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다
"아빠, 꿈에 어떤 할머니가 보여."
"그 할머니는 어떤 옷을 입고 있었니?"
"음,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 입고 있었는데."
올 것이 왔구나, 명준은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영이가 말한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은 할머니는 대신(大神) 할머니다. 영이에게 신명(神明)이 있다는 것은 6살 때 알았다. 지나가는 동네 아줌마를 보더니, '저 아줌마는 얼마 못 살겠네' 하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며칠 후, 영이가 말한 동네 아줌마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명준은 영이의 신명을 누르기 위해 눌림굿을 했다. 조금씩 조금씩 신명을 그렇게 눌러주면, 영이가 무당이 되는 것은 어떻게든 미룰 수가 있겠지. 명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명준의 바람과는 달리 이제 대신 할머니가 영이에게 직접 말씀하시겠다고 저리도 일찍 오고 말았다.
"무당은 당신만으로도 족하잖아요. 신령님도 그 어린 것을 데려다 뭐에 쓰신다고."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신이 오시고 싶으면 오시는 거지. 감히 우리 인간 따위가 신에게 그런 소릴 할 수는 없는 법이야."
명준은 아내가 한탄을 하며 하는 말을 그렇게 막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명준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영이의 나이가 이제 고작 열 살. 저 아이가 지금 내림굿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래처럼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그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스물, 아니 열다섯 정도나 되어서 내림굿을 받는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인 자신의 생각일 뿐이지, 신의 뜻은 다를 수도 있다. 명준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준은 자신이 신병(神病)에 걸려서 삼 년을 고생했던 일을 떠올렸다. 박수로 살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친 삼 년이었다. 그러다 결국 눈이 멀어서 보이지 않게 되자, 명준은 신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림굿을 받고 나서야 명준은 시력을 되찾았다. 안개가 자욱한 세상에 안개가 걷히고, 해가 쨍쨍하게 비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길 하나가 있었다. 신의 제자로 살아가는 단 하나의 길. 그렇게 자신만 제대로 살면 자식에게는 그 신명이 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신명은 영이에게도 뻗쳐서 영이도 무당이 될 운명이었다.
"영이야, 아빠하고 산에 기도하러 가자."
"그래, 아빠. 그렇잖아도 할머니가 산에 좀 다녀오라고 그랬어."
명준은 늘 하던대로 기도에 필요한 짐 몇 가지를 챙겨서 배낭에 넣었다. 늦더위가 남아있어도 아직 산 위쪽은 한기가 느껴진다. 어린 영이가 추워할까 봐 작은 담요를 옷장에서 꺼냈다. 저 아이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지. 천진스럽게 웃는 막내딸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명준의 마음은 한없이 쓰라렸다.
명준이 기도하는 산의 기도처는 보통의 등산로로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자리한 작은 기도처는 비탈진 길을 꼬박 5시간이나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어른인 자신도 걷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길이었다. 영이가 힘들면 자신이 좀 업고, 쉬어가면 되겠지. 하지만 명준의 걱정과는 달리, 영이는 날랜 다람쥐처럼 명준보다 저만치 앞장서서 걸었다. 딸의 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명준이었다. 신이 실려서 저러는구나. 명준은 자신의 인간적인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마침내 기도처에 이르자, 커다란 새 초를 꺼내어 명준은 신당의 작은 상에다 놓았다.
"영이야, 산신 할아버지한테 인사해야지. 저 왔어요, 하고. 자, 여기 초에다 불을 붙이거라."
명준은 성냥에 불을 붙여서 조심스럽게 영이에게 건넸다. 명준은 신당에 초를 켤 때 라이터를 쓰지 않았다. 성냥에 불을 붙이는 작은 정성 하나도 신이 보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할아버지, 영이 왔어. 아빠하고 같이."
"영이야, 할아버지께 좀 많이 도와달라고 말씀드려라."
"응."
영이의 얼굴은 상기된 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차가운 돌바닥을 두툼한 은박 깔개로 덮고, 그 위에 방석과 담요를 겹쳐서 깔아 놓았다. 영이에게 가만히 앉아서 기도를 해보라고 하니, 영이는 자기는 서서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명준은 어린것이 신명이 뻗쳐서 그렇구나 싶어서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35살의 박수무당 아빠와 10살 딸은 이른 아침부터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기도를 했다.
"영이야, 껌껌해지니까 좀 무서워?"
"아니, 아빠가 옆에 있는데 뭐. 그리고 산신 할아버지가 지켜주고, 할머니도 있고."
"어떤 할머니? 꿈에서 본 노랑 저고리 할머니?"
"응, 그 할머니 말고 또 다른 할머니도 있어. 흰 고깔 쓴 할머니."
