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아줌마. 그 회사에서는 오래된 그런 명칭 보다는 '프레시 매니저'를 내세우는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옆 도로에는 그 프레시 매니저의 전동 카트가 오전과 오후, 정해진 시간대에 서있다. 요즘같이 더울 때에도 여자는 아침 나절에 잠깐, 그리고 오후 시간대에도 꽤 오랫동안 카트를 세우고 있었다. 우리 동네의 그 매니저에게는 중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 가방을 둘러멘 아이가 학교가 끝날 때쯤에 전동 카트를 찾아온 것을 나는 몇 번 보았다. 아이는 다소 퉁퉁한 체격의 엄마를 꼭 빼닮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매니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그 모자(母子)의 다정한 모습은 혈육지친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저렇게 엄마를 따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기도 했다. 일이 고단하기는 해도 저 여자는 아들을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겠구나. 나는 더운 여름날에 카트를 지키고 있는 여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도 엄마네 집에 들러서 엄마를 챙기고 돌아오는데, 전동 카트의 그 매니저와 아들이 보였다. 아이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오면서 여자에게 큰소리로 뭔가를 말하는듯 했다.

  나는 그제서야 아이가 좀 남다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 아이의 말하는 모습과 행동은 아이에게 지적 장애가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였다. 아이는 엄마 옆에 앉아있기 위해 어디선가 의자를 하나 구해온듯 했다. 여자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뜻밖의 풍경을 마주한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날카로운 돌조각이 콱, 하고 와서 박힌 것만 같았다. 

  그냥 아이가 좀 평범했더라면...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 여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결코 가늠할 수 없다. 때론 평범함에 대한 열망은 커다란 고통의 근원이 된다. 그것은 내 모친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 엄마가 치매 환자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난 3년은 그 슬픔과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형제가 끊임없이 타협해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타협의 시간이 끝나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매일의 일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나마 온전했던 엄마의 언어능력과 수리 능력은 마치 풍화되는 돌멩이처럼 닳아 없어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씨가 부러워요.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은 치매 모친을 보살피고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모친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뜨셨다. 보살핌이 필요한 늙은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 지인이 그런 엄마와 단 하루라도 지내본다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지인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엄마'라는 존재가 가지는 커다란 그늘이 어떠한 것인가를 자식이 온전히 깨닫기란 불가능하다. 어머니를 먼저 보낸 지인은 그 그늘에 대해 나에게 말한 것이다.

  이 블로그에 오는 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람의 모친은 치매를 앓고 있구나. 참 힘들겠네.'

  어떤 이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이런 생각도 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 부모는 치매 환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렇게 때로 타인의 고통은 얄팍한 자기 위안의 근거가 된다. 나 또한 이제껏 그런 위안을 찾은 적이 없노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그런 위안이 자기기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 사람이 짊어진 삶의 고통을 비교하는 일, 또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내 삶의 만족과 평안을 규정하는 일은 어리석음에 가깝다.

  내가 더이상 엄마가 치매가 아니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그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해지길 꿈꾸지 않을 것이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것. 그것은 인생의 불운과 고통을 마주하는 이들에게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여자가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이유를 나는 비로소 알 것도 같았다. 아이는 엄마의 카트를 찾아온 동네 할머니들 옆에서 웃으며 서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세상 속에서 잘 살아주길, 그 엄마가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작은 행복을 찾아내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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