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식이 몇 명인지 잘 모르겠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짧게 한숨을 쉰다.

  "엄마, 잘 생각해봐. 몇 명인 것 같아?"
  "세 명인 거 같은데, 어디 다른 데에 또 한 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젠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그냥 웃어넘긴다. 그럴 때 나는 자식들 생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는 그 생일들을 다 정확하게 말해본 적이 없다. 때로는 당신의 생일도 기억을 못하기도 한다. 엄마의 기억력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며칠 전, 엄마에게 온 우편물을 들여다 보다가 건강보험 공단에서 온 것을 발견했다. 공단에서 보낸 우편물의 내용은 이러했다. ***님께서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셨는데, 그동안 이용실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필요하신 서비스가 있다면 이용하십시오... 엄마는 장기요양등급 5등급을 받으셨다. 치매 특별 등급으로도 불리는 이 등급에는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 서비스와 주간 보호 센터 이용 금액의 부분적인 국가 보조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엄마는 등급 판정을 받으신지 2년이 지나도록 그런 서비스를 신청해본 적이 없다. 엄마가 그걸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엄마의 집에 오는 것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센터에서 어울리는 것도 엄마는 다 싫다고 하신다.

  나는 오전에 엄마의 집에 들러서 산책도 시켜드리고, 학습 교재를 가지고 인지 학습도 함께 한다. 중간 중간 간식도 챙겨야 한다. 5월에는 엄마가 손목 골절로 수술을 하셨는데, 깁스를 다 풀은 지금은 손가락 재활 운동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손가락 재활 치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유튜브를 보고 손가락 재활에 필요한 동작들을 찾아보고 엄마에게 필요한 재활 운동을 해드린다. 그러니까 요즘의 나는 요양보호사, 인지치료사, 재활치료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엄마의 하루하루는 Delete 버튼만 작동하는 컴퓨터의 키보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말한 것, 누군가와 전화 통화한 일, 식사할 때의 반찬 등등,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일에 엄마는 매번 실패한다. 그저 '몰라', 라고만 답하실 뿐이다. 나는 엄마에게 농담 삼아 '몰라 여사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엄마, 맨날 모른다고만 말하면 어떡해? 좀 생각을 해봐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정말 생각이 안나는데? 그냥 머릿속이 하얘."

  요즘 나는 매일 엄마에게 자식이 몇 명인지, 자식들의 생일은 언제인지를 물어본다. 가끔은 엄마가 있지도 않은 자식에 대해서 말할 때가 있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자식이 한 명 더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자식이 한 명 더 있다면 지금 우리 형제가 나누어 지고 있는 짐이 좀 가벼워질까 생각해본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과 마음의 고통이 n분의 1로 딱 떨어지게 나눌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엄마의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게 되면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는 한데... 댁은 누구요?"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좀 많이 슬프겠지. 그래도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든지 적응하게 마련이다. 자식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자식의 존재를 말하는 엄마를 평온하게 바라보는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러져 가는 엄마의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수 밖에. 세상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 모두 힘내요, 파이팅!' 나는 그들에게 그딴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얼굴의 볼 수 있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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