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2년 동안 치매 환자의 가족으로 지내온 경험을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치매'라는 예기치 않은 일을 겪게 된 환자와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1. 증상의 인지

  대부분의 질병이 그러하듯 치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퇴행성 뇌질환으로서 치매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치매'라는 질병을 인지하게 되는 주된 증상은 '기억력'과 관련이 있다. 약속을 자주 잊어버린다거나, 물건을 어디에다 두고 찾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이 거기에 해당한다. 치매와 노화에 따른 기억력의 감퇴를 구분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일상 생활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내 모친의 경우는 요리하는 일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어머니가 단지 요리를 하기 싫어하거나 귀찮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어떤 요리를 할 때, 그 순서를 기억해내는 일을 어려워 하셨다. 그 즈음, 어머니는 은행이나 시장을 가는 일도 버겁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점에서부터 어머니의 뇌는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물건을 정리정돈하는지는 잘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노인의 기억력과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정리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예를 들면 TV 리모컨이 옷장이나 전혀 엉뚱한 곳에 있는 경우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자녀라면 주기적으로 방문했을 때, 집안 물건의 정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검사

  보호자로서 부모님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을 때, 가장 먼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럴 경우에 나는 각 지역에 있는 치매 안심 센터를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치매 안심 센터에서는 무료로 치매 선별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센터에서 시행하는 이 검사는 간이 선별 검사이다. 심각한 치매 증상을 가진 환자라면 바로 치매 진단을 받고 센터와 연계된 병원에서 세부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초기 치매 환자의 경우 치매 안심 센터의 검사로는 병의 진행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치매 안심 센터를 방문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센터의 담당자를 만나서 센터에 개설된 인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른 치매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센터의 간이 선별 검사 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을 받으려면 대학 병원의 신경과에 예약을 해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치매 검사에는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도 있다. 좀 더 정밀한 진단을 위해서 하는 PET-CT 검사가 그것이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비급여인 이 검사까지 받으면 진단 비용이 백만 원을 넘어간다. 내 모친의 경우는 PET-CT를 포함한 종합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 '경도 인지 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가 치매가 아닌 MCI 진단을 받았을 때의 내 심정은 일단은 안도감이었다. 하지만 MCI는 현 시점에서 치매로 진단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지, 치매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보증 수표가 아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MCI는 치매로 이환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예시적 지표로 보는 것이 맞다. 내 모친은 MCI 진단을 받고 1년 후에 치매로 이환되었다. 그러므로 MCI 진단을 받은 환자의 보호자와 가족은 무작정 안심하기 보다, 시간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며 향후 치매 진단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MCI 환자의 경우 처방되는 약물은 기억력 증진을 돕는다고 알려진 약이다. 이 약은 치료약이 아니라 보존적인 개념의 약이다. 약의 효과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으므로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다. 약물 치료는 주치의의 판단에 따른다. 그렇다면 MCI 환자의 보호자와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나는 '인지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3. 인지 학습

  MCI 진단을 받은 환자는 아직까지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서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이미 뇌에서는 퇴행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므로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지책이 필요하다. '인지 학습'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이것은 MCI 환자 뿐만 아니라 이미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도 필요하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인지 학습은 뇌세포를 활성화시킨다. 물론 인지 학습만으로 MCI나 치매의 증상이 나아진다고 말하기 어렵다. 인지 학습은 치매 증상의 발현을 늦추고, 경도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보호자가 환자를 치매 안심 센터에 개설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시중에 나온 교재를 가지고 환자를 학습시킨다. 환자의 교육 수준에 따라 알맞은 교재를 선택해서 하루에 정해진 시간 동안 학습한다. 교재는 상식과 언어, 숫자 계산과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다양한 교재들을 살펴보고 환자의 교육 수준에 맞추어 선택한다. 거기에 더해 손가락의 움직임을 민첩하게 할 수 있는 색칠하기, 종이접기 같은 교재를 선택하는 것도 추천한다.


4. 치매 진단

  MCI 진단 후, 치매에 이르는 기간은 환자마다 다르다. 치매는 환자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심각한 정서적 충격을 준다.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주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감정적으로 동요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보호자와 가족에게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명심해야할 사실은 '현재의 의학으로 치매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사실이다. 나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환자를 잘 보살필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낫다. 이를테면 환자가 보호자 없이 혼자 지낸다면 낮 시간에 어떻게 보살필 것인지, 집안에서의 안전 사고를 대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일단 치매로 진단되면, 주치의와 상의해서 장기 요양 등급 판정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 등급의 정도에 따라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진다. 치매 환자는 등급에 따라 정해진 금액 내에서 주간 보호 센터와 요양 보호사의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환자의 개인적 성향이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다. 내 모친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럴 때는 보호자가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일상 생활을 점검하고 인지 학습을 돕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5. 맺는 글

  글을 쓰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지난 2년 동안의 일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내 모친과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문제는 지나온 2년의 시간 보다 더 길고 어려운 시간이 남아있다는 데에 있다. 인생의 불운한 많은 일이 그러하듯 '왜(why)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일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even though)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내가 마음 깊이 새기는 만트라(Mantra)가 있다. 그것은 '오늘이 바로 최고의 날이다'라는 명심문이다. 내 모친의 기억력과 상태는 날마다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치매 환자에게 '오늘'은 최고의 좋은 날인 셈이다. 물론 환자와 가족에게 지치고 힘든 시간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환자와 가족은 일상의 작고 소중한 기쁨을 발견할 수도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미소, 인내심, 감사하는 마음... 매일 매일 어머니와 하면서 내가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이다.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힘을 내어 이 길을 잘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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