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내 집의 거실에서 연예인 A가 미니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수구가 없다보니 세탁기의 물이 흘러나와 거실은 물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 A가 우리집에 머무르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군식구처럼 A는 턱하고 거실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A는 내가 싫어하는 연예인이다. 큰 덩치의 그는 다소 험한 인상의 사람이다. 나는 물바다가 된 거실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A에게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쨌든 그의 행짜를 두고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젠 우리집에서 머물 수 없어요. 그러니 짐 싸서 나가주면 좋겠어요."
"날더러 나가라고? 내가 왜?"
A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영 기분 나쁜 꿈은 그렇게 끝났다. 꿈에서 깨어서 생각을 해보니 어딘지 모르게 짚이는 데가 있었다. 오랫동안 나의 꿈에서 '집'은 나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였다. 무언가 신경쓰이는 일이나 걱정이 있으면 집과 관련한 꿈을 꾸곤 했다. 낡고 어수선하게 살림살이가 널브러진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출몰하곤 했다. 나는 그런 꿈을 편치 않은 내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다.
A가 나오는 그 꿈도 마찬가지다. 왜 내가 싫어하는 외부인이 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그곳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강하게 A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고작 말 몇마디를 했을 뿐이고, A는 내 말을 들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꿈에서 깬 뒤에 나는 그것이 아픈 내 몸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달 넘게 원인불명의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A는 침입자였고, 병마였다. 꿈에서 나는 A를 내쫓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2020년 9월에 방영된 클래스 e에서는 신화학자 고혜경이 출연해서 강의를 들려주었다. 콩쥐팥쥐, 빨간신, 나무꾼과 선녀 같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래동화를 중심으로 신화학, 심리학, 영성학적인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졌다. 나는 처음에는 좀 심드렁하게 들었더랬다. 그러다가 강의 중반부에 가서는 정말 재미있어서 끝까지 열심히 시청했었다. 그 강의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착취적인 연인에게 고통받은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예로 나왔다. 그 여성은 꿈에서 무서운 남자를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여성은 남자를 피하고 도망쳐 다녔다.
"그 남자가 누구겠어요? 현실에서 그 여성을 괴롭히는 연인이지요. 여자가 그 남자에게 겁먹고 얼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요. 꿈속에서라도 대항하고 싸워야 해요. 그래야지만 그 여성은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꿈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압도적인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게 저항하는 것이 의지적으로 가능할까? 신화학자가 일러준 조언이 나에게는 아주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 마음에 꽂혔다. 그 뒤로 나는 꿈에서 낯선 사람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거나 싸우게 될 때, 크게 소리를 내고 지지않으려고 했다. 놀랍게도 꿈에서도 인간의 의지가 발현되는 부분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오늘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진통제를 한무더기로 지어왔다. 도대체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의사는 먼저 찍은 곳과는 다른 부위의 MRI를 찍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게 다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얼마 전의 그 꿈대로라면 그냥 이 원인불명의 통증과 당분간 동거생활을 하는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또 다시 내 꿈속에서 A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든 A와 맞서서 그를 내 집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의사는 지금으로서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통증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아마도 이 의사에게 나는 골칫덩이 환자일지도 모른다. 의사가 이런저런 진통제를 쓰자고 하면 나는 싫다고 하고, 무슨 검사를 하자고 해도 버티다가 받는다. 의사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이 통증이 어쩌면 심리적인 것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독여야만 지금의 병이 좀 더 빨리 낫지 않을까 싶다. 내가 싫어하는 낯선 사람이 기거하는 꿈 속의 내 집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처진다. 한 달치의 약을 다 먹을 즈음에는 나를 괴롭히는 통증이 가실까? A가 없는 정갈한 거실에서 내가 편안히 쉬는 꿈을 꿀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