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베란다 앞쪽 감나무는 올해 그 혹독한 여름 더위를
견뎠다 가을로 넘어가면서 감이 주홍색으로 익어갔는데,
그것이 멀리서 보면 고운 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감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마도 그 감나무에
눈독을 들인 누군가가 죄다 따서 가져간 것 같았다
화단은 주기적으로 수목 소독을 하는데, 독한 농약
뒤집어쓴 감을 따다가 뭘 얼마나 먹겠다고 저러는가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밖에서 웬 남자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쳤다
동대표 마누라면 다야? 어디서 경비를 종 부리듯 부려?
울그락불그락한 남자 옆에서 늙고 키 작은 경비 할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네가 뭔데 참견을 해?
여자도 지지 않고 뻔뻔하게 대거리를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동대표 마누라가 경비에게 감을 따게 시켰던 모양이다
그걸 본 어떤 주민이 분노해서 그렇게 싸움이 벌어졌다
감나무를 보면, 가끔 그 일이 생각난다 올해는 감이
풍년이라 감도 싼데, 소독약 범벅인 감나무에서
감을 악착같이 따가는 사람이 있다 그나마 따기가
힘들었는지 꼭대기에 감 한 개가 덩그마니 남아있다
겨울에 새들이 잠시나마 단맛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