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삐이...'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명희의 오른쪽 귀에 그 소리가 들려왔다. 명희는 전부터 앓고 있는 이명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데 라디오의 노랫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는 웅얼거리고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여서 들렸다. 왜 이렇게 들리는 걸까? 설거지를 하다 말고 명희는 식탁에 잠시 앉았다. 귀도 뻐근하게 아팠다. 마치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갈 때 느끼는 통증과도 같았다. 물을 한 모금 마셔보고, 침도 열심히 삼켜보았다. 그런데도 소프라노 가수의 지글거리는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아."
명희는 라디오를 끄고서 식탁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예전에 병원 소식지에서 읽었던 '돌발성 난청'이란 질병이 떠올랐다. 인터넷 검색창에 '돌발성 난청'이라는 단어를 써넣으니, 자료가 주르르 뜬다. 조금 전에 자신에게 생긴 그 증상과 똑같았다. 갑작스러운 청력의 소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돌발성 난청은 이비인후과의 응급질환이므로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 저녁이다. 일요일에 문을 여는 이비인후과는 없다. 응급실에 가봐야 하는 걸까? 명희의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돌발성 난청을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영구적인 청력 손실이 생깁니다. 그 무시무시한 경고 글이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펄럭거렸다.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귀에서는 지글지글 뭔가가 끓으면서 나는 소리, 쉭쉭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 그런가 하면 휘파람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명희는 바깥을 몇 번이고 내다보았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 저녁의 아파트 단지에는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이럴까?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생겼을까? 돌발성 난청은 치료받는다고 해도, 낫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만약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긴다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명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한 상태로 식탁에 앉아있었다.
"당신, 자는 거야?"
남편이 식탁에 엎드려 있던 명희를 깨운 시각은 밤 9시였다. 저녁 약속이 있다고 나간 남편이 그제야 들어왔다. 명희는 자신이 얼핏 선잠이 들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남편의 목소리가 멀쩡하게 들렸다. 그래, 그건 일시적인 증상이었구나. 소리를 듣지 못했던 2시간은 악몽의 기억으로 남았다.
"글쎄,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귀가 안 들리는 거야. 너무 놀랐지 뭐야."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스트레스 때문 아닐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잖아. 지금은 괜찮지?"
"응. 당신 목소리, 잘 들려."
명희는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남편은 별다른 대답 없이 소파에 가서 TV를 틀었다. 명희는 그런 남편이 무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퇴직으로 대기업 연구소에서 나오게 된 남편은 중소기업에 재취업으로 다니고 있었다. 새롭게 주어진 '생산부장'이라는 직함은 남편의 기를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700만 원이 넘었던 남편의 월급은 반토막이 나서 300만 원이 조금 넘을 뿐이었다. 아직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의 동기들에 비하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급전직하의 삶은 남편에게도 명희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명희는 새삼스럽게 자신과 남편이 꾸려온 삶의 경제적 기반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명희가 살고 있는 일산은 이제 신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낡은 수도 배관에서는 녹물이 나와서 집집마다 수전에 녹물 필터를 끼우지 않고서는 물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일부 단지에서는 몇억을 들여 수도 배관 공사를 진행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질까 봐 그런 사실을 쉬쉬하면서, 재건축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명희는 지금 살고 있는 일산의 31평 아파트를 팔아 봤자, 서울의 변두리 20평대의 아파트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서울은 그저 가끔 외출할 때나 다녀오는 곳이지, 들어가서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산에는 대형 병원이 많아서, 노후에 병원에 갈 때에는 무척 편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신도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늙어버렸다. 젊은 사람들은 인근의 파주 운정 신도시로 떠나버렸다. 일산은 말 그대로 노인들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산의 아파트 한 채, 1억 정도의 은행 저축, 이제까지 성실하게 부어온 연금과 보험. 그것이 명희와 남편이 가진 전부였다. 재테크와는 거리가 먼, 50대 부부가 처한 현실은 그러했다. 두 사람의 하나뿐인 아들은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명희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햇수를 헤아려 보고는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많았다. 달마다 나가는 학원 과외비가 80만 원이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줄여볼 방법이 없었다. 그다지 특출난 머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아들이 명문대에 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서울의 대학만이라도 진학하려면 학원 과외라도 열심히 받아야 했다. 그런데 남편의 이직 이후에, 그 학원비 80만 원은 명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아들이 독서실에서 돌아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들의 말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원체 말이 없는 아이가 더 말이 없어지니, 명희는 무슨 따돌림이나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때도 있었다. 그나마 아들은 키가 크고 약간의 덩치가 있는 편이어서, 체력으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아마도 성적 때문이겠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중학교 때에는 그래도 전교 50등 안쪽에 들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성적이 쭉 미끄러지면서 전교 100등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었다. 도대체 쟤는 왜 공부를 잘하지 못할까? 남편은 연세대 공대를 나왔고, 자신은 이화여대를 나왔다. 부모가 그 정도라면, 자식은 비슷한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들은 공부에 별 소질이 없는 듯했다. 아들이 앞으로 무얼 해서 먹고 살지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콱, 하고 막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니 학원비를 줄인다는 건, 아들의 미래를 내던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를 해서 돈을 벌어야지, 나도."
