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노동자 Ray Salyer는 이제 막 Bowery에 도착했다. 뉴욕의 맨해튼 Lower East Side에 자리한 그 거리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샐리어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술꾼 Gorman Hendricks와 술집으로 들어선다. 술에 취한 샐리어는 그날 밤에 거리에서 쓰러져 잠든다. 헨드릭스는 샐리어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헌옷이 든 가방을 몰래 훔친다. 돈 한 푼 없는 샐리어, 그는 막노동해서 번 돈을 또다시 술집에서 탕진한다. 그들의 삶은 Bowery라는 거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Lionel Rogosin(1924-2000) 감독의 다큐멘터리 'On the Bowery(1956)'는 알콜 중독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술꾼들은 끊임없이 지껄이며, 계속해서 술을 들이킨다. 술집 안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지낸다. 때로 술기운에 예기치 못한 주먹다짐이 이어지기도 한다. 술꾼들 가운데에는 여자들도 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은 많은 술꾼의 숙소는 당연히 길바닥이다. 노숙의 삶. 길에서 자고 일어난 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해장술을 들이킨다. 로고신의 카메라는 매우 건조하게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가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길거리 술꾼들의 얼굴은 가난과 무기력으로 채워져 있다.

  로고신은 뉴욕의 대표적 빈민가 Bowery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곳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사실 'On the Bowery'를 순전한 다큐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다큐 속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인 샐리어와 헨드릭스는 로고신이 다큐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진짜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로고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Bowery 거리의 삶을 그려낸다. 돈이 떨어진 샐리어가 끼니와 잠자리를 의탁하게 되는 교회는 실제 Bowery에 자리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술집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Bowery에는 교회와 자선단체도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누군가 커다란 포부를 안고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술꾼들의 무덤인 이곳에서 삶을 마감합니다(...who started out with a life ambition
to end up in a drunkard's grave)."

  목사는 술꾼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뼈아픈 일장 연설을 한다. 그 말을 귀에 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따뜻한 수프 한 그릇, 신문지로 깔아놓은 콘크리트 바닥의 잠자리가 간절할 뿐이다. 그곳에서 잠을 청하던 샐리어는 술 생각이 간절해져서 다시 거리로 나선다. 중독된 삶. 그가 아침에 앉아있는 곳도 술집이다. 샐리어는 헨드릭스가 권하는 술을 힘겹게 거절한다. 그러면서 시카고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한다. 헨드릭스는 샐리어에게 여비에 보태쓰라며 돈 몇 푼을 건넨다. 과연 샐리어는 그 거리를 떠날 수 있을까?

  "내가 자네에게 한마디 하지. 그는 꼭 다시 돌아올 거야(Let me tell you something... He'll be back)."

  헨드릭스가 동료 술꾼들에게 샐리어의 행운을 바란다고 말하자, 술꾼 하나가 헨드릭스에게 그렇게 말한다. 다큐는 샐리어가 Bowery 거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모습으로 끝난다. 샐리어는 다큐 개봉 후, 멀끔한 외모의 그를 눈여겨본 할리우드 제작사의 권유도 뿌리쳤다. 그리고 결국 그가 죽게 된 곳은 거리였다. 술꾼의 예언대로 샐리어는 1963년에 알코올 중독으로 삶을 마감했다. 헨드릭스는 그보다 더 빨리, 'On the Bowery'가 개봉하기 직전에 죽었다. 로고신은 그의 장례식을 직접 챙겼다(출처: en.wikipedia.org).

  'On the Bowery'는 로고신이 만든 통렬한 영상사회학적 보고서이다. Bowery는 남북 전쟁 이후, 주점과 매음굴이 자리한 하층민들의 주거지가 되었다. 거리를 좀 더 나은 곳으로 개조하려는 사회적인 압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로고신이 다큐를 찍을 무렵에 그곳은 알코올 중독자들과 노숙자들의 성지였다. 오늘날, Bowery는 고급 화랑과 고급 주거지가 자리한 거리로 탈바꿈했다. 그 거리를 채웠던 술꾼들과 빈민들, 노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뉴욕의 Bowery는 미국 사회의 수치였다. 한편으로 그곳은 냉혹한 자본주의의 이면이기도 하다. 로고신은 가난한 이들이 왜 빈곤과 중독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악순환의 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감독 라이오넬 로고신은 자신의 영화로 당대의 불의에 저항하고자 했다. 로고신은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기 재산을 다큐 제작에 쏟아부었다. 극영화인 'Come Back, Africa(1959)'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로 고통받는 남아공 흑인들의 삶을 담았다. 'Good Times, Wonderful Times(1965)'에서 로고신은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로고신은 런던의 칵테일파티에서 노닥거리는 부유층의 행태를 자신이 직접 수집한 전쟁과 학살의 기록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Black Roots(1970)'는 재즈 음악 속에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녹여냈다. 로고신의 'On the Bowery'는 행동하는 지식인, 영화인으로 살아가고자 한 감독 자신의 출사표인 셈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