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쓰던 전기장판이 고장 났다. 전기장판이 고장 난 것인지, 아니면 온도조절기가 고장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용한 지 1년이 지난 제품이라 무상으로 수리할 수도 없었다. 제조사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니, 그걸 수리하려면 오직 본사로만 택배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택배를 보내어서 수리를 맡기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대신에 외산 전기장판을 하나 샀다. 이전 전기장판 회사의 제품은 이미 2개나 고장이 난 상태였다.

  외산 전기장판은 그럭저럭 별문제 없이 쓰고 있기는 한데, 장판의 열이 너무 미적지근하게 들어온다. 서양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이라 그런 모양이다. 서구인은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의 언어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냉기만 겨우 피할 요량으로 만들어진 듯한 외산 전기요는 조절기의 제일 높은 온도인 6번으로 맞추어 놓아도 그다지 따뜻하지 않다. 적어도 이 전기장판을 깔고 자다가 화재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문득, 그 고장 난 전기요를 다시 고쳐서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어차피 제조사에 보내도 수리 비용과 택배비가 드니까, 동네 전파사 같은 데에 맡겨도 좋을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내가 사는 동네 근방에 '전파사'는 없었다. 조명 가게는 몇 군데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조명 공사만 하지, 이런 소소한 전기 제품 수리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전파사'라는 이름의 간판을 길 가다가 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그 많은 전파사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예전에는 유명 메이커의 대형 가전을 제외하고는 라디오나 커피포트, 전기밥솥 같은 제품은 동네 전파사에서 고쳐서 썼다. 수리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전파사는 대부분 협소한 공간에, 수리할 수 있는 작은 책상이 가게 전면에 자리했다. 벽면과 가게 안쪽에는 마치 고물처럼 보이는 각양각색의 전자 제품과 그 부품들이 있었다. 고장 난 전기 제품을 가져다주면 주인아저씨는 대략 며칠이 걸릴 것이며, 수리비는 얼마가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서 가게를 찾아가면 잘 고쳐진 물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웬만한 소형 가전은 'Made in China' 제품으로, 단지 우리나라 가전회사의 이름으로만 판매될 뿐이다. 그 내구성이라는 것은 예전 국산 제조사들에 비한다면 한참 뒤떨어진다. 작년 겨울에 내가 구입한 석영관 히터가 그렇다. 사용한 지 3개월 만에 2단짜리 석영관 히터가 고장 나버렸다. 무상 수리 기간이 남아있어서 고쳐 쓰려고 알아보니, 그 회사의 서비스 센터는 평일에만 운영한다고 했다. 평일에 시간 내어 가기가 어려워서, 어쩌다 보니 어느새 무상 수리 기한을 넘겨버렸다. 나는 그 석영관 히터를 버릴 생각이다.

  대부분 중국산인 석영관 히터는 저렴한 가격만큼 수명이 매우 짧다. 그런 사실을 나는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다. 고쳐 쓴다 해도 몇 달 만에 저가 석영관은 또다시 펑, 하는 소리와 고장이 날 것이다. 해마다 이렇게 버려지는 석영관 히터가 얼마나 많을까? 그야말로 그런 소형 가전 제품들은 전자 쓰레기를 양산하는 주범일 뿐이다. 소비자들도 그런 제품이 고장났을 때, 비용을 들여 고쳐서 쓰기보다는 버리고 새로 산다. 전파사가 사라진 데에는 그런 이유도 한몫할 것이다. 전파사 주인들의 일감이 되어야 할 전자 제품은 재활용품 수거업자의 야적장에 쌓여있다. 우리 삶의 풍경 속에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재래시장 입구 건물 2층에는 '전당포' 간판이 아직도 걸려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과연 저곳이 아직도 영업하는지 궁금해진다. 요새 사람들은 무얼 갖다 맡기고 그곳에서 돈을 꾸어갈까? 궁핍함은 언제나 사람들을 괴롭히니까 어쩌면 전당포는 전파사보다는 더 오래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엊그제는 책상 스탠드 전등이 고장 나서 버렸다. 무려 30년 전에 제조된 제품이다. 인버터 스탠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만들어진 이 제품은 전등 부품이 일제였다. 스탠드의 몸체는 매우 견고한 철재로 제작되어 있어서 무게가 꽤 나갔다. 내가 그걸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그걸 가져갔다. 고철로 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2만 원짜리 LED 스탠드를 주문했다. 가벼운 알루미늄 몸체에 장착된 기다란 LED 전구는 교체가 되지 않는 제품이다. 그러니까 이 전기 스탠드는 쓰다가 전등이 나가면 버려야 한다. 지금의 시대에 물건을 고쳐쓰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 고장 나면 빠르게 버려야만 하는 시대. 전파사는 이 시대 너머의 먼 곳에서 그렇게 잊혀진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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