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untlet(1977)'이라는 영화가 있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피닉스시의 경찰 쇼클리(Clint Eastwood 분)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증인을 호송해 오라는 임무를 떠맡는다. 쇼클리가 호송해야 할 증인은 '몰리'라는 이름의 창녀(Sondra Locke 분)이다. 쇼클리는 그냥 몰리를 차에 태워서 피닉스시에 데리고 오면 되는 가벼운 임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몰리를 죽이려는 어떤 이들이 있다. 몰리가 고위 관료의 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리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여정에 나선 쇼클리. 과연 몰리는 재판정에서 무사히 증인 선서를 할 수 있을까?

  영화 'The Gautlet'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펼쳐 보여준다. 영화는 당시 그와 실제 연인 사이이기도 했던 산드라 로크와의 관계도 일정 부분 겹친다. 영화의 마지막, 죽음의 위협을 뚫고 쇼클리와 몰리는 피닉스시에 도착한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시가지 양쪽에 도열한 무장 경찰차들이다. 쇼클리가 운전하는 버스가 들어서자, 버스는 엄청난 총알 세례를 받는다. 이 영화의 제목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형벌에서 따온 것이다. 벌을 받는 사람이 양쪽으로 도열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곤봉이나 채찍, 창과 같은 무기로 얻어맞는 형벌을 'Gauntlet'이라고 한다.

  나는 배우 이선균이 비극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서, 그것이 Gautlet과 같다고 생각했다. 유명 배우는 마약을 투약했다는 추문에 휩싸여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빛나던 배우는 초췌한 모습으로 수사 기관의 포토 라인 앞에 섰다. 거듭된 마약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음에도, 이선균에 대한 경찰의 조사는 집요하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온갖 소문과 대중의 비난, 수사 과정에서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배우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만약 이선균이 유명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경찰은 그를 포토 라인에 세웠을까? 경찰 수사를 받는 동안 이선균은 포토 라인에 3번이나 섰다. 수사와 관련된 소식은 마치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떡밥처럼 언론에 제공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이선균은 마약 투약자이고, 유흥업소에 출입한 문란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배우가 그러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비치는 자체가 엄청난 추락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피의자도 피의 사실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피의사실공표죄(被疑事實公表罪)'는 형법 126조에 따라 검찰·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감독, 또는 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공판 청구) 전에 공표하는 죄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한 것으로, 수사 중이거나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부당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출처: ko.wikipedia.org). 피의사실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사실공표죄는 대중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는 믿음에 의해 거의 사문법으로 전락했다.

  배우 이선균을 둘러싼 수사 기관의 행태는 대놓고 망신 주기와 조리돌림일 뿐이다. 결국 수치심과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 배우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났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견뎠어야지. 비슷한 시기에 마약 투약 혐의로 소환되어 조사받은 '지드래곤'은 멀쩡히 잘살고 있지 않냐고.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한 사람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심리적 압박감과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선균의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일은 과연 공공의 이익에 부합했는가? 왜 그 시점에서 유명 배우와 인기 가수의 마약 혐의 사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었을까? 어떤 정치적 사건과 논란으로부터 대중의 눈길을 돌리게 하기 위해 눈요깃감 기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레드 헤링(Red Herring). 이 영어 단어의 관용적 의미는 주요한 논점과 관심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장치를 뜻한다. 격변의 한국 정치사에서 레드 헤링은 선거철만 되면 터지곤 했던 북한과 간첩 관련 소식이었다.

  배우 이선균은 그렇게 레드 헤링이 되었다. 수사 기관은 그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인간적 존엄성은 막장 언론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발가벗겨졌고, 무참하게 뜯어먹혔다. 그는 강요된 Gauntlet을 치러내야만 했다. 그가 그 형벌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Gautlet의 당사자는 죽음을 택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재능있는 배우를 더는 볼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을 잃었고, 두 아이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한 배우의 죽음은 지금 이 나라의 법과 상식이 망가졌음을 입증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배우 이선균의 명복을 빈다. 

    

    
*영화 'The Gauntlet(1977)'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gauntlet1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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