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냉장고 문을 열다가 왼쪽 발을 부딪쳤다
엄지 발톱의 모서리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절름절름 다친 이리처럼 걷는다
먹잇감을 가진 이리를 따라가다가
인정사정없이 뜯겼다
등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하늘은 짙푸르다
돌아갈 집 따위는 언제나 없었다
부러진 발톱을 내려다 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떨어져 나간 모서리 때문이다
회색의 압력을 견디는 모서리
누군가가 말하길
모서리를 살릴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모서리에 낀 푸른 이끼가
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다
이끼가 가느다란 팔을 내밀어
자그마한 집을 짓는다
모서리가 조금씩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