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msay Hunt syndrome. 이 질병은 안면부에 발생하는 대상포진으로 안면마비와 청각 손상이 주요한 증상이다. 슬상신경절에 잠복해 있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 시스템이 약해진 틈을 타서 안면신경과 귀 주변의 신경을 침범해서 극심한 통증과 염증을 일으킨다. 8년 전, 나는 뜻하지 않게 Ramsay Hunt syndrome 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보름이 넘게 머리가 쪼개지는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오른쪽 얼굴은 마비되었다. 눈은 감기지 않았고, 입은 비뚤어져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내가 겪은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물을 마시면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마비된 얼굴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이 입원 기간 내내 나를 엄습했다. 거기에다 대상포진의 엄청난 통증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뉴론틴(Neurontin). 1973년에 나온 이 약은 원래는 뇌전증(예전에는 '간질'이라고 불렀던 질병) 치료제로 개발되었다. 그러다가 뉴론틴은 신경병적 통증에 효과가 부수적으로 입증이 되면서 당뇨병으로 인한 신경통을 비롯해 대상포진 치료에도 사용되었다. 극심한 대상포진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원 기간 동안 나는 고용량의 뉴론틴을 복용해야만 했다. 뉴론틴을 콩알 먹듯이 먹어도 도무지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가톨릭 재단의 병원이었다. 나는 병실에 있는 것이 답답하면 성당에 가서 앉아있곤 했다. 뭐라고 기도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얼굴 반쪽이 마비된 내 상태가 믿기지도 않았고, 이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신자였기 때문에 원목실의 수녀님이 병실로 찾아와서 기도를 해주었다. 시간이 되면 원목실에 와서 차라도 마시라고 수녀님은 말했다. 딱히 병실에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다음날인가, 원목실로 수녀님을 찾아갔었다. 수녀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녀님은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한 환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환자는 암환자인데 자궁에 생긴 암이 난소까지 침범해서 결국 자궁과 난소를 모두 절제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둘, 대학생이에요. 많이 걱정되어서 자주 살펴보고 있는데, 어떻게 잘 이겨낼지 모르겠어요."

  나는 수녀님이 내온 녹차를 마시면서 계속 흘리고 있었다. 비뚤어진 오른쪽 입 때문이었다. 나는 얼굴 반쪽이 돌아간 나의 고통과 22살 암환자 아가씨의 고통을 속으로 비교해 보았다. 과연 어느 고통이 더 괴로운가? 만약 이 얼굴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남은 생을 감기지 않는 눈과 비뚤어진 입매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22살 아가씨는 자궁과 난소없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정량화된 수치로 계산하고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얼굴도 모르는 22살 아가씨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그 아가씨의 고통이 나의 것보다 심하고 무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는 퇴원했다. 마비된 얼굴은 점차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내 얼굴은 마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물론 완벽한 회복은 아니었다. 신경 손상은 비가역적(非可逆的)이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청신경을 침범해서 내 청각에 문제가 생겼다. 이명과 청각과민증은 좀처럼 낫질 않았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최근에 몸이 좋질 않아서 병원을 오가고 있다. 몸이 아파서 그런가? 나는 문득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투병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기억 속에는 22살 아가씨의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8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그 아가씨는 서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잘 살고 있을까? 질병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을 남긴다. 상실은 불안과 절망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명제이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 아가씨가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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