영이가 말한 흰 고깔을 쓴 할머니는 불사(不死) 할머니이다. 조상 가운데 기도 공덕을 많이 바친 어른이 신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명준은 영이에게 내려온 불사 할머니가 자신의 조상 쪽인가, 아니면 아내 쪽인지 궁금해졌다. 아내의 작은고모님은 인천에서 이름난 무당이었다. 그러니까 영이의 신줄이란 어찌 보면 꼬이고 꼬여서 단단해진 동아줄 같은, 그런 강력한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할머님께 외가에서 오셨냐, 친가에서 오셨냐, 한번 여쭈어봐라."
"엄마네 5대 할머니."
그랬구나. 이제 그 할머니는 영이가 내림굿을 받으면 몸주신으로 영이와 평생을 함께하실 것이었다. 할머니, 우리 영이 좀 잘 굽어살펴주세요. 이 어린 것이 기특하고도 가엾지 않습니까.
"할머니가 아빠한테 아무 걱정하지 말래. 내 자손 굶기지 않는다고."
"그렇구나. 우리 영이를 많이 예뻐하시는가 보다."
그렇게 명준이 영이와 함께 산 기도를 드리고 내려온 후, 명준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답답한 응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 어떻게든 좀 시간을 벌어보고 싶은 것이 명준의 마음이었다. 지금 영이가 신을 받아야한다는 것은 신의 뜻이고, 몇 년이라도 조금 더 늦추는 것은 아비로서 명준의 바람일 수밖에 없었다. 명준은 신에게 간절히 빌면 어떻게든 말미를 주지 않으실까, 하는 소망이 있었다. 명준은 우선 신어머니를 찾아가 이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그래, 일이 그렇게 되었구나."
"신령님들이 하시는 일이기는 하지만서도, 영이의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한 5년, 아니 3년 만이라도 늦추면 싶은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것은 애비로서의 네 마음이고, 우리가 신제자로서 신명을 받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신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서 하는 소리냐? 네가 앞 못 보고서야 신 받은 것을 벌써 잊은 게냐?"
명준의 신어머니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명준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이 딱한 사람아. 그런 게 없다는 걸, 자네나 나나 잘 알지 않는가? 공연히 시간만 끌면, 오히려 영이한테 화가 미칠 수도 있어. 신은 한번 마음을 정하시면, 끝을 보고 마시지. 신을 거역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마시게나."
그렇게 신어머니를 만나고 나니, 명준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명준은 점사(占辭)를 봐주기로 한 손님들의 예약도 취소했다. 속이 시끄러우니, 신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신당의 문을 닫고, 산으로 바다로 기도를 한다고 나가는 때가 많아졌다. 아내는 그런 명준을 애처로운 심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영이에게 내린 조상신은 아내의 집안 할머니였다. 그것은 대대로 이어지는 신줄의 내력이었다. 영이가 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준의 아내도 잘 알았다. 받아들이는 것이 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10월의 고성 바닷가는 벌써 겨울이 온 것처럼 매서운 찬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다. 하늘은 짙은 먹색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민박집의 라디오에서는 풍랑주의보를 안내하는 일기예보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런 날씨에 나가시게? 지금 부둣가에 배들 묶어놓느라 다들 난리인데."
"좀 답답해서요. 조금 걷다 오겠습니다."
"아무튼 조심하시구려. 바다 날씨라는 게 정말 무서우니 말입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민박집 주인은 걱정인지 가벼운 면박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명준은 아침에 시장에서 사 온 시루떡과 은박 돗자리 하나를 천 가방에 넣고는 민박집을 나섰다. 민박집 주인의 말대로 바람이 심상치가 않았다. 헐렁한 가방이 세찬 바람에 명준의 어깨를 휘감았다. 괜히 나왔나. 그래도 방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힘겹게 바람을 견디면서, 명준은 어제 봐둔 바닷가 바위 아래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은 커다란 바위가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줘서인지, 그나마 조금은 바람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위 아래 모래사장에 명준은 은박 돗자리를 펼쳤다. 그리고 돗자리에 떡을 꺼내어 놓고,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용왕님, 바람 때문에 초를 켜지 못하는 제 불찰을 용서해 주십시오. 제물도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저 제자의 간절한 마음만 잘 받아주십사..."
명준은 염주를 단단하게 왼손에 말아쥐고는 절을 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곧 내리는 비와 섞여서 비바람으로 변했다. 거친 비바람이 명준의 얼굴을 때리며 머리카락을 뒤엉키게 했다. 명준의 눈에 흐르는 것이 비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명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무업(巫業)을 잇지 않게 하겠다고 얼마나 다짐을 했던가. 명준은 할 수만 있다면 영이에게 내린 신명을 모두 거둬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절을 오랫동안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명준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는 돗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바람은 갈수록 더 세어져서 돗자리까지 정신없이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휴대전화의 전화벨이 울렸다.
