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의 일이다. 앞 베란다에서 비린내가 진동했다. 문을 닫아도 스멀스멀 스며드는 비린내는 마침내 온 집안을 어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누군가 앞 베란다에서 생선 손질을 하면서 물을 쓰는 모양이었다. 원래 앞 베란다의 우수관은 빗물만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몇몇 세대에서는 그곳에 세탁기를 놓고 세탁을 했다. 더러는 개를 키우는 집에서 배설물을 내려보내는 일도 심심찮게 있는듯 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앞 베란다에서 개 배설물을 처리하지 말라고 자주 방송을 한다. 그런데 생선 비린내라니, 이건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그냥 하루 저러고 말겠지, 하고 나는 넘겨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지독한 비린내는 그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방송을 하던지 무슨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해보니, 우리 라인의 세대마다 전화를 해보기는 했단다. 아무튼 집안에 스며든 그 비린내가 사라지는 데에는 며칠이 걸렸다. 나는 생선과 같은 식재료를 부엌이 아닌 앞 베란다에서 손질하는 사람의 뇌구조가 참으로 궁금해졌다. 그 비린내 나는 물이 내려가는 아랫층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 입주민의 뻔뻔함과 무지가 역겨웠다.

  나는 아파트의 저층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흡연자의 담배 냄새 같은 불편은 일상이다. 밖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는 차라리 낫다. 지하 주차장과 이어진 우리 라인의 통로는 종종 너구리굴이 되곤 한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인간이 담배를 피우면서 가기 때문이다. 현관문으로 스며드는 담배 연기는 생각보다 독하다. 어떤 인간은 새벽 2시에 나와서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더운 여름밤에 열어놓은 창문을 조용히 닫는다.

  빌런들. 이 콘크리트 아파트에는 수시로 그런 빌런들이 출몰한다. 그러던 것이 엊그제는 신박한 빌런을 보았다. 마루에 앉아있던 나는 뭔가 약하게 쾅쾅하는 소리를 들었다. 앞 베란다 쪽 바로 아래의 잔디밭에서 나는 소리였다. 머리가 허연 늙은 남자가 골프채로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쾅쾅 소리는 그 인간이 스윙할 때 골프채가 철제 난간에 부딛히는 소리였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4시에 골프채의 성능이라도 시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골프연습장이나 필드에서 더 휘두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서 저러는 것인가? 그 인간이 스윙을 한번 할 때마다 잔디밭의 잔디가 패이면서 멀리 날아간다.    

  콘크리트 빌런의 대표적인 유형인 개 키우는 인간들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앞동에는 대형견을 키우는 집이 있다. 그 개는 그곳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들려도 컹컹거리면서 짖는다. 그 개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리는 따로 있다. 다른 개가 지나가는 소리이다. 그 대형견이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채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 개가 다른 강아지를 위협하기 위해서 한번 짖기 시작하면 상대편 개도 짖는다. 그렇게 엉키는 시끄러운 개소리를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다. 나는 그 개가 살고 있는 43평의 아파트가 대형견과 살아가기에 쾌적한 평수인가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문제는 평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은 개로 인해 주위의 입주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 나는 넓은 마당이 아닌, 콘크리트 집에 갇혀사는 개의 심정을 헤아려 보곤 한다. 아마도 답답해서 울분이 차오를듯도 하다.

  여름, 더운 낮에 애들이 놀이터에서 놀기는 힘들다. 그 아이들을 밤 9시, 10시에 데리고 나와서 노는 부모들도 있다. 누군가는 이제 자려고 하는 시간에 좀 조용히나 놀면 모른다. 신나서 악을 쓰고 놀이터를 헤집고 다녀도 그걸 흐뭇하게 쳐다본다. 나는 저 인간들 집의 아랫집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야밤의 놀이터 소음에 시달리는 나 보다는 기가 차고 분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밖에서 무슨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베란다 쪽을 바라보았다. 어디 윗집에서 새시 거치대에 내놓은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인지 물이 유리창 밖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빌런들의 뇌에는 '남들'과 '상식', '눈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콘크리트 정글에서 그렇게 빌런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좀 괴롭기는 해도 때로는 흥미롭다. 오늘은 어떤 콘크리트 빌런들이 나타날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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