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그렇게 꿈을 꾸고 나면 매일 쓰는 일기에 기록을 해둔다. 내가 꾸는 꿈들 가운데 사실 기분 좋은 꿈은 별로 없다. 대개는 꿈에서 깼을 때, 기분이 나쁜 꿈이 많다. 좀 신기하게도 그런 안 좋은 꿈은 그날이 아니더라도 며칠이 지난 후에 꿈땜을 하는 수가 있다. 누구와 다툰다거나, 기분 상하는 일이 있다거나, 작게나마 다치는 일이 있다든가 하는 것들. 12월 들어서 내가 쓴 일기들을 살펴보니, 연달아 악몽을 꾸어서 그걸 적어놓았다. 안좋은 꿈을 꾸면,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조심하는 게 좋아요. 내가 가끔 들러서 살펴보는 젊은 무당의 유튜브 채널에서 들은 말이다.
그렇다면 안 좋은 꿈의 기준은 뭘까? 나의 경우엔 꿈에서 깼을 때, 기분이 나쁘면 안 좋은 꿈이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생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꿈의 이미지도 있다. '반복몽(recurring dream)'이 그것이다. 이 항목에 대한 영문 wikipedia를 읽어보면 반복몽에 대한 다양한 예시들이 나온다. 거기에는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꿈도 있다. 나에게 화장실 꿈은 기분 나쁜 반복몽이다. 최근에는 화장실에 물이 들어차는 꿈을 꾸었다. 역시 안 좋은 꿈이다. 그리고 오늘, 그 꿈에 대한 꿈땜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기분이 상당히 더럽다.
11월에는 아주 흥미로운 꿈을 꾸었다. 꿈에서 임영웅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악수를 하는 꿈이었다. 현실의 나는 임영웅의 팬이 아니다. 참으로 희한한 꿈이었다. 아마도 콘서트장이었나, 임영웅이 나를 알아보고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꿈에 나오는 건 좋은 꿈 같은데... 막내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정말 좋은 꿈 같다. 네가 이 꿈 사라. 혹시 아냐? 내년에 회사에서 승진할지 모르잖아. 내가 30만 원만 받을게."
"돈 없어."
동생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아휴, 저 바보. 이게 얼마나 좋은 꿈인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2023년 5월에 임영웅과 대화하는 꿈을 꾸고 20억 복권에 당첨된 모녀에 대한 기사도 있다. 나도 복권을 사야 할까? 그런데 나는 이제까지 복권이란 건 사본 적이 없다. 좋은 꿈을 꾸었다고 딱히 복권을 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나마 동생한테 꿈을 팔아 소소한 용돈이라도 마련할 수 있나 했는데 글렀다. 그냥 그 꿈은 먹다 남은 위스키를 keeping 해두듯, 그냥 내 꿈의 창고에 넣어두어야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꿈에도 유효기간이란 게 있나? 11월에 꾼 좋은 꿈이 효과가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 경험상, 기분 나쁜 꿈은 대개 열흘 안팎으로 뭔가 사달이 난다. 그런데 임영웅 꿈은 꿈을 꾼 지 1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런 경사(?)스러운 일이 없다. 아마도 내가 임영웅의 찐팬이 아니라서 효과가 없는 모양인가 보다, 뭐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래전, 소설 창작 수업을 강의했던 작가 선생에게 길몽은 '똥 꿈'이었다. 선생은 자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큰 상금이 걸린 공모전에 입상할 때마다 '똥 꿈'을 꾸었노라고 말해주었다. '똥 꿈'이라니... 언젠가 복권 당첨자들의 꿈을 분석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도 '똥 꿈'이 나오기는 한다. 그런 걸 보면, 사람마다 꿈에서 재현되는 길몽과 흉몽의 이미지들이 참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12월 들어서 꾼 안 좋은 꿈들의 꿈땜은 오늘로 끝났으면 싶다. 예전에는 그렇게 꿈땜을 하고 나면, 참 재수가 없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만하길 다행이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뭔가 안좋은 기운들이 서로 부딪혀 삐걱거리며 소리를 낸다고나 할까? 때로 그런 불협화음을 들으며 사는 일도 우리 삶의 일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