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의 초입에 작은 석영관 히터를 하나 샀다. 그 제품의 가격은 2만원대였다. 석영관 히터의 장점은 저렴한 가격말고도 또 있다. 비교적 작은 크기에 이동이 간편하다. 그리고 작은 공간의 냉기를 없애는 데에 좋다. 그런 장점만 들으면 석영관 히터가 나름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히터에는 어마무시한 단점이 있다. 그것은 엄청난 전력 소모량이다. 석영관 히터는 전기를 먹어치우는 조그만 괴물과도 같다. 나는 그 사실을 지난달 관리비 고지서를 받고서야 알았다.
보통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석영관 히터의 소비 전력은 800W이다. 그러니까 석영관 히터 1단이 400W의 전력을 소모하는 셈이다. 지난달 전기 요금이 그 이전달과 비교해서 무려 3만원이나 더 나왔다. 나는 그제서야 히터의 전력 소모량을 대략 계산해보았다. 히터를 1단만 작동시키고,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사용해도 전기 사용량이 꽤 되었다. 거기에다 누진제가 적용되니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전기 요금만 오른 것이 아니었다. 난방비까지 껑충 뛰어버린 고지서를 받고 보니 전열 기구를 쓸 때마다 잠깐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히터를 조심스럽게 쓰던 며칠 전, 히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지지직, 작은 소음이 들렸다. 나는 히터에 무슨 먼지라도 들어갔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그 소리에 이어 뭐가 타다닥, 타는 소리가 이어졌다. 석영관의 중간 부분이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순간 놀라서 얼른 히터의 전기 코드를 빼버렸다. 그렇게 히터의 1단 석영관이 나가버렸다.
그나마 상단의 석영관은 그동안 쓰지 않아서 멀쩡했다. 봄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히터를 쓰고, 나중에 서비스 센터에 가서 고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엊그제 또 히터에서 좀 큰 소음이 들렸다. 그렇게 석영관 히터는 완전히 고장나버렸다. 히터를 쓴지 2달만에 생긴 일이었다. 아무리 저렴한 중국산 소형 가전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이다지 조잡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석영관 히터는 고장나면 수리비가 더 많이 드니까 그냥 버려야 합니다."
누군가 인터넷에 그렇게 써놓은 글을 읽었다. 고쳐쓰느니 그냥 막 쓰고 버려야하는 제품, 거기에다 전기까지 엄청나게 먹는다. 내가 산 히터는 아직은 무상 서비스 기간이 남아있으니 수리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석영관 히터를 고쳐서라도 계속 쓰는 것이 나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정도의 형편없는 내구성이라면 얼마 쓰지 않아 또 고장이 날 수도 있다.
싼 게 비지떡. 나는 얼마나 많은 석영관 히터가 한철만 쓰고 버려지는지 새삼 헤아려 보게 되었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이들이 그 쓰임새와 내구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저런 제품을 만들어 팔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는 불가능한 일일까? 타들어가서 시커먼 줄이 선명한 석영관 히터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