"영이 아빠, 지금 어디야? 영이가 다쳤어. 학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대. 나 지금 병원 응급실로 가는 길이야. 당신도 얼른 좀 와봐요."
아내의 전화를 받은 명준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명준은 갑자기 뒤통수가 깨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마치 신이 자신을 벌주는 것 같았다. 명준은 영이의 내림굿을 미루려는 자신의 인간적인 바람이 비바람 속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신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할 일은 그저 잘못을 깨닫고, 신의 부르심에 '네'라고 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영이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졌지만, 정말 놀랍게도 어디 하나 부러진 곳이 없었다. 아주 가벼운 찰과상과 멍자국만 남았다. 명준은 신이 영이를 지켜주시는 것에 거듭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영이의 내림굿 날짜를 잡는 일이었다. 신어머니와 상의하고 영이의 내림굿 날짜를 두 달 후로 잡았다. 그렇게 날을 받아놓으니, 홀가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영이가 이런 모든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이 가장 걱정되었다.
"어제는 꿈에 어린 애들이 보이던데."
"동자들이야. 네 또래지?"
"응. 나한테 막 사탕 내놓으라고 떼를 써."
"다음에 또 꿈에서 보면, 사탕하고 과자 많이 준비해 놓겠다 그래라."
"그런데 왜 동자한테 그런 거 줘야 해?"
"동자는 신령님들 목소리 전해주는 심부름을 하거든. 그러니 잘 보여야지."
"그럼, 신령님들한테는 내가 무슨 선물을 하면 될까?"
"그건..."
명준은 그 말을 하다가 말고, 목이 메었다. 신의 제자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신에게 바치는 사람이다. 명준이 그랬던 것처럼 영이도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하고 영이는 가진 모든 걸 그냥 다 신에게 드리면 되는 거야. 기도하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 돕고."
"좋은 거네. 아빠, 그런 거지?"
"그래."
낙엽들도 소슬바람에 다 쓸려나가 버린 초겨울의 어느 날, 영이는 내림굿을 받았다. 명준의 오랜 재가(在家) 신도들이 영험한 애기 무당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들 와주었다. 신어머니와 명준의 신형제 신자매들도 와서 굿을 도왔다. 명준은 신명과 인연, 돈으로 기묘하게 얽힌 이 공동체가 '내림굿'이라는 큰 행사를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그렇게 영이의 내림굿은 아주 순조롭게 이어졌다. 영이는 명준이 굿당 앞마당 소나무 아래에 감추어둔 방울도 잘 찾아내었다. 아버지로서 자신이 딸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기도 했다. 그 무령(巫鈴)이 딸의 앞날을 잘 지켜주길, 명준은 빌고 또 빌었다. 이제 영이가 별상(別上)장군을 받기 위해 작두를 탈 시간이 되었다. 무당이 된 지 10년이 된 명준도 작두 타는 것은 여전히 두려웠다. 그런데 어린 영이가 그걸 탈 수 있을지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모든 건 신이 다 하신다.'
명준은 그렇게 여러 번 되뇌었다. 부정(不淨) 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지를 입에 물고 명준의 신형제들이 쌍작두의 날을 양옆에서 꼭 붙들고 있었다. 파란 무복(巫服)을 입고 관모(冠帽)를 갖추어 쓴 영이가 제단 앞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십수 번을 돌았다. 영이가 한달음에 내달려 쌍작두 앞으로 가더니, 가볍게 작두 날 위에 올라섰다.
"아, 오늘 기분이 좋다. 정말 좋아. 나라 평안하고, 너희들 집안도 무탈하냐. 너희들 안 좋은 거, 힘든 거 막아주려고 내가 왔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10살 여자아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카랑카랑한 영이의 목소리가 굿당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아이구, 별상장군님 오셨어요? 장군님, 잘 오셨습니다. 저희가 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너희들이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내 잘 안다. 누가 이 좋은 자리에 허섭스러운 말을 보태느냐. 그런 말을 하는 자는 벌을 받을지어다. 이 어린 자손, 내가 잘 지켜줄 테다. 온 천지에 제자의 신명이 가득차도록 불리고 불릴 것이다."
"네, 복을 주시고 또 주십시오. 온갖 액운, 장군님의 영검으로 다 막아주고 끊어주소서."
명준은 영이가 작두날 위에서 내려올 때까지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신어머니에게 작두거리를 꼭 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신어머니의 대답은 단호했다. 작두를 타지 못하면 영검이 더해지지 않고, 큰 무당도 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생각이 많은 어른보다 어린 영이에게 신이 제대로 실리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영이는 작두거리를 무사히 끝냈다. 명준은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것을 느끼며 굿당의 문을 꼭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