続・忍びの者(Shinobi no Mono 2: Vengeance, 1963)

新・忍びの者(Shinobi no Mono 3: Resurrection, 1963)



닌자 영화에 투영된 계급과 사회의 문제


  '忍びの者(Shinobi no Mono)' 소설의 주인공인 이시카와 고에몬(石川 五右衛門, Ishikawa Goemon)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부패한 관료와 부자들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의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에게는 로빈 후드 같은 반영웅(antihero)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그의 생애를 극적으로 만든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암살 시도였다.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고에몬은 어린 아들과 함께 팽형(烹刑, 솥의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형벌)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닌자였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의 생애의 많은 부분이 후대 창작자들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복원되었다.   

  공산주의자였던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이시카와 고에몬이 보여준 그 저항의 삶에 주목했다. 민중의 편에 선 의적은 최고 통치자에 맞서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작가는 이시카와 고에몬을 최하층 민초들의 저항의지를 대표하는 닌자로 그려냈다. 원작자의 의도는 사회주의 신념을 가진 감독 야마모토 사츠오(山本薩夫)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忍びの者(Shinobi no Mono)' 1편과 2편의 고에몬은 지배 계급의 하수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주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1편에서 고에몬은 산다유의 협박과 회유를 받고 오다 노부나가 암살에 나선다. 하지만 고에몬의 암살 시도는 실패하고, 이 일로 오다 노부나가는 닌자 집단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에 나선다. 산다유와 닌자 공동체의 최후를 목도한 고에몬은 필부의 삶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평범한 농부로 살고 싶었던 고에몬의 꿈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지 못한다. 고에몬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아내와 아이를 잃는다. 그는 복수를 위해 다시 닌자가 된다.

  2편에서 고에몬이 속한 닌자 공동체는 승려를 중심으로 종교적 신념으로 뭉쳐있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 장각의 황건적은 태평도(太平道)로 민중을 끌어모았다. 영화 속 닌자 공동체의 모습은 전국 시대의 혼란기에 일본 불교 또한 체제 저항 세력과 결탁했음을 추측케 한다. 주목해야할 점은 닌자 집단에 합류한 이들이 굶주리고 가난한 하층 계급 천민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상을 뒤바꾸기 위해 닌자가 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닌자의 삶을 택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절멸에 이르는 탄압이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고에몬의 암살 시도는 실패했고, 그에게는 잔혹한 형벌이 주어진다. 그 지점에서 영화는 전복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2편의 마지막에 고에몬은 펄펄 끓는 가마솥 앞으로 끌려간다. 3편이 시작되면 고에몬은 죽음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복 핫토리 한조가 고에몬을 구한다. 그는 고에몬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적하는 도구로 쓰려고 한다. 과연 고에몬은 핫토리 한조의 뜻대로 움직일까? 고에몬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에 서게 되지만 그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개인적 원한 때문이다. 닌자 고에몬이 돈이나 허황된 대의명분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이런 고에몬이 4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반대편에 선다. 고에몬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사나다의 닌자로 활약하면서 몰락해가는 도요토미 일족을 살리는 일에 앞장선다. 이 웃지 못할 반전은 영화사 다이에이의 초대박 흥행작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엿가락 늘이기 식의 연작을 강행하면서 캐릭터의 일관성과 원작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실종되었다. 다이에이는 원작을 포기하고 4편부터는 독자적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忍びの者(Shinobi no Mono)' 4편과 5편에서는 '키리가쿠레 사이조'라는 새로운 닌자가 등장한다. 6편에서는 사이조가 죽고 그 아들 사이스케가 나온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닌자의 모험담이 이어졌다. 나는 6편까지 보고는 이 닌자물의 완주를 포기해 버렸다.

  '忍びの者(Shinobi no Mono)' 시리즈물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주연 배우 이치카와 라이조의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이다. 다이에이는 그 뛰어난 배우를 데려다가 밑빠진 시대극에 재능을 소모시켜 버렸다. 이치카와 라이조의 필모그래피가 1960년대에 지나치게 빡빡하게 채워져 있는 것은 영화사의 그런 욕심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른 일곱 살에 요절한 이 배우는 암으로 병사했다. 나는 그 이유가 한편으로는 혹사에 가까운 연기 여건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닌자가 나오는 시대극 팬이라면 '忍びの者(Shinobi no Mono)' 시리즈물은 한번은 거쳐가야할 관문이다. 이 연작 영화의 원작자는 닌자가 그저 검은 옷을 입고 신출귀몰하는 암살자가 아님을 알려준다. 그들은 시대의 격변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한 민초들이었다.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1960년대 고도 경제 성장 시대 일본 노동자들의 모습을 자신의 소설 속 닌자에 투영했다. 오늘날 서구 영화 속 닌자는 그런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과장된 이미지적 차용으로만 묘사된다. 언젠가 나올 새로운 닌자 영화에 지금 시대의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 담기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 영화 '폭력의 거리(暴力の街, 195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50.html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 영화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conflagration-1958.html

 


***닌자(忍びの者, Shinobi no Mono, 1962)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shinobi-no-mono-196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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