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영웅은 정말 자기 객관화를 못 하나 봐요. 아니, 콘서트를 열려면 드넓은 평야에서 하든가 해야지. 그런 작은 콘서트장이 웬 말이랍니까." 

  누군가 임영웅 콘서트 티켓 예매에 실패하고는, 그렇게 인터넷 댓글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기 객관화를 못 한다라는 말은, 자신의 공연을 보려는 관객 수를 너무 적게 가늠했다는 뜻이다. 전 국민 효도 테스트. 임영웅 티켓 예매와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이 가수의 팬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솔직히 나는 트로트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가수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엄청난 인기-그것이 중장년층에 한정된다 해도-를 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트로트 가수를 넘어서 어르신들의 아이돌이 되어버렸다. 가수로서 노래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감이 가는 외모도 임영웅의 인기에 한몫한다. 하지만 이 가수가 구축한 견고한 팬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는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가수로서 성공하기까지의 '서사'이다. '영웅'이라는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그 이름은 예명이 아닌 본명이다. 어떤 면에서 이 가수의 성공 신화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 말한 '영웅의 서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임영웅은 아주 어린 시절에 부친을 사고로 잃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한 그에게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가수의 꿈을 가지고, 무명 가수로서 지낸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그는 케이블 TV 방송국의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매주 펼쳐지는 노래 경연에서 시청자들은 가수 개개인들이 살아온 삶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째 쟤들은 하나같이 다 힘들게 살았나 모르겠다. 저런 데라도 나와서 정말 다 잘되었으면 싶어."

  임영웅이 나온 '내일은 미스터 트롯' 경연을 보고, 나의 모친은 그런 말을 하셨다. 임영웅뿐만 아니라 최종 경연에 오른 다른 참가자들 모두에게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 낸 과거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 제작진은 그런 참가자들의 개인사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잘 포장할 줄 알았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 기존의 노래 경연 대회와 달랐던 점은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잘 다듬어진 참가자들 각각의 서사는 경연이 진행될수록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덤으로 이어졌다. 그 가수들의 과거는 참으로 불운했지만, 이제는 그 어려움을 딛고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간절한 소망 말이다.

  그러한 팬덤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에 내재된 계층적 단절과 소외에 대한 은유도 자리한다. 트로트 장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는 대부분 해방 이후에 나고 자란 중장년층 사람들이다. 그 세대의 젊은 날은 모두가 가진 것 없이 힘들게 견뎌낸 가난, 번듯한 삶에 대한 성공의 열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중산층에 진입했을까? 1970년대의 개발독재, 1980년대의 부동산 투기 열풍을 지나면서 그 과실을 수확한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에서 계층 상승의 욕망을 실현하기는 어려워졌다. 1990년대 IMF 사태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의 계층적 유동성은 점점 더 작아졌다.

  이제 그 시대를 거쳐온 세대는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좌절된 계층적 욕망을 새로운 세대의 가수들에게 투사한다. 그 가수들 가운데 중산층 출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편모슬하, 조실부모, 가난, 오랜 무명 시절... 이러한 굴곡진 개인사는 가수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재능이 있음에도 단지 '불운'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이 가수들의 노래를 열심히 듣고 응원한다면 이들에게는 새로운 앞날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트로트 경연 대회 참가 가수는 인기 가수 ***가 아닌 우리 ***가 된다. 임영웅의 어르신 팬들은 그를 '우리 영웅이'라고 지칭한다. 그들에게 있어 임영웅의 노래는 힘들었던 삶에 대한 위로이자, 팍팍한 현실에서의 활력소가 된다. 어쩌면 임영웅의 팬들은 트로트 경연대회의 시청을 시작으로 임영웅의 '영웅 서사'를 함께 만들어 온 공동의 창작자일지도 모른다. 조지프 캠벨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화 속 영웅이 마주하게 되는 고난과 시련, 조력자의 등장, 귀환에 이르는 일련의 여정을 형상화했다. 그 신화 속의 영웅과 가수 임영웅이 다른 점이 있다면, 임영웅은 친근한 이웃집 청년, 집안의 막내아들과도 같은 평범함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평범함은 역설적으로 임영웅에 대한 거대한 팬덤과 직결된다. 이 가수에게 있어 팬들은 무수한 어머니, 아버지가 된다. 확장된 가족 공동체로서 임영웅의 팬덤에 내재된 연대감, 소속감은 매우 끈끈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임영웅의 '영웅 서사'적 팬덤과는 별개로, 나는 그가 가수로서 성취한 대중음악적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품는다. 분명, 임영웅이 가진 세련된 창법은 트로트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손쉽게 해체해 버린다.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곡하고, 그 노래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낸다는 점도 가수 임영웅이 가진 장점이다. 어쩌면 임영웅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과, 자신에게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트로트 사이에서 그럭저럭 줄타기를 잘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흘러간 가수들의 트로트 노래를 재발견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새롭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그의 노래에는 확실한 '빛깔'이 없다. 트로트 경연 대회 우승자로서의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그가 '돈 잘 버는 성공한 트로트 가수'에서 '독창적인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가수'로 나아가는 것. 어떤 의미에서 그 길이 가수 임영웅이 진정한 '영웅 서사'를 완성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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