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들


며칠 전에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출입구 뒷편에 못 보던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크고 작은 장독 항아리들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어디서 주워 온 것들은 집에다 둘 데가 마땅찮아서, 거기에다 둔
모양이었다 그냥 하나만 있어도 눈에 거슬리는데, 잔뜩 쌓아둔
모양새가 영 마뜩잖았다 항아리 옆에는 쓰지 않은 화분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곳은 엄연히 공용 부지인데, 그걸 쌓아놓은
인간은 자기 집 마당처럼 쓰고 있었다 그 항아리들을 치우는
방법은 우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대부분 관리사무소의 일 처리는 늦고, 그걸 기다리는 것은
꽤나 짜증스러웠다 나는 매번 지나다니면서 그 꼴사나운 항아리를
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종이를 써 붙이기로 했다 이곳은
공용 공간입니다 개인 물건을 쌓아두지 마세요 빠른 시일 내에
치워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써서 항아리에 붙여놓았다 다음날,
종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항아리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좋게 말해도 알아처먹질
못하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나는 다시 한번 글을 써
붙였다 아파트 공용 공간에 개인 물건 쌓아놓지 마시오 이 항아리들은
불법 폐기물이니, 항아리 주인은 치우시오 그리고 이 종이 함부로
떼지 마시오 CCTV 확인합니다 그 종이를 붙이고 나서 그다음 날,
나는 아파트를 나가는 길에 그 많은 항아리와 화분들이 휑하니 사라진
공터를 확인했다 항아리 주인이란 작자는 도대체 그것들을 어디로
가져간 것일까? 분명히 치울 데가 있음에도 너저분하게 공용 부지에
쌓아놓은 뻔뻔함이 역겨워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문득 그 항아리들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시골의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는 정겨운 풍경이겠지만,
아파트 공터에 쌓여있는 빈 항아리들은 그저 흉물스러운 풍광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단 2장의 종이로 항아리들을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