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삼촌, 저 지금 응급실이에요."
  "심각한 건 아니지? 삼촌 지금 회의 중이라 갈 수가 없어."
  "네, 알겠어요."
 
  영무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들렸다. 또 손목을 그었구나. 영무는 좀 잊을 만하면 자해를 하곤 했다. 상훈은 영무의 그런 행동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휴대폰에 찍힌 영무의 전화번호를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영무에게 그것은 하나의 의식(儀式) 같았다. 영무는 기분이 좋지 않으면 손목을 긋고는, 혼자서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그리고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개는 그렇게 심각한 자해는 아니었다. 석 달 전에는 손목의 상처가 꽤 깊어서 10바늘 정도를 꿰맸다. 그때는 상훈도 안 되겠다 싶어서, 영무를 정신의학과 병동에 입원시켰다. 2주 후에 영무는 퇴원했다. 그러고 나서는 괜찮은가 했는데, 다시 또 손목을 그은 것이다.

  "그러니까 성산 공원에 걸을 플래카드의 문구는 이렇게 합시다. '너구리와 같은 유해조수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다들 이 문구로 하는 것에 찬성하지요?"

  상훈이 회의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을 때, 김 주사가 가래 낀 목소리로 공원관리과 직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글쎄요. '너구리와 같은'이라는 문구는 뭔가 불분명하게 들리는데요. '너구리'라고 쓰고 괄호로 유해조수를 표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그래야 주민들이 딱 알아듣지 않을까요?"
  "박 주무관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럼 그렇게 합시다. 플래카드 예산으로 남은 게 좀 있나? 이 주무관, 예산이 얼마나 있나?"
  "올해는 플래카드가 자주 찢어져서 교체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돈이 얼마 안 됩니다. 5장 정도 인쇄할 예산입니다."

  상훈은 자신의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으면서 김 주사에게 대답했다.

  "그럼, 그거라도 써서 내걸지. 앞으로 두 달 동안 플래카드 쓸 일이 얼마나 있겠어. 그러고 보니, 참 시간이 빨리 가.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가네. 오늘 구내식당 점심 메뉴는 뭔가?"
  "북엇국하고 어묵볶음, 뭐 그렇다고 들었어요."
  "어째 별로다. 양평각에 가서 김치찌개나 먹을까? 이 주무관은 구내식당 갈 거야?"
  "저는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훈은 동료들이 점심을 먹으러 회의실 문을 나서는 것을 보면서도, 선뜻 따라나서지 못했다. 정말로 영무가 괜찮은 건지, 다시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영무야, 치료는 받았어? 봉합하고 그런 정도는 아니지?"
  "그냥 드레싱 했고, 지금 집에 가요."
  "그래, 가서 좀 쉬어라."

  '너구리(유해조수)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영무는 업무용 노트북에 그 문구를 입력하고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천근만근 늘어지면서 도무지 의자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언제까지 내가 영무의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을까? 17살인 아이가 언제 대학을 가서 졸업하고 자기 밥벌이를 하게 될까? 아니, 대학은 갈 수나 있을까? 저렇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데? 상훈은 5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뜬 형에게 새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영무는 상훈에게 커다란 혹과 같은 존재였다. 그 혹은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상훈에게는 영무와 같은 큰 혹이 또 하나 더 있었다. 치매에 걸린 노모였다. 아직은 자식의 얼굴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상훈에게 진짜 자신의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서 가구들을 어떻게 가져가냐고 매일 물었다. 그것은 장소에 대한 지남력(指南力)이 빠르게 손상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날이 왜 이렇게 어둡지?"
 
  사무실 창밖으로 먹구름 가득 찬 하늘이 보였다.

  "오늘 날씨."

  상훈은 휴대폰의 음성인식 버튼을 누르고 날씨를 물어보았다.

  "10월 29일 오늘, 기온은 15도. 흐리고 비가 내립니다."

  상훈은 자신의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곳은 상훈이 언제나 예비용 우산을 두는 곳이었다. 그런데 우산이 없었다. 지난주에 비가 올 때, 그 우산을 가져갔었던 모양이다. 창문에 빗방울이 조금씩 맺히는 것이 보였다. 하는 수 없지. 있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야겠네. 상훈은 다음번에는 꼭 우산을 가져와서 서랍에 넣어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심을 걸렀지만, 상훈은 오후 내내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믹스커피를 연거푸 마셔서 그런지 오히려 속이 쓰렸다. 역류성 후두염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커피를 마셔대는 자신이 한심해졌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마실 수밖에 없는 그런 것. 어쩌면 영무가 자해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졌다. 녀석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상훈은 마음으로는 영무를 이해할 것 같았지만, 머리로는 영무의 행동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걸까? 부모가 없는 아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는 법이다. 영무에게는 그 상처가 부모의 빈자리였고, 그것을 극복할 수 없어서 저리도 몸부림치는 것일지도 몰랐다.

