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행성에서 온 편지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조금은 압니다.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요. 왜냐하면, 내가 이 편지를 발송할 때부터 수신인의 직업을 그렇게 입력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라고 말입니다. 당신네 행성에서 시인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 편지를 시인이 받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부터 내가 말할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 물론 그 말이 내가 시인들을 경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튼, 당신이 시인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내일모레, '센터'로 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센터가 어딘지 당신은 물을 것입니다. 그곳은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키는 요람입니다. '요람'이라는 말은 당신의 행성에서 통용될 법한 단어이기는 합니다. 사실 그곳은 공장에 가깝습니다. 출산 공장이지요. 새로 태어날 생명들은 알파 종족의 자손들입니다. 이 행성의 시민들은 5등급으로 구분됩니다. 1등급의 시민이 바로 알파 종족입니다. 그들은 이 행성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지배 종족이지요. 알파 종족은 출산의 의무를 4등급의 시민, 그러니까 내가 속한 엡실론 족에 부과합니다. 왜 5등급의 시민에게 그 의무를 부과하지 않냐고 당신은 물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5등급의 그들은 시민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행성의 지하 세계에 거주하는 천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천민에게 우수한 알파 종족의 자손을 대신 낳게 할 수는 없지요.
말하자면 4등급의 우리 엡실론 족은 당신네 행성에서 자행되는 그 '대리모'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셈입니다. 아, 물론 모든 엡실론 족이 그렇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행성의 출산위원회는 대리모를 선별하는 일에 매우 까탈스럽게 구니까요. 첫 번째 조건은 건강할 것, 두 번째 조건은 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엡실론 족은 13살 때부터 대리모로 선발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성에는 당신네 행성과는 달리 출산이 암컷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수컷도 얼마든지 출산할 수 있어요. 그러니 센터에 선발되는 대상은 어린 소년, 소녀 모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보내지면 대다수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운명입니다.
이 출산의 과정은 특수한 긴 관을 팔에 주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알파 종족의 수정란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들어가는 순간 엡실론 족의 대리모는 수정란의 숙주가 됩니다. 이 과정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단 일주일이면 끝납니다. 그리고 출산이 시작되지요. 그런데 이 출산은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새로운 알파 종족의 아기는 무자비하게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옵니다. 머리로 나올 수도 있고, 배에서 나올 수도 있고, 다리로 나올 수도 있지요. 아무도 그 아기가 어디로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머리로 나오면 대리모는 즉사하겠지요. 그러므로 센터에 온 엡실론 족의 대부분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다리로 나온다면, 그 대리모는 아주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다리 한쪽만 잃는 것으로 끝나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바로 그 무시무시한 센터로 가도록 결정된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당신네 행성의 48시간에 해당하는 이틀입니다. 내가 죽을지 살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길 바라면서도, 다리가 없이, 또는 팔이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어떨지는 가늠이 되질 않는군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할까요? 아니요. 나는 살고 싶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입니다. 나는 해가 지는 저 너머의 프록시마 B 행성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하거든요. 죽으면 그 행성의 분홍색 대기를 볼 수 없어요.
내가 왜 알파 종족으로 태어나지 못했는지,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말하기를, 그것은 행성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정해진 법칙이라고 하더군요. 당신의 행성에서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하던가요? 왜 나의 부모는 알파 종족이 아닌지, 아니, 하다못해 2등급이나 3등급의 시민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참으로 더러운 운명입니다. 지배 종족의 생명을 대신 낳도록 강제된 엡실론 족의 운명이 말입니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혁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엡실론 족에는 혁명의 전사들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지, 나에게 묻고 싶겠지요. 네, 당신네 행성에 있는 그 혁명의 전사는 이 행성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알파 종족은 그렇게 허술하게 행성을 통치하지 않습니다. 엡실론 족은 철저히 순응하도록 설계된 종족입니다. 이 종족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는 불만의 마음을 사그라들게 만드는 특수한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엡실론 족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운명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은 오로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음식들을 거부하고, 먼 들판에 나가서 풀과 흙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센터에서 돌아온 뉴무스를 보면서부터입니다.
뉴무스라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센터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알파 종족의 새끼는 뉴무스의 배를 찢고서 나왔지요. 뉴무스는 엄청난 출혈로 죽을 뻔했는데, 아주 운이 좋게 살아남았어요. 그의 배는 그 찢긴 흉터가 마치 불가사리처럼 새겨져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뉴무스를 '불가사리'라는 별명으로 불러요. 이 불가사리 뉴무스가 어느 날 나에게 그러더군요. 센터에서 살아서 돌아오고 싶다면, 알파 종족이 배급하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구요. 그 음식을 먹으면 몸은 살아나지만, 정신이 죽는다면서요. 불가사리는 나에게 정신의 위대함을 알려주었지요. 자신이 센터에서 살아남은 것도 오직 정신력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불가사리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부모님 몰래 들판으로 나가서 풀과 흙을 먹었습니다. 살아남고 싶었거든요. 뉴무스처럼 배에 불가사리 흉터를 갖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센터로 가기로 정해졌습니다. 지난주, 출산위원회에 불려가서 정밀 검진을 받았어요. 그들은 철저한 검사 끝에 내가 출산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참으로 사악하기 짝이 없는 위원회입니다.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을 가차없이 죽음에 몰아넣으니 말입니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이 행성의 역겹기 짝이 없는 악습에 대해 누군가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내가 3년 동안 몰래 먹은 그 거친 보랏빛 들판의 풀과 흙 덕분일 것입니다. 나는 마을의 유일한 우체국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지구'라는 당신네 행성의 좌표를 발신 기계에 입력했습니다. 아, 물론 '작가'라는 수신인의 직업도 함께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지구의 어느 작가일 것입니다.
자,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이유입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다면, 그 생존기를 당신네 행성에 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도요.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남겨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작가'의 의무는 약자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약자는 언제나 강한 자들에게 짓밟히고 그렇게 죽어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약자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든 생명은 동등한 것입니다. 그 가치를 뒤흔드는 자들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당신은 작가로서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꼭 써서 남겨주길 바랍니다. 나의 이름은 엡실론 족의 카예트(Kayet), 15살의 소년입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나의 죽음이 당신의 글 속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이 초단편(超短篇)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E. Butler)의 SF 단편 '블러드 차일드(Bloodchild)'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