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어를 독학한 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중국어는 '성조(聲調)'라는 독특한 언어 구조 때문에 처음부터 독학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나는 대학 시절에 교양 과목으로 중국어를 1년 정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나마 독학하기가 좀 쉬웠다. 중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이런저런 앱들을 써보고 지우기를 여러 번, 그러다 이제는 중국어 단어를 공부할 수 있는 앱과 문장을 공부할 수 있는 앱, 그렇게 2개만 쓴다.

  문장을 공부할 수 있는 앱의 구성은 이러하다. 초급과 중급, 고급으로 단계가 나뉘어져 있고, 그 단계마다 수준에 맞는 지문을 보여준다. 전부 다 무료는 아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지문은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은 유료이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지문은 1주일 정도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점은 좋다. 그래서 나는 2년 동안 돈 한 푼 안 쓰고 무료 콘텐츠로도 잘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앱에서 제시되는 지문 가운데 상당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삼국지와 같은 고전부터 시작해서 오 헨리의 단편선도 나온다. 거기에는 내가 잘 모르는 현대 단편 소설도 있는데, 중국과 일본의 작가들이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초반부부터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그 뒤의 이야기를 항상 궁금해지게 만든다. 물론 무료로 볼 수 있는 회차는 2회 정도로 그치고, 그 이후에는 유료 구독자만 볼 수 있다. 나는 어떨 때는 후속편을 읽고 싶어서, 앱 결제를 하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앱은 꽤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 한 달에 만 원 꼴이다. 내 기준으로는 그건 좀 비싸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 혼자 그 후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곤 한다. 내가 이 글의 작가라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 것인가, 하고.

  최근에 이 앱에 올라온 이야기는 중국의 작가가 쓴 소설 같았다. 제목은 '큰 개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는 말 그대로 아주 덩치가 큰 개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버스 정류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큰 개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그 개는 떠돌이 개였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정류장. 아주 초라하고 지친 행색의 남자가 버스에서 내린다. 이 남자는 매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개는 언제부터인가 이 남자를 따르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사는 소녀는 그 개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소녀는 남자에게 말했다.

  "내 생각엔... 이 커다란 개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개를 집에 데려가세요."

  남자는 그저 매일 매일이 고단하고 힘들었다. 저 개가 나를 좋아하다니. 남자는 개한테 관심을 줄 여력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늦은 밤에 버스에서 내린 남자는 졸음이 너무 쏟아진 나머지 정류장에서 잠들고 말았다. 새벽에 지나가던 행인이 남자를 깨웠다.

  "이봐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큰일 나요. 얼어 죽는다구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요."

  남자는 잠에서 깼지만, 자신이 하나도 춥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곁에는 큰 개가 잠들어 있었다. 그 개의 온기 덕분에 남자는 그 추운 겨울밤을 잘 넘길 수 있었다. 남자는 이제 큰 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너무나도 가난하단다. 집은 허물어질 것 같고, 먹는 것도 변변찮아. 난 아내와 자식이 있는 따뜻한 가정도 없지. 매일 매일 그저 힘들게 벌어 먹고살 뿐이야. 그런데도 너, 나와 함께 가겠니?"

  무료로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바로 거기에서 끝나버린다. 나는 그 회차를 아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물론 중국어 공부를 위해서였지만, 그 이야기 자체로도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터였다. 나는 그 소설의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는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얼마 전 나는 신춘문예 공모에 내 소설을 보냈다. 그런 다음에 최근 몇 년동안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훑어보았다. 문장은 너무나도 짧았다. 서사는 불명확했다. 서사 자체가 실종된 것도 있었다. 그 당선작들은 기존에 내가 읽고 알던 소설에 대한 정의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세대의 소설을 읽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내가 읽었던 한국 소설 작가는 '김애란'에서 멈춰있었다. 김애란의 글까지는 그래도 잘 읽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 뒤에 나온 젊은 작가들과 평론가, 그들이 만들어 낸 한국 문단의 지형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모양이었다.

  나에게 있어, 글이란 서사, 즉 이야기가 주가 된 벽돌로 단단히 쌓아 올려진 집이다.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하다. 이야기에 기대지 않는 소설을 나는 생각할 수가 없다. 등장인물이 있고, 그들이 서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 그것이 가진 힘이 내가 아는 소설의 근원이었다. '큰 개 이야기'에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남자와 떠돌이 개가 나온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 큰 개가 남자를 따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남자와 떠돌이 개는 함께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 뒤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 나는 유료 결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 내 머릿속에서 남자와 개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비극적 결말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된 정서가 독자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그런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새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돈이 되는 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을 쓰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내 글을 알아주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