화요일, 귀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 예약을 했다. 버스 정류장을 걸어가면서 명희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명희가 가려는 종합병원은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그 버스의 배차시간은 25분으로 꽤 길었다. 명희의 집은 일산에서도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있었다. 명희는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자신과 남편이 어쩌면 재산을 늘리는 일에는 그토록 무지했던 것일까, 긴 한숨을 내쉬곤 했다. 명희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정류장 게시판에 붙어있는 광고를 하릴없이 쳐다보았다.
'학원비는 무료로 국비로 전액 지원됩니다. 중년 주부의 실용적인 재취업 기회! 간호조무사 자격증에 도전하세요. 미래 간호학원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명희는 전에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어떻게 잘 준비해서 자격증을 땄다고 하자. 그것으로 어딘가에 취업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취업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
'솔직히 말할게요. 그 자격증, 나이 든 사람한테는 별 의미 없어요. 요새 개업하는 젊은 원장들 나이가 30대에요. 그 사람들이 50대 간호조무사를 쓰겠냐고요. 자기가 부려먹을 사람인데, 아무래도 더 어린 친구들 쓰죠.'
어느 중년 여성이 간호조무사 자격증 따는 것에 대해 주부 커뮤니티 게시판에 고민 글을 올렸다. 그러자 누군가 그렇게 신랄한 답변을 달아놓았다. 명희는 그 답변을 읽고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 답변을 읽고 나니, 간호조무사 자격증에 대한 고민은 싹 사라져 버렸다. 나이라는 것이 쓸데없는 혹 같이 거추장스럽다는 걸, 요즘 들어 명희는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아줌마, 나이가 많네."
며칠 전, 명희는 지나가다 동네 마트에 붙은 파트타임 캐셔 모집 공고를 보았다. 마트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점장이라는 젊은 남자가 명희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서른 좀 넘었을까, 하는 새파란 놈이 혓바닥 짧게 놀리는 꼬락서니가 역겨웠다. 더군다나 나이를 운운하는 것에 너무나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 취직했다면 저런 놈한테서 받을 대우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그 분노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명희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돈을 버는 고생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20년이었다.
버스는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대기시간은 25분에서 15분으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명희는 이런저런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귀에는 별문제가 없는 것일까? 명희는 가만히 오른쪽 귀를 막고서 소리가 들리는지 보았다. 그런 다음에는 왼쪽 귀를 막아보고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소리가 들리는지 보다가, 정류장 근처 교회가 눈에 띄었다. 작업용 권색 조끼를 입은 30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조심스럽게 교회 뒤뜰의 비좁은 통로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들어가는 통로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얼굴을 부딪친 모양인지, 움찔하면서 가지를 내리쳤다. 그러고는 이내 그 나무 옆에 있는 가스 배관의 계량기를 확인하고는, 수첩 같은 전자기기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저 여자는 가스계량기 검침원이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체력도 없는 자신은 저렇게 민첩하게 몸을 쓰는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잉여적인 부산물처럼 취급받는다. 명희는 남편의 수입에만 온전히 의지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이 뼈저린 실패처럼 여겨졌다.
