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슬리퍼
족저근막염에 시달린지 벌써
7개월째이다 8년 전에 사놓은
비치 슬리퍼가 없었다면 내
오른발바닥은 진작에 닳아져
버렸을 것이다 이 기적의
슬리퍼는 뒤꿈치가 좀 꺼진
것 빼고는 멀쩡하다 그래도
한 켤레 더 사두어야지 생각
했다 주문한 슬리퍼가 오길
기다리는데 이상하다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슬리퍼는 어디
에도 없다 택배기사는 사흘째
슬리퍼를 수소문하러 다니고
있다 어느 집구석에서 내가
주문한 파란색 비치 슬리퍼를
신고 있는 걸까 아니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고작 1만 원
짜리 남의 슬리퍼를 훔쳐서
신고 다닌단 말인가 앞으로
이 동네에서 그 퍼렁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인간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봐야지
오늘따라 아픈 발바닥이 더
아프다 잃어버린 슬리퍼보다
양심을 잃어버린 이에 대한
역겨움이 신물처럼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