  5시 50분, 사무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퇴근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훈은 플래카드 인쇄업체에 보내는 발주 신청서를 작성하고는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바깥의 빗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1층 민원실의 구석진 곳에 교차로 신문 배포대가 있었다. 편의점까지는 10분, 상훈은 교차로 신문을 머리에 쓰고 갈 생각이었다. 배포대에는 마치 상훈을 위한 단 1부의 교차로 신문이 있었다.

  "운이 좋네."

  신문을 머리에 썼다고는 하지만,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분의 거리를 정신없이 뛰어서, 상훈은 편의점에 도착했다. 편의점의 계산대에는 우산을 사려는 사람들 여럿이 줄 서 있었다. 상훈은 제일 싼 3천 원짜리 우산을 샀다. 이런 것에 돈을 쓰는 것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싸구려 비닐우산의 값을 치르고 편의점 문을 나섰다. 비는 아까보다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지하철역까지만 걸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비닐우산이 이 폭우를 잘 버텨내 주길 바라면서 상훈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지하철역 입구에서는 장애인 단체의 농성이 한창이었다. 퇴근길의 시민들과 농성하는 장애인들이 뒤엉키면서 역의 입구는 막혀버린 것처럼 보였다.

  "작작 좀 하지, 젠장. 저게 뭐야, 욕 나오게."

  중년의 남자가 혼잣말로 욕설을 하고는 지하철역에서 돌아섰다. 상훈은 5분 거리의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누구에게나 괴롭고 억울한 일은 있는 법이다. 상훈은 지하철 역 앞에 드러누워 있는 장애인 농성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왜 저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명분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 저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자신에게 주어진 악조건을 견디지 못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상훈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맞부닥칠 자기 삶의 악조건을 생각했다. 손목에 붕대를 한 조카는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고향집에 데려다 달라며 울음을 터뜨리게 될 터였다. 16평의 비좁은 임대 아파트에서 상훈은 제대로 몸을 누일 방도 없었다. 두 개의 방은 조카와 노모가 썼고, 자신의 잠자리는 부엌 싱크대 옆이었다. 흐린 날에는 가끔 지독한 하수구 냄새가 올라와서, 상훈의 잠을 방해했다. 그 냄새가 자신의 몸에 배는 것이 아닌지, 상훈은 늘 자신의 체취에 신경이 쓰였다. 그 하수구 냄새는 가난과 불운의 총합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상훈은 냄새야말로 그 사람이 속한 계층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상훈의 마른 몸은 발 디딜 틈이 없는 승객들 사이에서 붕 뜬 것처럼 보였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토록 세차게 내렸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상훈은 3천 원짜리 우산이 아깝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돈, 돈, 돈.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이토록 고생스러운 퇴근길에 자신의 차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훈은 서른일곱의 나이에 자가용도 없는 임대아파트 주민인 자신의 처지에 한숨이 나왔다. 비로 흠뻑 젖은 외투에서는 퀴퀴한 냄새마저 풍겼다.

  "하층민의 냄새로군."

  아마도 자신은 죽을 때까지 그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무원으로 나라의 녹(祿)을 먹고 있으니, 정년퇴직만 한다면 어떻게든 노후에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무원이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저기 보이는 아파트 공원 벤치에 드러누운 노숙자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까? 상훈은 새삼스럽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상훈은 천천히 공원 옆길로 걸었다. 상훈의 집은 공원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하는 거냐?"

  상훈이 노숙자로 생각한 사람은 영무였다. 영무는 등나무 퍼걸러(pergola) 아래 벤치에 힘없이 드러누워 있었다.

  "삼촌 기다리고 있었지."
  "이런 날씨에 집에 있지 않고. 몸도 안 좋은데. 어차피 집에 가면 삼촌 얼굴 볼 건데 뭐하러?"
  "삼촌, 삼촌은 내가 밉지?"

  영무는 흐느적거리는 몸을 겨우 세워 앉으며 그렇게 물었다.