명희의 우울한 마음처럼 하늘이 흐려지더니, 이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명희는 천 가방에 우산을 챙겨서 나왔다. 우산을 펴서 들고서 조금 서 있으니 버스가 왔다. 다섯 정거장이 금세 지나갔다. 비 오는 화요일 오후의 종합병원은 이상하게 한가했다. 늘 환자로 미어터지는 병원이 한가하니까 신기한 생각마저 들었다. 검사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명희는 미리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젊은 여자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보통은 그런 청소 아줌마들은 나이가 있는 편인데, 아무리 봐도 그 여자는 서른이 채 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저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하다니, 명희는 그 여자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돈을 벌 방법은 어떻게든 있는 법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안 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명희는 자신의 안일한 마음가짐을 꾸짖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이비인후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고는, 명희는 귀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소음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의사는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양쪽 귀를 한번 보고, 건성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진료를 끝마쳤다. 초면의 환자에게 반말 섞어서 하는 저 늙은 의사는 참으로 세상 편하게 사는구나. 저렇게 말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저런 거야. 명희는 의사의 태도에 혀를 끌끌 차면서 진료실 문을 나왔다. 반말 찍찍 해대는 의사를 견디는 기분도 무척 더럽겠네. 명희는 자신이 간호조무사 일은 더더욱 못할 것 같았다.
'별다른 경력이 없어도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특별히 보너스 시급이 지급됩니다. 많은 신청 바랍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뉴스를 클릭하다가, 명희는 대형 쇼핑몰 물류센터 알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물류센터는 일산에서 가까운 파주에 있었다. 일산에서 파주까지의 이동은 통근버스가 담당하고, 근무 시간의 선택지도 몇 가지가 있었다. 명희는 별 생각 없이 광고에 적힌 문의 안내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내보았다.
'50대 주부인데, 지원 가능한가요?'
'네, 그럼요.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명희는 단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에 문자 답변이 그렇게 오자 깜짝 놀랐다. 답변 문자에는 통근 버스 정류장의 위치, 신발과 복장에 대한 안내, 첫 출근 시 제출해야되는 서류에 대한 첨부파일이 들어있었다.
'성훈이 학원비라도 벌어봐야지. 그냥 단 며칠간만이라도 해보는 거야.'
명희는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책을 떠올렸다. 동화책 속, 중세의 기사는 무작정 길을 떠났고 불을 뿜는 용을 만나서 단칼에 제압했다. 그 여정의 시작은 어쨌든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힘들어서 하루 만에 그만두더라도, 한번 해보는 거야. 명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목요일, 가을비가 지나가고 난 뒤에 갑작스러운 초겨울 추위가 몰려왔다. 명희는 물류센터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기다란 행렬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내렸다. 물류센터는 허허벌판에서 포효하는 거인처럼 보였다. 그곳의 구석진 작은 출입문으로 들어가서는 시린 손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명희는 '레일(rail)'이라고 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진 상품을 토트박스(tote box)에 실어 이동하는 일을 배정받았다. 초보자임을 감안해서 명희의 토트박스에 담긴 상품들은 주로 가벼운 의류와 소형 상품들이었다. 그곳에서 질문은 금기사항이었다. 무엇이든 눈치껏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고 따라 하면서, 시키는 것을 잘 알아들어야만 했다.
'이곳에서 나는 여자가 아니다. 그냥 한 명의 노동자일 뿐이다.'
여자라고 해서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더 쉬운 일을 찾을 수는 없다, 고 명희는 생각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48kg의 명희보다 더 말라 보이는 여성도 있었다. 155cm 정도의 작은 키에 비쩍 마른 체구의 여성은 딱 봐도 무거운 짐이 실린 토트 박스를 끌고서 이리저리 날쌔게 걸어 다녔다. 저 몸의 어디에서 힘이 그렇게 나오는 것인지, 명희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파란색의 토트 박스가 물을 잔뜩 먹은 소금 포대처럼 느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벼운 물건을 담았다고 해도, 명희에게 그 일은 갑작스러운 막노동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6시까지는 버티자. 내일 못하더라도, 오늘은 끝까지 해야지. 명희는 이를 악물고 토트 박스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명희가 통근 버스를 타고 집에 온 시각은 7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긴장했던 다리가 탁 풀리면서 명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땀으로 눅눅해진 바람막이의 지퍼를 내릴 기운도 없었다. 겨우 바람막이를 벗고는 한 손으로 신발장을 짚고 신발을 벗었다. 현관의 거울에 비친 사람은 기미가 끼고 주름진 얼굴의 늙은 여자였다. 머리카락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떡처럼 뭉쳐있었다. 검은색의 티셔츠는 희끗희끗한 먼지 같은 것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명희는 티셔츠에 묻은 것을 탁탁 털어보았다. 그것은 소금이었다. 하루 종일 흘린 땀의 소금기가 마르면서 가루처럼 옷에 엉겨붙은 것이었다. 명희는 오늘 하루 일하면서 일당 9만 2천 원을 벌었다. 명희는 티셔츠에 묻은 소금 가루를 차마 털어내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현관에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