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며칠 후, 강남의 어느 아파트에서
고 3학생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투신
자살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청소년 자살에 대한 다큐를
만들려고 준비를 했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가 알아낸
중요한 사실은 청소년들이 죽음을 결심할 때 아주 확실한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었다 청소년 자살에서 투신자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어느 과학고등학교에서
여고생이 투신자살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죽음의 이유를 캐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좋은 다큐를 만들겠다는 내 결심은 공수표(空手票)가 되어
멀리멀리 날아갔다 아주 가끔, 나는 그 여고생이 왜 죽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살아있는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많은 죽음이 어스름 저녁놀처럼 금세 잊혀진다
죽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다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그들은
다른 길을 향해서 걸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부서지고
잃어버리고 병들고 시간에 뒤틀린 다리를 질질 끌면서 묻는다
살아있어서 행복한가? 다른 길이 낫다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어차피 죽음은 뚜벅뚜벅 다가온다 죽음을 향해 더 빨리 달려가지
않겠다고 자그맣게 되뇌면서, 오늘도 옥상에서 바람의 방향을
가만히 가늠하는 너에게 다른 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