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시


시가 쉽게 쓰여지는 건
부끄러운 일인가

시에 목숨 걸다가
아프고
미쳐서
그저 목숨줄이나 연명하는데
더러는
굶어 죽기도 하지

그래도
오늘은 뭐 쓰지

엄마에게
김밥을 드렸다

성의 없는 계란 쪼가리
잘게 바수어진 당근
그리고 싸구려 햄 조각

네가 말은 거니

아뇨
새로 나온 냉동 김밥이요

개당 4천 원짜리 이 김밥은
그 맛있는 꼬다리가 없이
매우 단정하게
단 9개의 김밥만 있을 뿐이다

나는 김밥 공장에서
어디론가 가버렸을
김밥 꼬다리를 생각해 본다
엄마가 젊은 날 산처럼 말았던
그 많은 김밥도

이제 기억의 끈을 놓아버린
엄마는
당신이 하루 종일 굶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김밥 한 줄
따뜻한 물
단감 하나

게으른 식탁
게으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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