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놀이터


조그만 계집아이는
신나서 튕겨 나갈 듯
그네에 몸을 매달고
그 옆의 배 나온
애비는 느릿느릿
자신의 그네로
반원(半圓)을 연주한다

이제 자식이 옆에 없는
늙은 남자는 희고 마른
강아지 한 마리를 벤치에
풀어놓고 휴대전화에 외로운
얼굴을 조용히 묻는다
 
건너편 아파트 입구
붉은 빛줄기 번득이며
구급차가 누군가를 실으려고
대기 중이다 어슬렁어슬렁
회색의 어린 고양이가
그 옆을 지나간다 며칠 전
한밤중에 으스러지게 짝을
불러대던 그 녀석이었을까

구급차는 아무도 태우지
않고 떠났다 짐짓 좋은
애비노릇하느라 지친
남자는 계집아이를
달래어 집으로 갔다

밤 9시, 정신이 가출해버린
애새끼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놀이터를 휘젓는다 아무도 미친
아이들을 탓하지 않으며
놀이터는 자비롭게
꾸벅꾸벅 졸음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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