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파트, 풍경
단지 사이의 도로 가장자리
거긴 야쿠르트 여자의 지정석이다
여자에겐 단골손님이 참 많다
그거 2개만 줘
젊은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중년의 야쿠르트 여자에게 반말투로 말한다
친한 사이인가
야쿠르트를 사는 손님 가운데에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여자도 있다
나는 그 여자를 15년 동안 보아왔다
오른쪽이 마비된 여자는 해마다
조금씩 기력이 쇠하고 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
힘들게 다리를 끌며 걸어가는 여자를
나는 본다
올겨울은
유독 흐린날이 많았다
나는 한적한 놀이터를 지나간다
놀이터 가장자리의 도로반사경에
나이든 여자의 얼굴이
둥글게 부푼다
저런 못생긴 얼굴이
나일 리 없어
생기 없이 늙어버린
시간은 공평하고
잔혹하고
슬프다
올해는
이 아파트를 떠나야지
너무 오래 이곳에 살았다
미친 듯이 짖어대는 큰 개들
화단에 널브러진 개똥들
싸고
깨끗하고
좋은 집은
어디에도 없어
오늘은 두 집이나 이사한다
손 없는 날인가
올해는 정말 떠야지
근처엔 놀이터가 없어야 하고
윗집엔 애들이 없어야 하고
같은 라인엔 개를 키우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회색 하늘 위로
백일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