사가 부인과 진료를 받아보라 했다는군요. 그러고 나서야 그게 난소낭종인 걸 알게 된 것이지요. 낭종이 커지기 전에 일찍 발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들지요. 그래도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 자매의 의연함이랄지, 어쩌면 그것은 나이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어요.
로사 자매와는 달리, 어떤 의미에서 젬마에게는 스물넷의 젊음이 고통으로 다가오겠지요. 젬마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 그렇게 물었었지요.
"수녀님, 여자로서 제 인생은 이제 끝난 거죠? 정말 그렇죠?"
초췌한 얼굴로 나에게 묻는 젬마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 내가 그 어떤 말로 위로를 한다고 해도, 젬마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젬마의 그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젬마, 내 이야기를 좀 할까요? 나에게는 아주 착하고 예쁜 조카가 있었어요. '있었다'라고 말하는 건, 그 아이, 지수가 이제는 세상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지수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떴어요. 지수의 나이 여덟 살 때에요. 그때가 나의 인생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때였지 싶어요. 그 어린아이의 죽음이 나의 신앙과 삶을 온통 뒤흔들었으니까요. 왜 아무 죄도 없는 그 아이가 죽어야만 했을까요? 나는 하느님께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졌어요. 도저히 지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니까요. 왜 그런 일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왜 그 아이가 그토록 고통받다가 죽어야 했는지, 어떻게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 가느다란 팔에 혈관을 찾지 못해서 여러 번 주삿바늘을 찌를 때, 지수가 비명을 지르던 모습이 아직도 떠올라요. 동생이 그러더군요. 저걸 보느니, 아이가 그냥 얼른 가버렸으면 한다고요. 그리고 마침내 지수가 눈을 감았을 때, 우리 가족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어요. 지수가 더이상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지수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지수의 하나뿐인 소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결국 그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지요. 나는 젬마의 퇴원을 보면서, 젬마가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를 생각했어요. 젬마, 젬마는 집에 가서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요? 어쩌면 한 달 동안 쓰지 못한 책상의 먼지를 닦아낼 수도 있고, 이제 계절이 바뀌니까 옷장의 옷들을 살펴볼 수도 있겠네요. 나는 무엇보다 젬마가 식탁에 앉아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면 좋겠어요.
젬마, 젬마가 나에게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해 이제는 내가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로서의 삶,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로서의 삶은 사라진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젬마에게 여전히 펼쳐진 길이 있어요. 한 인간으로서의 길 말이에요. 그 길 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젬마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러니 한번 걸어가 보는 거예요.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그 길을 젬마가 잘 걸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것을 위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돕고 싶어요.
주치의 선생님에게 들으니, 다행히도 주변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았다고 해요. 만약에 전이가 되었으면, 힘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안하게 되었으니까요. 병원에 다니면서, 계속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면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요. 지금은 큰 수술을 받고 힘든 상태니까, 모쪼록 몸조리 잘하면서 지내는 것이 중요해요. 앞날의 일을 생각하는 건 잠시 미뤄두고요.
병원에 오게 되면 원목실의 나를 찾아주어요. 어쩌면 젬마는 나를 다시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도 같아요. 원목실에서 5년을 있어 보니 알겠더군요. 병원에서 힘든 투병 생활을 했던 환자들이나 그 가족들은 병원을 시련의 장소로 기억한다는 사실을요. 마치 전쟁터의 병사가 자신이 치열하게 싸웠던 그곳을 찾는 것을 꺼리듯, 병원이 불안과 공포의 장소로 각인되는 것이지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편의 임종을 본 아주머니가 나중에 나에게 그런 말을 내게 하더군요. 이 병원의 모든 것이 끔찍하게 싫다고요. 그래서 병원도, 이곳에 있는 수녀님도 다시는 찾지 않게 될 것 같다고 말이지요.
젬마, 나를 다시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내가 젬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젬마에게 일어난 일을 '왜'라고 물으면서 구태여 그 답을 찾지는 않았으면 해요. 나도 지금까지 지수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찾지 못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났을 뿐이다. 왜 나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그런 생각에 이르자, 하느님을 원망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더군요. 여전히 고통의 하늘은 열려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날들이 남아있어요. 젬마가 언젠가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젬마의 살아온 그날들을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요.
사랑을 담아, 베로니카 수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