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그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두 개의 별(After the Rain, 2021)
판 지엔(Fan Jian), 104분



  그날은 비가 내렸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달래어 억지로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그날, 천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대지진이 발생했다. 학교 건물은 무너져 내렸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네 언니가 죽은 그날, 나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란다." 할머니는 Ranran에게 그렇게 말한다. 란란은 죽은 손녀딸의 여동생이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한 자녀 정책 때문에 Ying과 Ping부부는 둘째딸 란란을 시골로 보냈다. 언니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 란란은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란란은 자신의 존재가 언니의 대체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괴롭다.

  Sheng과 Mei 부부도 대지진으로 딸을 잃었다. 중국 정부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시험관 아기 시술(IVF)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부부는 시술로 아기를 갖는 것은 실패했으나 곧 자연 임신으로 아이를 얻었다. 아들이었다. 태어날 아기가 딸이기를 열망했던 부부는 크게 실망한다. 아빠인 Sheng의 좌절감은 아들 Chuan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진다. Mei 또한 아들에게 마음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추안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죽은 누나 덕분에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이 가정에는 냉기와 무관심이 일상처럼 자리잡는다.  

  판 지엔은 '두 개의 별(After the Rain, 2021)'에서 2008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두 가족의 삶을 따라간다. 무려 10년이란 시간 동안 그의 카메라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재해의 트라우마를 기록한다. 죽은 자식에 대한 애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 Sheng은 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몸부림친다. 그는 마음의 고통을 술로 달랜다. 아들에게 냉랭하기 짝이 없는 Sheng은 아빠 노릇 좀 하라는 아내의 말에 역정을 낸다. 정작 아내 Mei는 Chuan이 아기 때에 여자 아이 옷을 입혀 키우기도 했다. Mei는 아들의 포동포동한 손이 죽은 딸과 똑같다고 말한다.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들이 안쓰럽지만 엄마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다.

  죽은 아이들은 부모의 가슴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다른 자식을 키운다고 해서 커다란 상처로 뚫린 마음이 메꿔지지는 않는다. 더 상황이 나빠진 경우도 있다. 어렵게 다시 얻은 아이가 장애아인 부부도 있었다. 원하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서 괴로운 Sheng과 Mei 부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서먹해진 둘째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는 Ying과 Ping 부부. 잊을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는 아이들의 마음에도 드리워진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세대 사이에 심리적으로 전이된다. 추안은 아버지에게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란란도 매우 내성적인 아이로 성장한다. 그럼에도 이 소녀는 죽은 언니의 부재를 나름대로 메꾸기 위해 노력한다. 란란은 그렇게 부모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중국 정부는 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을 최선의 대책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두 개의 별'은 또 다른 자녀의 존재가 재난의 상흔을 덮어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큐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지진으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죽은 배경에는 학교의 부실 시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부모들이 느꼈던 엄청난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다. 무너진 학교는 다른 곳에 새롭게 지어졌다. 당국은 지진에 대한 기억을 차단하고 봉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때문에 몇몇 부모들은 성금을 모아 학교터에 추모비를 세우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추안과 란란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성장 과정에 드리운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기치 못한 대지진은 그 아이들의 삶의 궤도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이 가슴아픈 다큐는 재해가 가져다준 상실의 고통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국가는 재난을 방지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복구의 과정에는 물질적인 면 뿐만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의 내면을 살피는 것도 포함된다. '두 개의 별'은 대지진이 남긴 트라우마의 긴 연대기를 통해 정부의 책임과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사진 출처: eidf.co.kr




**사진 출처: brattlefil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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