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 밑의 욕망 범우희곡선 19
유진 오닐 지음, 신정옥 옮김 / 범우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신의 명령을 받고 지상에 내려온 천사가 나온다.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답을 찾으러 온다. 천사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으며, 타인에 대한 사랑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유진 오닐은 그에 대한 답을 다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욕망들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으며, 그것이 삶의 고통의 근원이 된다. 결국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오닐이 가진 인간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농장의 상속을 두고 아버지 캐버트와 아들 에벤, 캐버트의 새아내 에비가 벌이는 암투는 지극히 속물적이다. 물질에 대한 탐욕과 함께 이들이 또한 사로잡힌 욕망은 성욕이다. 젊은 아내 에비에 대한 캐버트의 욕망, 에비와 에벤의 헤어날 수 없는 육체적 관계는 아이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비극을 향해 달음질쳐간다. 오닐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이러한 욕망은 인간이간 존재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오닐은 여기에 캐버트의 신앙심을 하나 더 끼워넣는다. 농장을 위해 아내와 자식들을 일꾼처럼 마구 부려먹는 무정한 아버지인 그이지만 신의 존재는 거역할 수 없는 삶의 명제와도 같다. 캐버트는 신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에 대한 믿음은 도덕적이고 선량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신앙심은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캐버트가 보여주는 종교적 열정은 캐버트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집안에 드리운 비극의 그림자를 막아내지 못한다. 이렇듯 이 작품에 드러난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냉소와 부정은 미국 사회의 도덕적 근원에 대한 회의로까지 읽힌다. 

  

  과연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오닐은 인간의 욕망이 불러오는 비극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추한 존재일까? 어쩌면 그것은 추하다기 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제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인간이며, 삶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진창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오닐은 〈느릅나무 밑의 욕망〉의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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