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던지는 일에 실패한 날
요즘 들어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정현 군의 고민은 잘 들었습니다. 글을 쓰지 못한 지 벌써 석 달이 되었다고 했던가요? 좀 걱정스럽기는 하군요. 글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손을 오래 놓고 있다니 말입니다. 손이 쉬고 있으면, 마음이 굳고, 결국에는 머리가 굳어져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니까요. 두려운가요? 글을 쓸 수 없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정현 군은 왜 글을 씁니까? 어떤 이유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아, 물론 작가가 되는 것이 정현 군에게 운명이었다는 대답을 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대답은 좀 재미가 없네요. 솔직한 답변을 들려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마도 내 생각에 정현 군은 쓸 수밖에 없어서, 글쓰기 외에는 다른 무언가가 자신에게는 없어서 그랬다고 답할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정말로 아주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므로 나는 정현 군에게 글쓰기를 부업으로 삼으면서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는 충고를 하고 싶어요. 글쓰기가 본업이 되면 인생이 아주 고단해집니다. 어떻게든 팔리는 글을 쓰려고 아득바득 애를 쓰게 되니까요.
팔리는 글이란 게 뭘까요? 그건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 글에다 설탕물을 입히는 거예요.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정말로 참혹하고도 위대합니다. 작가라고 해서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단순하게 말해서, 작가는 글을 써서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글을 파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생각에 좋은 작가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글을 독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납득을 시켜요? 무슨 수로요? 언젠가 읽은 소설 작법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글쓰기의 비결은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떻게든 독자의 멱살을 잡고서 자신의 글 속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그런 구절이었어요.
독자의 멱살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그런 방법이 있는지 그 책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러므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글을 쓸 때 하는 작업은 하나 있습니다. 공을 던지는 겁니다. 네, 공을 건지는 거예요. 어떤 공이든 상관은 없어요. 다만 축구공 같은 큰 공은 말고요. 탁구공은 좀 작을 것 같군요. 테니스 공 정도의 크기면 좋겠어요.
정현 군이 쓰고자 하는 소설의 인물을 생각해 봐요. 예를 들어 17살의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라고 칩시다. 정현 군은 그 주인공에게 공을 던집니다. 사실 정현 군이 던지는 공을 그 친구가 받을지 안 받을지는 몰라요. 받으면 좋겠지요.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공을 세게, 빠르게 던지는 일은 하지 말자고요. 천천히, 받을 수 있는 거리에서 던져봅니다.
아, 그 주인공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면 어떨까요? 영무, 라는 이름은 어떤가요? 이건 내가 방금 생각해 냈어요. 자, 영무가 정현 군이 던진 공을 받았어요. 그런데 공을 받고서 그냥 뒤돌아서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 공을 다시 정현 군에게 되돌려 줄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공을 주고받으면서 정현 군은 영무의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내 생각에 뛰어난 소설가는 그 공을 능숙하게 잘 주고받는 사람이지요. 어떤 날은 잘 되었다가, 어떤 날은 안되기도 하고, 그렇게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내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는 오늘 그 공을 던지는 일에 실패한 것 같아요. 여기저기 공을 던져봤는데, 돌아오는 공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오늘 내가 공을 던진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A. 30년 동안 참기름을 짜온 기름집 부부에게 비극이 닥칩니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딴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부인이 알게 되었어요. 남편은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아들을 둘이나 두었다지 뭡니까? 배신감에 치를 떤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죽음을 보고 딸도 충격을 받고 죽어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써낼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B. 작가 지망생인 대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12평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그는 4년째 SF소설 창작에 매달리고 있는데, 공모전에 소설을 내는 족족 다 떨어집니다. 이제 졸업을 앞둔 그 친구는 소설 쓰기에 더 매달릴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끌고 갈까요?
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 다 재미없는 이야기군요.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다지 재미가 없어요. 정현 군의 일상은 어떤가요?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되나요? 돌이켜 보니 인생에서 무언가 잘 풀렸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도 같지요. 그리고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건, 대부분 돈 때문에 그래요. 돈을 넣어보면 잘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빈곤과 결핍은 글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어요. 돈이 많고 인생이 순탄한 사람은 흔들려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그 흔들림이 만들어내는 물결이 무엇인지 모르죠. 작가는 그 물결의 파동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 생각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 정현 군은 흔들리면서 공을 던지는 일을 주저하지 마세요. 반드시 강속구의 스트라이크를 정현 군의 주인공들에게 던질 필요는 없거든요. 때론 아주 느리게, 또는 삐딱하게 휘어지는 공을 던져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정현 군의 글 쓰는 감각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 물론 나도 그렇게 공을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을 던지는 일에 실패했지만요. 내일은 성공할 수도 있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공을 던지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