  "그래, 밉다. 아주 미워. 진저리나게 미워."
  "삼촌은 거짓말을 진짜 못하네."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

  상훈은 자신의 체구를 닮은 저 비쩍 마른 아이를 미워할 수 없었다. 핏줄이라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영무는 앞으로도 손목을 그을 것이고, 어쩌면 그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영무를 미워하거나 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상처는 좀 어때?"
  "그냥 칼이 들어가다 말았어. 응급실 인턴이 내 이름을 외우고 있더라고. 정신의학과에 연락한다고 그래서 그냥 도망치듯이 나왔지 뭐."
  "가만 보니, 너도 다 살 궁리는 하는구나."
  "응, 살기는 살아야지"

  영무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오늘, 무슨 일 있었던 거야?"
  "꼭 무슨 일이라기 보단... 내가 싫어하는 놈 인스타에 들어가 봤는데, 걔가 여름방학에 가족들하고 그랜드 캐니언에 갔던 사진을 올렸더라고. 그냥 그 사진을 보고나니까 화가 나서."
  "왜 나는 저런 데는 못가나, 그래서?"
  "잘 모르겠어. 그냥 죽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

  상훈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그랜드 캐니언을 가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 갈 것 같았다.

  "삼촌도 그랜드 캐니언은 못가보고 죽을 것 같다. 요새는 TV에서 여행 프로도 많이 하잖냐. 그거 보면 더 실감나던데. 그런 거 보다 보면 거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 웃기지 않니? 여행 프로가 여행을 꿈꾸지 못하게 만드니까."
  "그 여자는 잘 살고 있을까?"
 
  상훈의 이야기를 듣던 영무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 여자가 뭐냐? 그래도 네 엄마한테."
  "자식 버리고 팔자 고치러 간 여자잖아."
  "영무야, 엄마 보고 싶니?"

  영무는 상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난 말이야. 네가 좀 영악해졌으면 좋겠어. 아니, 영악해지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아.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 왜 자꾸 자신을 괴롭혀? 그렇게 손목을 그으면 기분이 좀 나아져?"
  "응. 잠깐은 그래."
  "그게 잠깐인 거잖아.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기분이 엉망인 거고. 그렇지?"
  "삼촌 말이 맞아."
  "네가 손목을 긋는다고 해도 그랜드 캐니언은 갈 수 없고, 떠나버린 엄마는 돌아오지 않아. 인생이란 게 그렇게 엉망진창이야. 삼촌 이야기해 줄까?"

  상훈은 엊그제 구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엊그제 구청에 1급 관리관이 방문했어. 그 사람 나이가 서른다섯이야. 삼촌보다 두 살 어려. 근데 수행원이 아홉이나 되더라. 스물 둘에 행정고시에 붙었대. 명문대 출신에 집안도 강남 출신의 부자야. 그 젊은 관리관한테 육십이 다 된 우리 구청장님이 손을 파리처럼 비비면서 안내하는 거야. 네가 그 모습을 봤으면 재밌었을 텐데 말이지."
  "삼촌, 그 관리관이 부러웠어?"
  "그래, 부럽더라. 많이. 그래도 어쩌겠니? 그건 그 사람 인생이고, 난 내 인생을 살아야지. 난 구청장만 될 수 있어도 좋을 것 같지 뭐냐. 구청장 양반 출근할 때 어떤지 알아? 구청 직원들이 무슨 조폭들처럼 구청 현관에 도열한다고. 말하자면 우리 구청에서는 그 양반이 왕이야. 그런 사람이 새파란 관리관한테 고개 조아리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참..."
  "삼촌은 성실하니까 구청장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네가 속을 썩이지 않으면 어쩌면 먼 미래에 그럴 수도 있겠지. 삼촌은 그저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안 긋도록 노력해 볼게."

  영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상훈을 바라보았다.

  "삼촌이 너를 그랜드캐년에 데려가기는 힘들 거야. 그래도 너한테 이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이 우산, 싸구려 3천 원짜리지만 오늘 비 올 때 잘 썼어. 네가  비를 맞고 걸어갈 때, 그냥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되는 거야. 삼촌 마음은 그렇다고."

  영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기다리겠다. 집에 가자."

  상훈은 영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영무가 일어서려다 기운이 없는지, 도로 앉았다. 상훈은 영무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상훈이 영무의 팔목을 잡는데, 오돌토돌한 흉터 자국이 만져졌다. 수십 번의 자해가 만든 흉터였다.

  "삼촌이 나중에 돈 모으면 너 피부과 데려갈게. 요새 레이저가 좋아서 이런 흉터도 다 없애준다 그러던데."
  "너무 심해서 레이저도 안될 거 같아."
  "그러니 살살 그으라고. 죽지 않을 만큼. 약도 잘 챙겨 먹고."

  눅눅해진 트렌치코트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상훈은 영무와 함께 걸었다. 그쳤던 비가 다시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상훈은 하늘색 도트무늬 우산을 펼쳤다. 그리고는 우산을 영무 쪽으로 기울이고는 천천히 집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