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비싼 사탕이 아니냐?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사탕 참 맛있구나. 엄마 어렸을 적엔 이런 사탕이 어딨어? 명절 때나 친척 어른들이 용돈 좀 주면 그걸로 뭘 사먹을 수 있었지. 동네 문방구에 가면 커다란 유리병에 눈깔사탕이 잔뜩 들어있었어. 그거 한 봉다리 사와서 조금씩 아껴먹었더랬지. 사탕이 얼마나 큰지 입에 넣으면 아주 오랫동안 먹을 수 있었거든. 그거 먹고 있으면 애들이 엄청 부러워했어. 애들은 조금만 떼어주라고 막 조르고 난리야. 그럼 사탕을 콱 깨물어서 조각을 내. 그걸 친한 애들한테 나눠주는 거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비위생적이냐. 그런데 그땐 그게 더럽다는 생각도 못했어. 그냥 사탕 얻어먹을 수 있어서 애들이 좋아했더랬지.

  모든 게 다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사탕보다 더 귀했던 건 껌이었어. 애들 중에 누가 껌을 씹고 있으면 가서 그러는 거야. 나도 좀 줘. 그럼 씹던 껌을 조금씩 떼어서 주곤 했지. 남이 씹던 껌 나눠 씹으면서도 애들이 다들 즐거워했어. 원래 껌이 색색가지로 물이 들어있잖니. 근데 오래 씹으면 그 물이 다 빠지잖아. 그러면 어쩌는 줄 아냐? 크레파스로 껌에다 칠을 해서 씹었단다. 그렇게 몇 시간을 씹고 나서도 버리지 않아. 내 방의 벽에다 붙여놓고 다음날에도 또 씹었지. 아휴,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지했던 시대였지 뭐냐. 그래도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즐거운 추억이 많아.

  물론 가난한 애들은 무척 많았어. 고아원에서 학교 다니는 애들도 꽤 있었구. 걔들은 뭘 잘 못먹고 다녔던 것 같아. 엄마는 집에서 농사를 크게 지었으니까 먹고 사는 걱정은 안하고 살았지. 그래도 시내 애들하고는 사는 형편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 언젠가 한번 시내에 사는 애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어. 장사를 하는 집이었던 것 같은데 집이 꽤 잘 살았어. 걔네 집에서 뭘 차려줘서 밥을 먹고 왔는데, 밥상이 우리집하고는 다르더라. 생활 수준의 차이란 게 느껴지더라고. 어린 마음에도 뭔가 내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 아이하고는 더 가깝게 지내질 않았지. 거리감을 느껴서 그랬던 거 같아.

  여름만 되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있어.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아이스케키라고 들어봤니? 설탕 넣어 얼린 얼음 과자 말이다. 그걸 애들이 팔았거든. 체구는 조그만 애들이 지들 몸의 반만한 커다란 나무 상자를 어깨에 메고 다녔지. 그 애들은 학교도 안가고 그렇게 여름 한철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는 거야. 한여름 대낮이 좀 더우냐.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아이스케키 사요, 아이스케키'하고 외치는 거야. 애들 얼굴은 더위에 빨갛게 익어버리지.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 이야기 하면 마음이 좀 아파.

  오늘이 몇일이냐. 아이구, 벌써 그렇게 날이 되었구나. 그러니까 내일이 9월 1일이지. 오늘은 바람도 불고 날도 그렇게 덥지 않구나. 이제 여름도 다 가고 가을이 오겠구나. 좀 있으면 추석이네. 엄마 어렸을 적엔 추석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강강수월래를 했었어. 동네에 가장 잘 사는 집이 있었거든. 그 집 마당이 엄청 컸어. 거기 다들 모여서 명절날 저녁에 강강수월래도 하고 놀았어.

  그 집엔 엄마 친구도 살았어. 복순이라고. 정말이지 너무나도 착한 친구였어. 그렇게 마음씨 고운 애는 없었단다. 근데 그 친구 생각하니까 막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 왜 그러냐고? 걔가, 그러니까 복순이가... 중학생 때쯤에 복순이 귀가 멀어버리더라고. 그 때문에 고등학교도 못갔던 것 같아. 정말 착하고 좋은 애였는데. 어찌 그리 되었는지. 시집은 가서 잘 살았을까? 근데 엄마도 그 후 소식은 몰라.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아무튼 복순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슬퍼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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