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야
사업 실패와 부모님이 진 빚 때문에 죽고 싶다는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로 죽을 결심을 하신 것은 아니지요? 아니, 죽을 결심을 하고 찬찬히 준비를 하고 있나요? 사람이 말입니다, 죽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작년 여름의 일입니다. 저는 등산을 참 좋아합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그걸 지키려고 해요.
그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등산하기 전, 날씨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비 예보도 없었구요. 그런데 자연이란 것이 사람의 예측 따위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려요. 산 중턱에 다다랐을 무렵,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군요. 나는 배낭에서 우비를 꺼냈습니다. 비가 쏟아지면 입을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천둥 번개가 치더니,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는 겁니다. 소나기치고는 무척 세차게 내리는 비였죠. 우비를 뒤집어쓰고 근처 나무 아래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빗줄기는 더 세질 뿐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는 하산하기로 마음먹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에 산길은 고랑이 생기며 무척 미끄러웠습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발을 좀 헛디뎠죠. 완만한 경사길이었는데도, 발목이 꺾이면서 데굴데굴 굴렀지 뭡니까.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 눈을 떠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더군요. 누군가 신고를 해서 산악 구조대의 헬기를 타고 인근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응급실에서는 골반이 부서진 복합 골절이라 큰 수술이라는 겁니다. 좀 더 큰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요.
다시 구급차에 실려서 1시간을 달린 끝에 대학 병원에 도착했어요. 거기서 CT, MRI 찍은 걸 보더니 의사가 그러는 겁니다. 골절이 문제가 아니라 뼈에 종양이 생겼는데, 암 같다구요. 결국 골육종(骨肉腫)으로 판명되어서 다리뼈 몇 군데를 잘라내야 했어요. 다행히 다리 병신은 면했죠. 쇠로 된 뼈며 인공 관절을 구멍난 그릇 땜질하듯 끼워넣었거든요. 물론 남은 생애, 다리를 질질 끌면서 살게 될 것 같기는 합니다.
내 힘으로 대소변을 볼 수 있다는 거,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행복인지 아십니까? 나는 그랬어요. 의사가 암이라서 뼈를 잘라내야 한다고 말할 때, 평생 휠체어에 앉아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요. 행복이란 게 별게 아니에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그날의 식단 메뉴에 신경이 곤두서요. 맛있는 고기반찬 나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아주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런 일상의 행복. 그런 게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살아갈 힘이 생겨요.
자, 어떻습니까? 선생님의 사소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매일의 행복은 뭘까요?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뭔가가 있을 겁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이제부터 만들면 되지요. 선생님이 너무나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인생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 힘든 구석이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래도 그냥 살아가요. 그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