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몸이 좋지 않아서 종합병원에 다니고 있다. 올해 들어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다 보니 이래저래 몸이 지치고 힘이 든다. 병원에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어딜 가나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예약 시간에 가도 환자들이 밀려있어서 제 시간에 진료받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얼굴을 보면, 실제로 말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뒤에 기다리는 환자들에 대한 압박감은 의사는 물론 환자인 나도 느낀다. 그러니 나도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증상을 말하려고 한다. 진료실에서 나오면 다음 진료 예약과 원무과 수납, 그리고 약국 방문이 이어진다. 이렇게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뭔가 진이 다 빠지는 느낌마저 든다.

  진료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 동안, 나는 작은 책자를 좀 들여다 보다가 방문객들을 관찰하곤 한다. 신경과 옆에는 신경외과가 자리하고 있다. 내 앞의 의자에서 기다렸던 젊은 엄마와 아이가 신경외과 진료실에 들어갔다. 한 10분 쯤 지났을까? 그 엄마와 아이가 진료실에서 나온다. 남자아이는 초등학교 3, 4학년 쯤으로 보였다. 아이 엄마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의 병이 뇌의 기능적인 문제라면 엄마도 아이도 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신경외과를 찾은 또 다른 환자는 80대 할머니이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그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처음에는 그 여자가 딸이나 며느리인가 생각했는데,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니 그런 관계는 아니다. 아마 요양보호사나 임시로 동반하는 일을 맡은 사람인듯 했다. 여자는 노인에게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썼다. 노인이 무슨 서류에 대해 여자에게 말하니, 여자는 그건 아드님이나 따님에게 부탁을 해야한다고 알려준다. 옷매무새가 깔끔하고 꼬장꼬장한 말투의 그 할머니는 그래도 병원에 데려올 사람이 있으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수납 창구에서는 노부부가 수납 직원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몸 여기저기가 아픈데 어느 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인이 처음에 다리가 아프다고 하자 직원은 정형외과를 이야기 했다. 그런데 노인은 가슴 쪽도 아프다고 말을 보탰다. 그건 흉부외과 같은데요? 아, 허리도 아파 죽겠어. 그러면 어르신, 여기 진료 예약번호를 적어드릴 테니까 전화로 상담을 하고 예약을 하세요. 노부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겨우 수납 창구에서 돌아선다. 많은 노인들에게 종합병원의 예약, 진료 시스템은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병원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약국을 방문한다. 그리 넓지 않은 약국 내부는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찼다. 나는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의 관찰기는 계속 된다. 약국에서 일하는 사람은 네 명. 주인 약사와 관리 약사, 이렇게 두 명의 약사가 있다. 직원도 2명이다. 처방전을 든 환자들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나는 이 약국의 월매출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했다. 약을 지은 약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70은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약을 받아가는데, 6개월분의 약이 커다란 종이 쇼핑백에 담긴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런저런 지병으로 고생하셨던 부친은 때가 되면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오셨다. 아버지도 저 노인처럼 그 많은 약을 받아오셨겠구나 싶었다.

  인사성은 밝지만 그리 친절하지 않은 여자 직원이 중년의 남자 손님에게 묻는다. 몇 개 과의 진료를 보신 거에요? 3개요. 남자는 처방전 세 장을 건넨다. 체격은 건장해 보이는데 어디 아픈 데가 많나 보네. 내 차례가 되어 약을 받고서 약국을 나선다. 병원에 올 때는 모처럼 해가 났었는데, 어느새 밖에는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나는 가방 속에서 우산을 꺼냈다. 이 우산은 몇 년 전, 커피 회사의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당첨이 되어서 받은 것이다. 빨강색의 이 우산에는 송중기의 사인이 인쇄되어 있다. 인기절정의 남자 배우는 이제 애아빠가 되어 있다.

  약국에서 걸으면 10분 정도의 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내가 타려는 버스는 20분 뒤에야 왔다. 버스 노선에는 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마침 하교 시간이라 아이들이 버스에 우르르 탄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내릴 때 미리 뒷문에 가있어야겠네. 내리는 문 옆에는 앳된 표정의 남학생이 서있다. 그 남학생은 내가 내리려는 기색을 비치자 미리 자리를 비켜주려 애를 쓴다. 착한 아이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약부터 챙겨서 입에 털어넣는다. 통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다음 진료는 2주 후에 있다. 그때까지는 몸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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