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맨 마트(Two men mart)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손님도 별로 오지 않는다. 정현의 얼굴은 진회색 구름의 하늘처럼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굵어졌다. 거기에다 바람까지 세게 불어서 몹시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덜컹, 가게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정현의 신경이 곤두섰다. 아마 간판이 흔들리는 소리일 것이다. 7년 된 낡고 빛바랜 간판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혹시라도 간판에 문제가 없는지 보기 위해 정현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 맨 마트'

  원래는 남색 바탕이었던 간판의 색은 이제 하늘색으로 변했다. 흰색의 글씨는 어쩐지 매가리 없이 늘어진 갈치처럼 보였다. 마트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이었다. 정현의 아버지는 나중에 크게 번창할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투 맨 마트는 그렇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마음이 담긴 가게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가게는 정현 혼자서 꾸려가는 원 맨 마트가 되고 말았다. 약으로 그럭저럭 조절되었던 아버지의 파킨슨병이 심해진 것이 3년 전이었다. 그해, 정현의 어머니가 심부전으로 세상을 떴다. 정현에게 그해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아버지를 정현은 보살필 수 없었다. 회사의 정리해고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아버지의 마트를 떠맡았다. 그리고 정현은 아버지를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보냈다.

  "저걸 손 보기는 해야 할 텐데."

  정현은 간판의 오른쪽이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진 것을 발견했다. 정현에게는 이 마트의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귀찮게 느껴졌다. 자신의 시간과 몸을 갈아 넣어서 굴러가는 가게는 그저 그날그날의 밥걱정을 겨우 면하게 해주는 삶의 방편이었다. 아버지가 마트를 열면서 진 빚의 원금과 이자가 매달 꼬박꼬박 나가고 있었다. 작년까지는 캐셔 아줌마 한 명을 썼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인건비조차 부담스러워졌다. 결국 정현은 마트의 모든 것을 혼자 해나가기로 했다. 물건의 입출고와 캐셔일, 그리고 배달까지 다 해내느라 정현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기울어진 간판을 보고 들어온 정현의 마음은 더욱 우울해졌다. 그나마 매출이라도 나오니까 아버지 요양원비며 이런저런 나가는 돈을 메꾸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서 매출까지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건 생각하기조차 싫은 시나리오였다. 정현은 기울어진 간판이 사회의 하층민으로 전락해 버리는 자신에 대한 불길한 전조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든 간판부터 고쳐야지. 정현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어서 오세요."
  "이것 좀 환불해줘요. 진미채 색깔이 푸르딩딩하잖아."
 
  60대 중반의 파마머리 여자는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정현에게 따져묻듯 말했다. 정현은 이 여자 손님에게 수박 여편네라는 별명을 붙였다. 여자는 지난 여름, 수박을 사가지고 가서는 수박이 맛없다며 정현에게 환불을 요구했다. 여자가 가져온 수박은 4분의 1쪽도 되지 않은 크기였다. 정현은 아무 말 없이 환불해 주었다. 그런 진상들과 입 아프게 말해봤자 성질만 더 뻗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저 여편네는 진미채에 곰팡이가 생겼다며 환불을 요구하고 있었다.

  "영수증 좀 줘 보시죠."

  정현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지갑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영수증을 내밀었다. 영수증의 날짜는 8월 7일로 찍혀있었다. 오늘은 9월 30일, 그러니까 이 수박 여편네는 거의 2달이 된 진미채를 가지고 와서 환불을 요구하고 있었다.

  "손님,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는 건어물은 모두 냉장실에 진열되어 있고, 항상 그렇게 보관합니다. 8월 7일에 구매한 진미채에 곰팡이가 생겼다면, 그건 손님이 보관을 잘못한 거겠죠."
  "그래서, 지금 환불을 못 해주겠다는 거야? 사람이 먹지도 못하는 물건을 팔아놓고 염치도 없네. 당신 애비 생각해서 내가 물건 팔아주는 건데, 이 따위로 나와?"

  정현에게는 아주 좋은 덕성이 있었는데, 그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까지 들먹이는 저 여편네에게는 쌍욕을 해주어도 시원찮았지만, 정현은 웃으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환불 못 해 드립니다. 손님, 여름에 다 처먹은 수박 쪼가리 들고 와서 4만 원짜리 수박 환불받으셨죠? 그럼 그걸로 끝내야죠. 앞으로 손님은 투 맨 마트 출입 금지입니다.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었다구요. 블랙리스트, 알아요? 하긴 무식해서 블랙리스트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뭐야? 야, 너 이런 쥐꼬리만 한 가게 해서 어떻게 밥은 처먹고 사니? 하여간 복 쪼가리 없는 건 병신 애비나 새끼나 똑같네."

  정현은 뱀눈을 뜨고 악담을 퍼붓는 여자의 얼굴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지금 CCTV도 다 녹화되고 있고요. 이렇게 나한테 욕설하는 거, 다 촬영해서 모욕죄로 경찰에 고소할 겁니다. 이왕 시작한 거, 계속 더 해보시죠."

  정현의 그 말에 여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길길이 날뛰었다. 정현은 카운터 아래에 둔 소금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서는 소금을 되는대로 움켜쥐고는, 여편네의 발밑에다가 후려치듯 여러 번 흩뿌렸다. 그제야 여자가 움찔거리더니 가게를 나갔다. 

