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1+1 세일 행사에서부터였다. 분쇄 원두 하나를 구매하면 판매 중인 분쇄 원두 상품 하나를 더 보내준다고 했다. 거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기는 했다. 판매자는 랜덤으로 보내주는 원두는 유통 기한이 촉박한 상품이라고 적어놓았다. 뭐 유통기한이 좀 촉박해도 두어 달 정도 남은 것이었다. 어, 이건 괜찮은데. 3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무료 배송이 되는지라, 나는 장바구니에 원두를 채워넣고 3만원을 넘겼다. 주문한 원두 상품은 4개, 어떤 분쇄 원두가 랜덤으로 올 것인지 약간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렸다.

  내가 택배 상자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 나름 총알 배송이었다. 택배 상자에는 8개의 원두가 차곡차곡 담아져 있었다. 그런데 랜덤으로 온 원두는 죄다 유통 기한이 가장 촉박한 제품이었다. 그보다 유통 기한이 조금 더 남은 걸 보내주어도 좋았을 텐데, 싶기는 했다. 그래도 원두 4개가 공짜로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걸 언제 다 먹지, 하는 생각도 잠시. 200g 짜리 8개의 원두 봉지가 다 비워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름에는 커피 내리기가 귀찮아서 그냥 원두 냉침으로 해서 먹는데, 이게 생각보다 원두 소모량이 꽤 많다. 1달이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원두를 구매할 때가 되었다.

  먼저 구매했던 세일 가격을 떠올리니, 다시 이 원두를 구매하는 것이 비싸게 생각되었다. 판매 가격은 이전의 정상가로 적혀있었고, 물론 1+1 행사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다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3개 이상을 사면 머그컵을 증정한다고 했다. 스*** 로고가 새겨진 하얀색의 머그컵은 꽤나 예쁘게 보였다. 그래, 머그컵 하나에 만원이라 퉁치면 그리 나쁜 선택도 아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 이번에도 원두 상품 4개를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머그컵이 하나 생겼다. 막상 그 머그컵을 받아보니 좀 실망스러웠다. 비매품의 이 머그컵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예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 컵을 찬장에 처박히게 만든 것은 '무거워서'였다. 그랬다. 컵은 나에게 무거웠다. 이걸 들고 커피를 마셨다가는 한 달 안에 내 손목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물론 좋은 도자기 컵은 원래 무겁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때 도자기 제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은품에 눈이 멀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흰색의 머그컵은 찬장의 장식품이 되었지만, 그래도 원두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이 원두를 사다먹기 전에는 대형 마트의 PB 상품인 원두를 구매했었다. 그걸 구매한 이유는 오로지 '가성비'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생두를 사다가 집에서 볶아 먹을 정도로 커피에 진심이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번거롭고 귀찮다. 커피맛이라는 게 커피 전문점의 그 비싼 기계로 고압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다 거기서 거기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원두 비싼 거 사봤자 집에서는 그 맛을 온전히 내기도 어렵지. 나는 '가성비' 좋은 원두를 사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내게는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어떤 맛과 향 때문이 아니라, 아침에 기계적으로 뇌를 흔들어 깨우는 의식이 되는 것 같았다. '가성비' 원두, 아니 사실은 '저렴이' 원두의 맛은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가끔 커피 관련 뉴스를 보면 원두 가격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다. 기후 변화, 커피 재배 지역의 분쟁, 커피 나무에 생기는 병충해까지, 원두 가격은 도무지 내릴래야 내릴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냥 이 원두로 쭉 가자. 그러던 생각이 전번에 산 원두 때문에 바뀌고야 말았다. 전번에 산 원두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그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냥 쓰디쓴 시커먼 물이었다.

  나는 1+1 행사로 산 스*** 원두를 내린 커피에다가 '저렴이' 원두로 내린 커피를 대충 섞어서 먹으면서 1kg이 넘는 원두를 소모할 수 있었다. 맛이 괜찮은 커피를 섞으니, 맛없는 커피도 대충 먹을만한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비싼 건 다 비싼 이유가 있네. 나는 양이 많은데 가격도 싸다고 먹었던 그 PB 상품 원두를 더이상 사고 싶지 않았다. 가격으로 치면 스*** 원두는 저렴이 원두의 4배 가격에 해당되었다. 그럼에도 중량과 가격을 비교하며 내 선택을 합리화하는 일은 뭔가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싼 게 비지떡. 이 단순한 삶의 진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명료하게 다가온다. 가격 비교 사이트를 찾아보는 일도 이제는 피곤하다고 느낀다. 터무니 없는 가격이 아니라면, 상품에 매겨진 가격과 그 상품의 질이 비례한다는 것을 수긍하게 된다. 그래 이 맛이야. 예전에 배우 김혜자 씨가 조미료 광고에서 했던 말을 나는 '가성비' 원두에서 탈출하고 나서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1+1 행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엌 찬장에 처박힌 겉멋든 머그컵을 쓰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합리적 구매란 '가격'이 아니라 '맛'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지만 나는 이 커피를 계속 마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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