  '부자 동네에서 장사를 하면 저런 막돼먹은 손님은 없겠지.'

  '투 맨 마트'가 있는 이 동네는 재건축도 어려운 낡은 시영 아파트와 30년이 넘은 빌라가 공존하는 주거지역이었다. 명백히 '빈민가'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곳에 거주하는 대부분 주민의 행색에는 가난의 냄새가 꾸역꾸역 풍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정현 또한 그 가난에 물드는 중이었다. 발목 정도일까, 어쩌면 허리까지 그 가난의 물이 자신에게 들이찼는지도 모른다. 정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거리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뭐하냐? 손님은 좀 있어? 비도 오는데, 있다 저녁에 술이나 한잔 어때?"

  진상 여편네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차에 경수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배달할 거 좀 있어. 들어온 물건 정리도 해야 하고. 다음에 보자."
  "아따, 너 얼굴 잊어버리겠다. 다음, 다음 그러다 망년회 때 보겠네. 알았다, 그럼."

  사실 배달할 주문은 딱 1건밖에 없었다. 오늘은 입고되는 물건들도 없었다. 정현도 친구들과 만나서 술 마시며 힘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을 만나서 쓰는 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아껴서 빨리 대출금을 갚아버리고 싶었다. 빚이 없어져야만,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뭔가 번듯한 사업 같은 것도 할 수 있다. 술 마시는 데 쓰는 돈도 아까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술 마시다 자신이 무슨 사고라도 치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도 있었다. 마트를 혼자 하게 되면서, 오늘처럼 진상 여편네와 같은 손님이며 정현의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울분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밖에서 술을 마시다 취해서 불필요한 말다툼이나 싸움에 휘말리지는 않을지, 혹시라도 어디서 뭔가를 부셔버리지는 않을지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정현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편을 택했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전에 소주를 종이컵으로 꽉 채워서 한 잔 마셔야만 잠이 들었다.

  정현은 8시에 마트의 문을 닫았다. 평상시에 9시 반까지 영업하던 것에 비하면 좀 이른 시각이었다. 오늘은 그냥 일찍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그나마 배달해야 할 집이 한 군데라 다행이었다. 비는 그쳤지만,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진 곳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배달 왔습니다."

  정현은 개나리 빌라 203호의 벨을 눌렀다. 그 집의 현관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음식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언제 맡아보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청국장 냄새였다. 청국장은 정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정현에게 청국장찌개를 자주 해주시곤 했다. 정현은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확 열리더니, 그 집의 고등학생 아들이 정현의 팔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형아다. 형아, 밥 먹고 가. 밥."
  "아니, 왜, 무슨..."

  정현은 당황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학생은 지적 장애가 있었다. 정현은 자신의 마트에 종종 들르는 그 모자(母子)를 알고 있었다. 남학생의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또래보다 체구가 커서, 교복을 입지 않았다면 스무 살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학생이 정현의 손목을 잡아끌면서 밥을 먹으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늦게까지 수고하시는구려. 마침 밥 먹으려던 참인데, 식사나 함께합시다."

  비좁은 안쪽 거실에서 퉁퉁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정현을 향해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배달할 물건이 있어서요."
  "사양하지 마시고. 그냥 식탁에 밥 한 공기 더 놓으면 되는 거니까. 여보, 밥은 넉넉히 있지?"
  "네. 식사하고 가세요."

  남학생은 정현을 보고 한없이 웃어 보이며, 정현을 현관 옆의 4인용 식탁에 끌어다 앉혔다. 정현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학생의 힘에 떠밀려 그렇게 식탁에 앉고 말았다. 정현이 식탁에 앉자, 학생이 물티슈를 건넸다.

  "형, 손 닦아. 깨끗이. 그래야 밥 먹을 수 있어."

  정현은 그런 학생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굳었던 표정이 누그러졌다. 식탁에는 청국장찌개와 겉절이, 칼집을 낸 비엔나소시지 구이, 참외장아찌 무침이 놓여 있었다. 정말이지 얼마만에 보는 집밥인지 몰랐다. 그러니까 3년 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현은 이런 밥을 차려서 먹어본 적이 없었다. 마트에서 돌아와 집에 가면 대개는 라면을 끓여 먹거나, 레토르트 식품을 데워서 끼니를 때웠다.

  "형아, 이거 맛있어.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학생은 비엔나 소세지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정현의 밥 위에다 놓았다. 부부는 그런 아들을 가만히 웃으며 바라보았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식탁에서 정현의 마음에 무언가가 몽글몽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정현이 밥 한 그릇을 비우자, 학생의 어머니가 밥을 더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정현은 손사래를 쳤다.

  "가봐야죠.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보니까, 겉절이를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좀 싸드릴게요."

  정현은 괜찮다면서 사양했지만, 어느새 정현의 손에는 겉절이를 담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비가 그친 가을의 밤거리에는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정현의 마음은 그 집 식탁의 온기로 채워져 있었다. 그 온기는 정현의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같은 마음에 논물이 되어 찰랑거렸다. 정현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도 자주 찾아봬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투 맨 마트에 언젠가 자신의 곁에 있을 한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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